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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두 시의 달리기

인생이란 달리기

by 주명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장을 걷겠다는 다짐은 아침 식사를 하고 소파에 누워 다시 잠든 탓에 너무 더운 한낮의 걷기가 되어버릴 참이었다. 내가 잔 게 아니라 잠이 날 잠들게 하는 그런 날이었다. 다행히 구름 낀 하늘 덕에 해가 가려져 운동장을 돌아도 눈을 작게 뜨고 양 볼이 빨개질 한낮이 아니었다.

대학교 운동장은 가운데는 인조잔디가 있고 가장자리에는 여덟 개의 트랙이 있다. 한가운데는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년들이 노란색, 빨간색, 형광색, 말 그대로 형형색색 축구화를 신고 한 참 축구를 하고 있었다. 나와 그녀는 덥지만 덥지만은 않은 그 운동장을 걸었다.

챌린지 어플에 가입해 자신만의 목표를 세워 목표를 달성한 참가자들에게 참가비 리워드와 300만 원을 두고 참여한 사람 수만큼 나눠 주는 상금을 받아 다시 한번 지친, 아니 애초부터 늘 지쳐있을지도 모르는 삶에 의지와 생기를 불어넣으려는 그녀와 함께 걸었다. 돈을 돌려받는 게 목적은 아니었다. 잃어버린 삶을 돌려받기 위함이었으리라.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과 자신이 밉기도, 싫기도 그러나 포기할 수도 없는 그 답답함을 벗어버리고 원래 살아있어 팔팔한 삶과 나를 돌려받기 위한 달리기.

나는 그녀와 운동장 반 바퀴씩 두 번을 뛰었고 나는 원래 소화가 잘 안 되는 탓에 속이 울렁거려 두 번의 뜀박질 후 어지러운 머리와 메스꺼운 속을 하고 느릿느릿 걸었다.

하루 만보씩 걷는 목표를 세운 그녀는 운동장을 계속해서 반 바퀴씩 뜀박질했다.

"나는 계속 반 바퀴씩 뛰어서 언니가 있는 곳으로 갈게, 만날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그녀는 나보다 계속 앞서 갔다. 분명 앞서갔지만 가끔 그녀를 찾으면 나보다 한참을 뒤에서 달려왔다. 인생은 붉은 트랙에 있었다. 뒤에 있지만 느린 것이 아니고, 앞에 있지만 빠른 것이 아니었다.


인생은 앞서거나 뒤서는 게 아니라 그냥 각자의 자리를 걷고 달리는 것이었다.

"턱을 들고뛰는 것보다 정면을 바라보며 뛰는 게 숨이 덜 차"라고 말했던 그녀는 저 멀리서 정면을 보고 가냘픈 몸으로 달리고 있었다.

나는 혼자만의 걷기를 했고 순간 어느 나무에 숨어있었는지 모르겠는 매미들의 한결같은 고함소리를 들었다.

이 한 여름에도 소리가 있다.

몇 마리인지 가늠이 안 되는 매미들의 맴맴 거리는 소리, 덥고 습한 한 낮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소년들의 공차는 소리, 내 귓가를 지나는 바람소리, 아주머니의 보드 소리, 뜀박질로 숨찬 숨소리.

그렇게 나를 매번 감싸고 있던 여름은 갑자기 존재감을 나타나며 너는 지금 한 여름에 서 있다고 말해주려고 소리를 낸다.

어느 순간, 우리는 정하지 않은 때에 만났다. 우리의 만남은 계획이었으나 때는 정해지지 않았다. 우리 앞에 닥쳐오는 모든 인생이 그렇듯.

넌 만보를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뛸 때마다 용기가 생기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이 솟는다고 말하던 너는 왜 달리고 싶었을까. 달리기가 널 용감하게 만들까. 아니면 나약하다고 스스로를 나무라지만 아직은 여전히 용감한 네가 달리기를 선택한 걸까.

너는 달리면서 여름의 소리를 들었을까. 아니다. 나는 밖의 소리만 들었지만 너는 안의 소리를 들었겠지. 너를 듣기 위해 달렸겠지.

네가 걸음으로 인생을 보고 싶었나 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네 인생에서 만보로 인생과 너를 확인하고 싶었나 보다. 분명 만보를 걸은 내가 여기 있고 오늘도 인생을 살았다는 걸 네 숨소리와 두 다리로 알고 싶었나 보다.

너의 만보 걷기는 2주간의 챌린지 이벤트가 지나면 끝나버릴 수도 있다. 아니면 계속해서 만 걸음씩 걸을 지도.

너는 만 걸음을 걸어도 되고, 걷지 않아도 된다.

너는 이미 셀 수 없는 많은 걸음으로 여기까지 왔다. 너는 또 걸을 것이다. 걸어서 어느 순간 세상을 울리는 매미보다 큰 소리를 내고 한 여름 두 시의 태양보다 빛나고 뜨거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계속 너보다 뒤에, 그리고 앞에 있으면서 혼자 뛰는 너의 끝없는 달리기를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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