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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오후 5시에 올리는 5월에 썼던 글

by 주명



‘한 시간만 참으면 탈출이다!’

매일매일 속으로 외친다. 이 답답한 감옥을 탈출할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4시 30분이 지나가면 하루가 다 지난 것 같다. 시간이 빨리 간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누가 시간에 제동을 걸어 놓은 건지 당최 앞으로 나가질 않는다. 마의 구간이다. 앞 팀 막내와 한참 메신저로 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3분 지났을 때의 마음속으로 무릎을 꿇는 좌절감이란!

날씨가 너무 좋다. 이런 날은 사실 오후 5시가 아니어도 몸이 베베 꼬인다. 몸은 의자에 있어도 마음은 이미 창문 밖에 나가 있다. 나는 1층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과 회사 정원의 초록의 나무가 얼굴 옆에서 얼씬 거리면 마음이 콩닥콩닥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꺼이 봄의 얼굴을 마주하려고 뛰쳐나갈 준비는 항상 되어있으나 나는 사회적 동물이다. 잠시 동물적 본능은 잠시 내려놓고 사회적인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어쩌다 병원 진료라는 이유와 핑계로 한 시간 일찍 조퇴하면 티는 안 냈지만 기분이 너무 좋다. 이미 직원들은 벌렁거리는 내 콧구멍과 상기된 얼굴, 빠르게 문을 통과하는 내 몸짓을 알아챘겠지. 길가로 나가면 왜 이 시간에도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지, 카페에는 왜 또 사람들이 많은지, 아직 퇴근 시간도 아닌데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북적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땐 세 가지 생각이 든다.


첫째, 직장이 없는 사람들이다.

둘째, 사무실에서 잠깐 나온 사람들이다.

셋째, 연차를 썼다.


나의 생각은 직장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사무실 안에서의 시간은 정갈하지만 밖에서의 시간은 각자의 방향과 모습으로 뻗는다. 진료를 받고 아이스커피 한 잔 테이크 아웃해서 집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은 가볍다. 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굳이 햇빛과 불어오는 바람과 사람들의 발걸음과 그림자 사이를 걷는 건 사무실에서 조금 일찍 나온 나에 대한 존중이다.

같은 시간이지만 참 웃긴 게 평일의 오후 5시는 설레도, 주말의 오후 5시는 우울하다. 주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초조함이 나를 조인다. 특히 일요일 오후 5시는 거의 그로기 상태가 된다. 그리고 왜 벌써 마음은 월요일에 가 있는 건지. 내 몸은 가만히 있어도 마음은 어딜 그렇게 자주 나간다. 주말은 왜 빨리 가는 거야 진짜! 예전에 주말이 짧다고 느껴지는 이유를 읽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정답이었다.


‘평일은 5일이지만 주말은 2일이다.’


너무나 당연하고 명확한 답에 인생의 진리를 깨닫고야 말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금요일, 오후 5시’다. 이건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레다. 머지않아 먹자골목의 테이블은 앉을자리가 없고, 번화가에는 네온사인으로 몰려드는 불나방들이 날아다닐 테고, 혼자 집에 있어도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겠지.

일상의 소중함을 놓치면 그 어떤 행복에도 만족할 수 없지 않을까. 우린 굳은살처럼 배겨 버린 일상을 살아간다. 이미 딱 박혀 있어서 없으면 오히려 낯선, 다른 자극에 예민해 질지도 모른다. 그게 지금은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일지라도. 우린 일상을 시작으로 새로움을 향해 뻗어간다.

설레는 특정한 시간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것도 매일. 하지만 종종 행복의 순간을 잊고 살아간다. 오후 5시가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시간은 들리지 않는 소리로 지나가지만 그것을 알아채고 바라보며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을 살아야지.

‘오우! 5시’ 너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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