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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n Apr 18. 2021

쉽게 쓰는 게 UX writing이 아니다.

금융 레이블은 어떻게 써야하는가?(1) : Toss 증권의 사례

Toss 증권의 '판매하기'와 '구매하기'


시작은 동료 UX writer가 보내준 한 장의 앱 화면이었습니다.


훌륭한 한국어, 영어 실력을 가진 영어 UX writer인 그와는 종종 각자가 다루는 언어와 상관없이 UX writing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하는데, 어느 날 그가 Toss 증권의 론칭과 함께 대대적으로 홍보되고 있는 '쉬운 금융 용어'에 대한 제 의견을 물어보았던 것이죠.


매도->판매, 매수->구매로 바꾸었다.


일전에 아는 개발자에게 Toss 증권의 개발 능력에 대한 호평을 들었기 때문에

('어떻게 여기에 이런 볼륨을 때려 넣을 수 있었지? 대단하다...' 뭐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흥미롭게 증권 서비스 론칭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막상 이 화면을 보자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전부터 Toss는 금융 UX writing에 대해서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던 차였는데, 이 '판매하기, 구매하기'가 마치 Toss 금융의 차별성인 것처럼 여러 언론에 언급되는 것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더군요.


일단 동료에게 솔직하게 제 생각을 말했고 저와 그, 다른 UX writer와 PM은 이 케이스에 대해서 꽤 긴 시간 의미 있는 토론을 했습니다. 우리가 업으로 삼고 있는 UX writing이란 무엇인가, 서비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우리는 금융 레이블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오고 갔습니다.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일전에 카카오 뱅크의 UX writing에 대해 쓴 글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관심을 얻었습니다. 

UX 업계에서 일하시는 정말 많은 분들이 금융 UX writing에 관심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겸사겸사 금융 UI text에 대한 제 생각을 한번 더 밝혀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오랜만에 글을 써봅니다.

 

이번 시리즈는 1. 쉽게 쓰는 게 UX writing이 아니다. 2. 도대체 금융 UI text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건가? 3. UX writer는 사용자와 서비스에 어떤 책임을 갖는가?3편에 걸쳐 작성될 예정입니다.


쉽게 쓰려다 틀리게 쓰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께서는 이 레이블 '판매하기, 구매하기'의 문제가 무엇인지 눈치채셨나요?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는 어려운 금융 자곤을 쉽게 설명하려고 야심 차게 바꾼 용어가 그냥 틀린 용어라는 것입니다.

네. 틀렸습니다. 슬프지만 틀렸어요.

네가 뭔데 이렇게 자신 있게 '틀렸다'라고 말할 수 있냐?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 궁금하실 수 있겠기에, 지금부터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먼저 UX writing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 자곤 (Jargon)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 볼게요.


자곤 (Jargon)이란 무엇인가?


자곤은 특정 분야의 전문·특수 용어를 말합니다. 의료, 법률, 금융, 컴퓨터 영역 등 언중(言衆)의 삶과 밀접하지만, 막상 다가서기 어려운 분야에서 업계인(?)들끼리 주로 사용하는 전문 용어를 의미하지요.

사실 어떤 어휘가 자곤인지 아닌지 딱 정하는 기준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용어가 별로 어렵지 않을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낯설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나의 어휘가 자곤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어디까지나 언중의 언어 감각과 사용 행태에 달려있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이체'와 '송금'은 금융 자곤일까요, 아닐까요?

초등학생에게는 어려운 전문 용어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중고등학생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용어로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보통 그 나이 때쯤에 본격적으로 금융 거래를 시작하곤 하니까요.

물론 거의 매일 금융 앱으로 돈을 받고 보내야 하는 저와 여러분 같은 월급쟁이들에겐 일상 용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내 돈...)


그렇다면 IT 용어인 '서버'는 어떤가요?

IT 업계나, 테크 이슈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뭐야, 일상어잖아?'라고 생각하겠지만, 컴맹이신 우리 어머니에게는 뭔지 모를 영어일 뿐이고, 요식업계 종사자분들 중 어떤 사람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 말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UX designer가 '서버가 다운되었습니다. 다시 시도해 주세요'와 같은 에러 토스트를 쓰자고 할 때마다 그 분 손을 꼭 잡고 '자매님, 우리 함께 이 앱을 쓰셔야 할 어느 어머님을 생각해봅시다...'라고 말하고 싶어 집니다(물론 실제로 그러진 않습니다...).

아무튼 자곤이란 그 영향 영역을 가늠하기가 카페 공용 WiFi보다 어려운 녀석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디까지 그 영향력이 미치는지, 어디서부터는 안 미치는지 정말이지 알기가 어렵거든요.


UX writer는 언중의 언어 감각, 트렌드, 어휘 난이도, 활용도, 타깃 유저의 성향, 업계에서의 해당 용어 활용 양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본인의 서비스에 업계 자곤을 유지할지, 아니면 용어를 순화하거나 다른 단어로 대체할지를 결정합니다. 그 자곤이 업계에서 굉장히 힘이 있는 단어, 그러니까 오랜 역사와 두터운 사용층을 가진 공고한 자곤일 경우 더욱더 신중하게 대체어 사용 여부를 고려합니다.

만약 대체어가 기존 용어의 힘을 이기지 못할 경우 내 서비스만 업계에서 왕따가 되거나 우리 서비스 꼴이 우스워지기 때문입니다(이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조금 더 상술해 볼게요).


한자어를 틀린 한자어로 바꾸다


자 그럼 이제 Toss 증권에서 변경한 as-is, to-be 각 용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봅시다.


매도(賣渡) 값을 받고 물건의 소유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김.
매수(買收) 물건을 사들임.
판매 (販賣) 상품 따위를 팖.
구매 (購買) 물건 따위를 사들임.


매도와 매수는 전통적인 금융 자곤입니다.

일제 강점기 근대 금융이 도입되면서 정착된 한자어이기도 하죠.

특히 이 매도라는 용어가 매우 흥미로운데, '매도'는 값을 받고 소유하고 있는 '권리'를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입니다. 이 '~도渡'라는 한자는 주로 권리를 넘길 때에 쓰이는데. 금융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 항상 무형의 '권리'이기 때문에 '양도, 매도'와 같은 표현이 자주 쓰이게 됩니다.


권리. 그래요 권리.

우리는 이 '권리'라는 대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매수는 주로 매도와 짝을 이루어 사용되는데, 매도와는 달리 유무형의 물건과 권리를 살 때 사용할 수 있는 서술성 명사입니다. 보통은 주식이나, 토지 또는 농산물을 살 때 쓰곤 합니다. '대량의 주식을 매수했다.' '도매인이 배추 한 트럭을 매수했다' 이렇게 말이죠.


그럼 판매와 구매는 어떤 말인가요?

판매와 구매는 금융 자곤도, 법률 자곤도 아닙니다. 매도, 매수보다야 확실히 쉬운 단어임에도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용어들은 행위의 대상을 상품(商品)으로 한정합니다. 판매는 본인이 직접 만들거나 소유한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파는 상업적인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고, 구매 역시 상업 행위의 일환으로 주로 유형의 대상을 사들인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업의 지분, 기업의 경영권이라는 '권리'를 금융시장에서 거래하는 것이지, 상업적인 목적으로 제작된 '상품'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매, 판매'를 쓸 수는 없는 것이지요.

금융 자산과 지분이라는 추상적인 권리를 사고파는 행위에 빵이나 채소, 가전제품 과 같인 상품을 살 때 활용되는 서술성 명사를 넣어두었으니 당연히 이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식을 어느 정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구매/판매'를 보면서 '뭐지, 이 기분 나쁜 찜찜함은...?'을 느꼈을 것입니다.  저도 그랬지만, 제 주변의 주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레이블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하나같이 '음... 이거 이상한데 왜 이상한지 설명을 못하겠네'라는 반응이었어요.


UX writer의 입장에서 더 직접적으로 문제를 지적하자면 UX writing의 제 1 가치인 정확성을 훼손한 잘못된 UX writing의 사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거래 대상이 중요한 금융 UI text에서 '대상'을 훼손한 용어를 선택했습니다.

이전 다른 글에서 이야기했듯 정보 영역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UX designer인 UX writer가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가치는 정확성입니다.

정확성, 간결성, 직관성(사용자 친화)을 기본 원칙으로 두고 작업하면서, 때에 따라 우선순위를 조정하거나 취사선택해야 할 수도 있지만, 그럴 때에도 정확성은 항상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가치입니다.

이전에 다른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무리 알아듣기 쉽고 좋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사용자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사용자 친화적인 언어를 추구한다, 쉽게 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게 쓴다... 이런 원칙들이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을 쓴다면 글쎄요...

누가 그 서비스를, 특히 신뢰가 생명인 금융 서비스를 믿고 쓸 수 있을까요.

서비스가 제공하는 정보의 정확성과 서비스의 수준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 더 이상 내 돈을 맡기고 싶지 않겠죠.

그래서 금융 UX writing이 정말 어렵습니다.

금융 UX writing이 잘못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조금 더 이어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가요? 더 쉬운 동사로 풀어쓰세요!


'그럼 어려운 한자어, 금융 자곤을 쉽게 쓰지 말고 이대로 두라는 것이 당신의 의견인가요?'라고 물으신다면 제 대답은 당연히 '아닙니다!'입니다.

UX writer라는 업으로 밥 먹고 살고 있는데 뭐라도 해야죠. 아무렴요.

'매도', '매수'라는 전통적이고, 압축적이면서, (공간과 의미의 측면에서)효율적이고 무엇보다 금융권 내에서 영향력이 큰 이 자곤을 일시에 없애자라고 주장하지는 않겠습니다만, 다가서기 어려운 이 용어를 어느 정도 쓰면서, 동시에 사용자가 더 이해하기 쉽게, 익숙하게 만들어 줄 수는 있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필요에 따라 어려운 한자어 대신 고유어인 용언이나 서술성 명사로 적절하게 대체하여 쓰는 것입니다.

'구매, 판매' 대신 더 쉽고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 '사다', '팔다'를 대체어로 쓰면 됩니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 샘'에서는 '매도', '매수'에 대해 아래와 같이 코멘트하고 있습니다.


매도 (賣渡) :순화(일본어 투 생활 용어 순화 고시 자료(문화체육부 고시 제1997-19호, 1997년 2월 15일)) ‘매도’ 대신될 수 있으면 순화한 용어 ‘팔아넘김’을 쓰라고 되어 있다.
매수 買收: 순화(생활 용어 수정 보완 고시 자료(문화체육부 고시 제1996-13호, 1996년 3월 23일)) ‘매수’ 대신될 수 있으면 순화한 용어 ‘사기’, ‘사들이기’를 쓰라고 되어 있다.


국어원에서도 97년, 그 옛날(!)에 이미 '매도', '매수'를 바꿔 쓰고 싶다면 '팔기' '사기'로 순화해서 쓰라고 했습니다. 어려운 한자어를 좀 쉬운 한자어(그것도 틀린 한자어)로 고칠 것이 아니라, 한국어의 근간이 되는 용언과 서술성 명사로 대체해서 쓰라고 권고하였던 것이죠.


개인적으로 저는 UX writer로서 이런 고유어 순화가 가장 바람직한 자곤 대체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쉽지만 틀리지 않은 어휘로 어려운 말을 바꿔 쓴다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어려운 한자 금융 용어를 누구나 아는 기본적인 동사로 대체할 수 있다면, 의미의 훼손도 없고 어휘의 오용도 없이 모든 사용자가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겠지요. 사용자가 어리든, 나이가 많든, 이 업계에 대해 잘 알고 있든, 전혀 모르든 상관없이 조금 더 편안하게 금융 시스템에 접근하여 차근차근 새로운 영역에 대해 배워갈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매도', '매수'라는 어려운 용어를 이 같은 쉬운 서술어와 섞어서 사용하면, 사용자가 얇은 종이에 물이 스며들듯 자연스럽게 낯선 금융 자곤인 '매도', '매수'의 의미를 학습할 수 있게 되겠죠.

물론 다음 편에 이야기할 '글로벌 금융, 보편적 금융'이라는 측면에서도 이 같은 고유어 사용은 매우 적합한 대체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정확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오늘의 요약


자곤(Jargon)을 다른 용어로 대체할지, 그냥 둘지는 UX writer의 선택입니다. 대체어를 선정할 때에는 언중의 언어 감각, 트렌드, 어휘 난이도, 활용도, 타깃 유저의 성향, 업계에서의 해당 용어 활용 양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어려운 금융 용어를 순화할 때에는 그 용어가 가진 모든 의미와 콘텍스트를 '핍진하게 대체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한자어를 다른 한자어로 대체하기보다는 가능하면 쉬운 고유어, 서술어, 서술성 명사로 대체할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해 봅시다.



사실 Toss와는 일면식도 없고, 저는 그저 론칭 초기에 서비스를 좀 쓰다가 요즘엔 이탈한 그저 그런 사용자일 뿐이지만, Toss의 서비스 철학과 UX, UI 그리고 UI text에 대해서는 유심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사실 유사 서비스인 뱅크 샐러드, 각종 은행, 증권, 카드, 보험 앱들도 모두 제게는 사용과 관찰의 대상입니다.

(모든 UX designer, UX writer분들이 그러시겠죠? 벤치마킹 용으로 앱들이 홈 화면에 쌓여있겠지요? )


다만 Toss가 제게 압도적으로 많은 알림을 보내고(그렇다고 알림을 끄지는 않는 나), 다른 앱들에 비해 독특한(!) 시도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풍부한 논의 거리를 많이 만들어 주셨기에, 이번 시리즈의 사례가 되었을 뿐입니다.


Toss 응원합니다! 잘 됐으면 좋겠어요! (급수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심이에요!)


다음 글에서는 계속하여 Toss의 레이블을 사례로 삼아 아래 2가지 내용을 주제로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2. 도대체 금융 UI text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건가?

3. UX writer는 사용자와 서비스에 어떤 책임을 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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