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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by 주명


가끔 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생의 종료를 말하는 건 아니고요. 따분하고 지루하며 재미없다는 걸 거대하고도 건방지게 말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마음에 기쁨을 들여야 한다는 삶의 엣-센스는 압니다. 뇌과학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오늘 아침에 했습니다.

“아- 재미없어” 하면서 드립백에 물을 붓는 아침이었는데요, 며칠 전 언어습관이 뇌를 바꾼다는 내용의 영상을 엄마가 보내왔습니다. 너무 길어서 안 봤는데요, 영상 길이가 50분에 가까워서 안 봤습니다. 왜 영상이 길면 보기가 싫을까요. 시간을 뺏기는 기분이 듭니다. 차라리 책을 사서 읽어보자 싶었습니다. 독서는 시간을 안 뺏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저는 “예.”라고 말하겠습니다. 독서는 주도적이고 날 위한 저금 같아서 그렇습니다.


아 어쨌든, 드립백에 물을 붓고 있었죠? 혹시 지금 물이 넘치고 있는 건 아니겠죠? 당연히 안 넘치죠. 아까 아침에 제대로 따랐으니까요. 재미없어라고 말했다가 엄마가 보내준 뇌과학 영상이 생각나서 “아- 행복하다”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신기하게 마음이 정말 안 변하더라고요. 한 번만 말해서 그런가, 다음에는 다섯 번 말해보겠습니다. 열 번은 오히려 아침부터 진 빠질 것 같습니다. 계속 반복되면 행복에 무뎌질 것 같아서 그런가. 인생도 그렇습니다.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죠. 그래서 가끔 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 인생이 버전업 되지 않아 그런 것 같습니다. 남들 취업에 연애에 결혼에 승진에 이직에 육아에 여념이 없고 심지어 이혼을 고민하는 나이에 전 고민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무미건조한 인생이란 것도 압니다. 제가요, 자기인식이 좀 됩니다.


평평한 길을 걷는 것보단 계단을 걸어야 허벅지 근육이 더 발달되듯 사람이 단계를 넘어설 때 더 단단해지죠. 인생에 지금 계단이 없습니다. 계단을 밟아야 할 것 같은 일이 있긴 한데 그게 자꾸 스트레스를 주더라고요. 거의 두 달째 위가 말썽입니다. 아파요. 마음이 힘든 게 나은 건지, 위장이 힘든 게 나은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뭐든 아픈 건 좀 짜증 나는 일이긴 합니다만.

소리를 지르고 싶은데 지를 기력이 없어 오늘도 씁니다. 재미없는 인생이긴 하지만 쓰는 건 늘 괴롭고 재밌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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