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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하면서 생각을 또 하는 나

by 주명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면 꽤나 피곤이 몰려드는 한 주를 보냈다. 일찍 이불을 덮게 되고, 나도 모르게 잠드는 하루들이 잦았다. 쓰지 못한 날도 있었다. 쓰고 싶지만 딱히 풀어낼 말도 없고, 육체의 피로를 이길 수 있는 정신력은 아닌지 내려앉는 눈꺼풀을 그대로 내려가게 했다. 어떤 날은 그래도 써야겠다 싶어 짧게 쓰곤 바로 잠들었다. 퇴근 후 알아봐야 할 일도 있어서 써 내려가는 시간도 많지 않았다. 짧은 글이라도 앉아서 쓴다는 건 꽤나 에너지가 필요하고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노동이다. 끝맺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쓰기는 내게 취미가 아닌 걸까?


아무튼, 그러다 보니 깨달은 건 내 마음대로 사는 게, 현실보다 나의 가치관과 정신이 더 중요하다 여기며 사는 건 많은 노력이 필요한 영역이었다는 사실이다. 육체에 갇혀있는 3차원 세계를 잘 살아내지 못하면, 4차원의 정신세계를 살아낼 수 없겠구나. 나는 이제 현실도 잘 살아내고 싶다.


한때 어린 나는 주어진 현실보다 내가 바라는 이상향을 중시했다. 생각하는 삶만이 남들과 다른 차원의 삶이라 생각한 시절이 있었다. 사실은 현실이 싫어 도망가고 있었다. 이제는 현실과 발맞춰 걷는 탓인지 내가 바라는 삶만큼이나 눈앞에 있는 삶도 나를 또 다른 차원의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스승이라는 걸 안다. 완벽히 현실의 삶에 만족한다 말할 순 없지만 충분히 만족할 만한 삶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괴롭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두 개의 삶을 사는 기회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영원할 줄 알았던 작심은 변한다. 변색된 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다시 색을 입히면 된다는 결심을 한다. 색이 조금 빠진 것뿐 빛을 잃진 않았으니까.


오늘은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썼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는데 또 결국 어떤 끝맺음을 하고 있다. 무엇 하나 쉽게 시작하지 않고, 뒷심이 부족해 이 정도면 됐다며 흐지부지하는 내가 언제나 글의 마침표를 찍어내는 걸 보면, 타자를 두드리는 시간은 내게 노동도 취미도 아닌 듯하다. 그럼 뭘까.


그나저나 동생이 몇 주 전에 눈썹 정리를 두 번 해줬는데 한 번만 하고 말았어야 적당히 내 개성을 살렸을 텐데 하고 후회하는 중이라 아침마다 밀어 제꼈던 눈썹을 이제 그냥 내버려둬야겠다. 이 말을 왜 하냐면 글을 쓰는 내내 이 생각을 했으니까. 생각을 하면서 생각을 또 하는 나. 어쩌면 정말 오묘한 차원의 사람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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