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텼어.
할 줄 아는 게 정말 그것뿐이라.
꿈이 있어서가 아니고 목표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
사실은, 안 버텼어. 버티는 건 거창하잖아.
살았다. 그냥 살았어. 눈 떴으니 살았다.
포기할 용기가 없어서.
텅 빈 눈과 머리를 하고 나갔다 들어와선 옆으로 누워 침대에 딱 붙어 있었고, 울화가 치미는 날에는 중요한 회의에 안 가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아빠 말에 간신히 회의만 하고 조퇴를 해버리고, 성가시게 하는 사람 앞에선 울면서 대들기도 했지. 그 사람은 지금도 그러고 산다더라.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지쳐 혼자 카페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고, 불 꺼진 방에 누워 초침 소리만 들리는 적막을 좋아했고, 그런 날을 붙잡고 뭔가를 써대는 밤이 많았어. 그렇지만 또 눈물은 잘 안 흘렸어.
우는 것마저 힘이 들어서 그랬을까.
지겹고, 지루했으며, 도망치듯 사라지고 싶었어. 되감기, 빨리 감기도 안 됐다. 일시정지도 없고 계속 돌아가는 재생버튼만 눌렸어.
그 숨 막히는 순간이 찰나와 같은 스침임을 알았다면 그때 그러지 않았을까. 가장 예뻤던 시절을 충분히 누렸을까. 모르겠다.
그리 스스로 칭찬해 줄 것도 없는 지난날이야.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은 한 마디는 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