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무니까 건들지 말아 줘!
장작불을 지펴 그 불을 보고 마냥 앉아있고 싶어 여름이 되면 캠핑이 가고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캠핑을 가야만 불을 피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꼭 장작으로 불을 지펴야 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와 같이 할 것도 없이 작은 화로에 잔가지를 넣고 불을 지피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피우고 앉아 불을 보고 온기를 느끼다가 불이 사그라들면 노을빛 같은 잿불을 바라보며 마냥 그 앞에 앉아 있고 싶었다. 일하다가 손님이 끊긴 시간이면 짬짬이 이발소 주변 동네 길을 걷다가 어느 날은 이발소 건너편에 있는 주차장을 몇 바퀴 돌았다. 주차장을 크게 돌다가 커다란 나무 주변으로 반경을 좁혔다. 나무 주위로 빙빙 돌며 걷다 보니 그 나무에 죽은 잔가지들이 많이 달려있는 것이 보였다. 직업의식이 발동되었는지 나무에게도 이발을 해주고 싶어 졌다. 바싹 마른 잔가지들을 꺾어내다 보니 마른 잔가지들을 모아서 화로에 불을 지피면 불도 쉽게 잘 붙고 나무 타는 냄새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반짝 들었다. 비닐봉지에 슬렁슬렁 담아가며 죽은 잔 가지를 열심히 솎아냈다. 한데 그때 카우보이 용품점에서 나온 중년의 백인 남자와 젊은 백인 아가씨가 내 쪽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네며 하는 말이 자기 나무를 손질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나 자기 나무이니 건드리지 말고 가만 놔두면 고맙겠다는 것이었다. 인종차별을 한다고 안 좋게 소문난 그 가게의 백인 매니저였다. 주차장은 시에 속한 공영 주차장인데 어째 이 나무는 또 자기 나무라는가? 그렇다는데야 뭐라고 하겠는가. 손에 들고 있던 잔가지를 고대로 그 자리에서 떨어뜨렸다. 길거리에 널리고 널린 게 잘리고 꺾인 나뭇가지들인데 저 인간이 지금 뭐래는 겨?! 김이 팍 새 버려 이발소로 돌아왔다. 이발사 동료들에게 저 가게에서 나온 어떤 인간이 저게 자기 나무라고 건드리지 말란다고 했더니 히스패닉인 리치가 말하길, 그 가게는 백인들이 주인이고 백인들만 드나드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샾이라 자기는 절대로 안 들어간다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나도 몇 번 들어가서 구경해 본 적이 있는 곳이었는데 카우보이 부츠와 모자, 작업복 등을 파는 곳이었다. 물건은 그저 그런데 가격은 비싸게 붙여놔서 살게 없다며 둘이서 뒤 담화를 하고 있는데 키는 180센티미터에 늘씬하고 예쁜 스물한 살짜리 우리의 여신 모건까지 합세했다. 고등학교 때 그 가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었단다. ' 그 사람은 저 가게 매니저일 뿐인데 저 나무가 자기 거라고 그런다고요? 말도 안돼!' 모건이 일할 때도 사사건건 말도 안 되는 일로 걸고넘어져 아홉 달 만에 그만뒀다고 했다. 그해 크리스마스에 선물이라며 종업원들에게 5불짜리 가게 쿠폰을 나눠 주기에 그 참에 오빠 셔츠를 선물로 사면서 쿠폰을 쓰려고 했더니만 네것을 사야만 쿠폰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하여 황당했단 이야기를 그녀 역시 침을 튀기며 털어놓았다. 어쨌건 나는 그렇게 모은 나무 쪼가리들을 발코니에 보관했다. 며칠 후 눈보라 치던 어느 날 밤 새벽 두세 시에 잠에서 깼다. 전날 밤 초저녁부터 잠이 들어 이미 여덟 시간을 자고 난 후라 다시 잠 들 수가 없었다. 이 시간에 뭘 하면 좋을까 싶었는데 눈이 몰아치는 오밤중이니 안전하게 화롯불을 피워볼 수 있겠다 싶어 대충 두꺼운 코트만 걸치고 발코니로 나갔다. 쭈그리고 앉아 화로에 신문지로 불을 붙이고 주워온 잔가지들을 조금 올려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장작과는 다르게 불은 쉽게 붙었고 적당하게 조그마한 화롯불이 되어주었다. 모두 잠들어 있는 시간이라 누가 연기를 보고 불난 줄 알고 신고할 일도 없었으며 눈이 마구 내리니까 불꽃이 번질 염려도 없었다. 세상은 모두 잠든 듯 고요한데 나만 홀로 눈 속에서 화롯불 놀이를 하고 있는 동안에 호롱호롱 타는 화롯불도 예뻤고 나의 혼불놀이 풍경을 눈내리는 허공에서 거리를 두고 내려다보니 그림처럼 예뻤다. 지금도 화로 속 예쁜 불의 모양이 머릿속 투명 스크린에서 타오르고 있고 나무의 살 터지는 소리가 타닥타닥 들리고 나무 타는 냄새가 코끝에 맴 돈다.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해주는 선물이란 이런 것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