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도 좋겠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업소들이 문을 닫아야 했기에 당분간 집에 머무르며 여유시간을 갖다 보니 한 동안 못 봤던 한국 드라마들을 뒤져보게 되었다. 등장인물들만 봐도 이게 볼만 할지 어떨지 걸러진다. 연기 잘하는 중견 배우들이 나오면 시나리오가 어떻든지 그들의 얼굴과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하고 반가워 일단 오케이. 아무리 잘생기고 예쁜 배우들이 나와도 장르가 로맨스면 낫 오케이. 로맨스는 재미가 없다. 넥플릭스에 있는 한국 드라마 ‘Good Detective' 시리즈는 1편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회까지 이틀 만에 끝냈다. 수사 드라마인 데다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출연하여 명품 연기를 보여주니 이런 시리즈물을 건지는 것은 백수생활에 선물과도 같다. 재미가 있을지 없을지는 첫 회만 봐도 결정 난다. 이거 재미있다 싶어 잇대어 다음 회 편을 클릭하는 기분은 재미난 만화책을 방구석에 잔뜩 쌓아놓고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만화의 세계로 빠져들었던 그것과 흡사하다. 다음 에피소드로 넘어가 지난 줄거리를 간략하게 알려주는 인트로는 건너뛰고 오징어 땅콩 스낵 한 알갱이를 입안에서 녹여 먹다가 땅콩은 씹어 먹는다. 간이 좀 짭짤하다 싶어지면 쌀 뻥튀기로 옮겨 간 조절을 한다. 뻥튀기가 밥이고 오징어 땅콩이 반찬이라고나 할까. 초콜릿이나 사탕같이 진땡이로 단 것은 싫으나 심심하게 단맛과 찝찔하게 짠맛은 좋다. 식 후에 씹다 남은 총각김치 쪼가리 무를 디저트 삼아 사탕 대신 입안에 물고 혀로 요리조리 돌려가면서 빨며 갉아먹으면 엄마의 맛이 난다. 입맛이 변하기도 하였고 건강수치들도 생각해야 하는 나이이다 보니 빵이나 과자들과는 저절로 멀어져 간다. 입이 궁금해져 뭔가 씹고 싶을 때엔 사과와 고구마, 샐러리 등을 잘게 잘라 스낵으로 먹는다. 뭐가 되었든 입에 넣고 씹어주면 뇌는 만족한다. 좋은 수치는 올리고 나쁜 수치는 내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입맛도 그렇게 길 들여져 간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이름을 날려도 건강을 잃으면 다 소용없다는데 재산도 명예도 없으니 챙길 건 건강뿐이다. 산에 가려면 맘먹고 날짜를 잡아야 하지만 걷기는 아무 때나 어디서고 가능하니 일하는 짬짬이 이발소 인근 동네길을 걷는다. 운동화를 신고 이어폰으로 유튜브나 오디오북을 들으며 걸으면 바로 기분이 상쾌해진다. 뺨을 스치는 바깥공기가 조금 찬 듯싶긴 해도 상쾌하고 산속은 아니어도 고산지대 청정지역인 콜로라도라 저잣거리여도 공기가 좋다. 휴무인 날에는 반경 오 마일 이내 거리에 볼 일이 있으면 거기를 목표지점으로 삼아 걸어간다. 운전해서 십 분이면 도착할 곳을 걸어서 갔다 오니 한 시간 반이 걸렸으며 걸음 수는 만 이천보가 되었고 목표 달성이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발바닥에 실려지는 체중 감을 느끼며 종아리와 무릎, 그리고 허벅지의 튼실해지는 중인 근육조직을 맘속으로 그려보면 자신감이 올라간다. 집 근처 호수공원에서 보폭의 한 치 앞만을 눈으로 좇으며 걷다 보면 떨어진 낙엽들과 거위들이 싸질러 놓은 검푸른 똥덩어리들만 보인다. 거위 똥을 밟을 새라 골라 딛다 보면 여기에 둥지를 틀고 대단위로 살고 있는 공격적인 거위들이 미워지기도 한다. 작년 어느 날인가 산책을 나왔더니 스무 마리 정도만 남고 그 많던 거위들이 며칠 새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으며 덕분에 포장된 산책로가 너무도 깨끗했다. 공원 관리업체에서 그 많은 거위들을 딴 데로 이주시킨 건지 포획해서 닭 공장으로 넘겼는지 궁금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개체수가 너무 많이 불어나면 포획하여 노숙자들을 위한 쉼터에 기부를 한다고 한다. 그게 좋은 일인지 안 좋은 일인지 구분을 짓고 싶지는 않은데 거위의 꿈은 뭐였을까 하는 물음이 절로 일어난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걸으면 시선이 높아져 나무와 먼 산, 그리고 근사한 구름과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오고 어깨까지 따라 벌어지면서 숨도 절로 크게 쉬어진다. 상반신의 근육조직들도 시원하다며 좋아하는 것이 느껴진다. 보폭을 조금만 넓게 벌리면서 한 시간 정도 걸으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싶을 정도로 즐겁고 행복해져 백수가 된 절호의 기회에 걷기 운동 습관을 들이려고 매일 아침마다 집을 나선다.
노숙자를 보면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몇 해 전 노동절 주말 아침에 볼더 산을 드라이브하고 내려왔더니 볼더시 도서관 근처에서 페스티벌이 열렸고 많은 인파가 몰려 아이들은 부모들과 이런저런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언니와 한 바퀴 돌면서 뭘 먹을까 둘러보았지만 마땅히 먹고 싶은 것이 없었다. 한데 가까운 냇가 근처 부스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기에 거기서는 뭘 파나 싶어 가보았다. 사람들이 받아 들고 가는 접시를 보니 메뉴도 괜찮았다. 줄의 끄트머리로 가서 차례를 기다리며 있자니 뭔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했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접시를 집어 드니 서빙을 하는 젊은이가 매쉬드 포테이토 한 국자와 프라이드치킨을 얹어주며 맨 빵을 주려 하길래 환하게 웃으며 크로와상을 주문했다. 돈을 안 받기에 페스티벌이라 그런가 본데 여기는 인심도 좋구나 하며 언니와 냇가 좋은 자리를 찾아 바위에 걸터앉았다. 둘러보니 띄엄띄엄 물가에 앉아 우리와 같은 음식들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데 그들의 행색은 하나같이 꾀죄죄했고 우리만 멀쩡했다. 그때서야 홈레스를 위한 푸드 부스였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공짜라고 신나 하기만 했던 우리 자신들이 너무 웃겨 눈물까지 흘렸다. 먹다 보니 파는 음식보다 맛도 질도 훨씬 낫기에 또 눈물 나게 웃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