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내가 되기 위해서
마음을 자주 잃습니다.
작은 상처를 흉기 삼아 나를 못살게 굴고 깎아버리고 베어내고 벗겨냅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죠.
내가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되면 도통 채우려고 하기보다 자책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못해'하면서요.
이미 망가졌는데 굳이 마음에 힘을 줍니다. 아무런 보탬도 안되는데 말이죠. 힘을 들이다 또 금세 지쳐버립니다.
애써 마음을 달래다가도 한없이 맥 빠지게 하는 것에 푹 적셔버립니다.
그래도 참 신기한 것은 계속 쓰고 싶고, 두드리고 싶은 마음이 아직 내게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제게 글쓰기는 칫솔에 묻은 치약거품을 물로 씻어내는 일과 비슷합니다.
이에 묻은 더러운 것을 닦아낸 칫솔을 깨끗한 물에 씻어 흘려보냅니다. 남들에겐 차마 하지 못했던 말과 드러내지 못한 감정들, 나를 썩게 하는 것들을 글로 닦아내고 씻어냅니다.
매일 양치를 하듯 글을 씁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무엇이라도 쓰는 삶은
평범한 일상에 더없는 의미를 더한다.'
쓰는 삶. 제겐 참 소중합니다. 내가 없이는 아무것도 쓰이지 않으니까요. 나를 가지고 나를 씁니다. 쓰면서 길을 발견합니다.
안정된 삶을 살고 있지만 불안을 찾아 나서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방향도 도착지도 모르는데 떠나고 싶을 때요.
누구는 '멋있다' 하고
누구는 '현실을 모른다'라고 합니다.
날아올라 닿고 싶어 하는 곳을 모두가 '이상'이라 부르면서 정작 그곳을 향해 날갯짓을 하는 사람들을 '이상'하다고 부릅니다.
그래도 날고 싶습니다.
당신도 날고 싶어 한다는 걸 압니다.
지금은 구르고, 기어가고, 한 발짝 떼는 것이 티도 안 난다 해도 우리가 언젠가 사뿐히 걷고 발을 구르다 뛰고, 한껏 몸을 움츠렸다가 날지 않을까요?
그때가 돼서야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후회할 겁니다.
'이상해도 한번 해볼걸.'
이상해진다는 건 내가 되는 일입니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그 모습이 가장 나다운 모습입니다. 나는 이상해지고 싶습니다. 아직은 주춤거리지만 나도 날 수 있다는 걸 스스로 보고 싶습니다. 남들이 아닌 나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숨겨둔 날개를 펼쳐 나는 날,
그때 가장 내가 될 겁니다.
마음을 잘 잃는 나지만, 내 마음을 잘 읽는 내가 되어 날기 좋을 때를 찾아 날겠습니다.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하늘 아래서
만날 날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