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천과 흑암녀
옛날 어느 부잣집 대문 앞에서 하루는 누군가가 주인을 부르고 있었다. 집주인이 나가서 대문을 열어보니 좋은 향기를 풍기는 절세의 미인이 서 있는 것이었다. 누구냐고 묻는 주인에게 그 여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저는 공덕천(功德天)이라고 하는데 제가 찾아드는 집에는 금은보화와 온갖 영예를 선물로 가져다 드리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그 여인을 기쁜 마음으로 정중히 모셔 들였다. 그러자 곧이어 다시 대문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주인이 나가 문을 열어보니 이번에는 보기에도 흉측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고약스런 냄새까지 풍기는 한 추녀(醜女)가 서 있는 것이었다. 주인은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그래도 누구냐고 물었다.
“ 저는 어느 집이든 들어가기만 하면 그 집의 재산과 명예를 싸그리 앗아가는 흑암녀라고 합니다.” 라고 대답 하였다.
기분이 나빠진 주인은 흑암녀를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멀리 꺼지라고 말하며 대문을 닫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흑암녀는 이어서 말을 하였다.
" 당신이 방금 전에 반갑게 집으로 모셔 들인 그 공덕천녀는 다름 아닌 나의 언니로 우리 두 사람은 언제나 함께 다니고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자매랍니다. 그러니 나를 내쫓으려면 내 언니를 먼저 쫓아내어야 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집주인은 잠시 생각해보고는 먼저 모셔드렸던 반가운 손님 공덕천을 얼른 내보냈다고 한다. 사람들이 바라는 세상적인 바램, 즉 성공과 재물, 명예는 들어올 때의 기쁨 속에는 인연이 다하여 나갈 때의 괴로움도 함께 있기 마련이라는 진리를 가르쳐주고 있다.
평화로운 마음을 갖고자 한다면 탐하고 원하는 마음을 갖지 말라고 한다. 생각도 들었다가 사라지고 느낌도 왔다가 가듯이 권력과 명예, 그리고 물질도 왔다가 간다. 우리 인생사의 괴로움의 원인은 바로 이 구하는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니라, 하는 말이 있지만 구해서 얻어봤자 사라지는 것은 순식간이고 두드려서 열렸다한들 닫히는 것도 한 순간이다. 그럼 계속 구하고 두드리기를 반복해야하는데 그 얼마나 고단하고 피곤한 일인가.
육조 혜능 대사가 지나가는 스님으로부터 금강경 제10품 장엄정토분의 이 대목을 듣고 홀연히 깨닫는 바가 있어 출가하게 되었다는 일화로 유명한 구절이 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뜻이다.
구하되 결사적으로 구하지 말 것이며 두드리되 열릴 때 까지 목숨 걸고 두드리지 말라는 말일 것이다. 세 번 해보고 안 되면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것도 좋다. 세 번 말했는데도 듣지 않으면 그냥 놔두는 것이 좋다. 우리 주변의 물질적인 것이든, 우리 몸 자체든, 스스로의 생각이든 일체 마음의 집착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생활하려는 자세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도를 통해서나 호흡명상을 통해서 숨을 들이쉼과 내쉼에 마음을 붙이고 어떤 대상에 대해 집착하려는 마음을 고요히 지켜보다 보면 그 집착함과 머무름이 어느 틈에 사라짐이 알아차려진다. 생각이 날 때 마다 어느 곳에서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봄으로써 고통의 원인이 되는 집착에서 차츰차츰 벗어나게 하는 것이 바로 마음공부이다. 새로운 취업을 준비하며 주변부터 깔끔히 하고자 지난 이틀에 걸쳐 벼르고 벼르던 발코니를 치웠다. 발코니 농장을 정리하며 나온 빈 화분들은 죄 갖다 버리고 흙더미는 커다란 플라스틱 컨테이너로 열댓 박스를 날라다 단지 내의 커다란 소나무 밑 둥에 차곡차곡 쏟아 부으니 작은 둔덕이 되었다. 그러고 나니 나중에 혹시라도 흙이 필요해지면 여기서 다시 퍼다 쓰면 되겠다 싶었다. 발코니 식물들에 물을 퍼다 주는 것이 처음엔 즐거웠으나 갈수록 것도 힘들고 고생스러웠다. 그래도 시도해 보는 동안 재미있었고 소출을 얻는 즐거움도 컸다. 깻잎은 원 없이 뜯어 먹었고 장아찌까지 담아놓을 수 있었으며 감자와 고구마 싹을 심어 가을엔 놀랍게도 그 뿌리에 맺혀 열린 2세 감자와 고구마까지 얻어 놀라웠다. 그리고 지금은 마치 선물처럼 쉬어가는 시간이 찾아왔다. 평화롭고 조용함 속에서 걷기 운동도 하고 호흡명상도 하면서 재미난 것이 가득한 유투브도 뒤지고 한동안 못 봤던 한국드라마도 잇대어 보면서 한 달 반 정도 남은 올해의 끝 무렵 동안에는 마음근육을 키워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