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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봉 Apr 17. 2021

습(習)의 즐거움

아주 서서히 익어가고 있다

     어젯밤에는 글을 한 편 쓰다가, 참고해야 하는 책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df 문서 형태로 있는 게 아니라서 직접 해당 도서관에 가야만 했다. 자료를 소장하는 기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행히 마침 내가 재학하는 대학에 그 자료들이 대부분 있었다. 순간 짜릿한 기분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런데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나는 학교 근처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녀오려면 왕복 6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든다. 그래서 난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냥 그거 말고 다른 자료들을 참고할까? 꼭 그게 있어야 하나? 집에서 찾을 수 있는 것만 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코로나 때문에 걱정도 조금 됐다.


     한편, 버젓이 구할 수 있는 자료인데 그걸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니 너무나 아쉬웠다. 공부하려는 학생의 도리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또, 찾았던 문헌들이 학교에 떡 하니 있는데 말이다. 이런 저런 마음이 함께 드니까 혼란스러웠다. 그때가 새벽 4시였다.


     결국, 나는 선택을 굳히고 잠을 자러 갔다. 학교 도서관으로 가야겠다는 게 결론이었다. 오전 9시 반에 일어나자마자 대충 씻은 다음에, 밥을 초스피드로 먹었다. 그리곤 버스카드를 주머니에 넣은 채로, 후드 하나 걸치고 집을 나섰다.



     오후 한 시 가까이 학교에 도착해서 원하는 자료를 열람했다. 원래 찾으려는 책들보다 주변에 더 많은 문헌이 있어서 몽땅 가져왔다. 참고할 부분을 보면서 어제 쓰다 만 부분부터 이어서 작성했다. 내가 찾은 자료들은 약간 고문서였는데 읽다 보니 재미도 쏠쏠했다. 관심이 가는 분야의 사료니까 저절로 흥미가 돋구었다.


     한 페이지 정도 쓰고, 나중에 필요할 것 같은 부분도 사진 찍어 놓으니까 다섯 시간이 훌쩍 지났다. 도서관에서 내려올 때는 점심을 따로 먹지 않았는데도 별로 배가 안 고팠으며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 순간 옅게나마 느꼈다. 습(習)의 즐거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찾고 싶었던 정보를 정리하는 즐거움을 깨달았다. 어젯밤에 갈지 말지 속으로 고민했던 만큼 뿌듯함이 비례했다. 이 맛에 대학생이 죄지으면 간다는 대학원에 가는 걸까?


     나는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집에 들어가면 오후 10시가 넘을 테고 이젠 저녁 먹을 시간까지 놓쳤다. 또, 몸은 매우 피곤해서 금방이라도 자고 싶다. 그럼에도 이렇게 하길 잘했다는 마음이 드는 건 왤까? 아마도 배운 것을 익히는 ‘습’의 과정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 아닐까. 앞으로 더 배워나가야 할 것들이 많겠지만, 그래도 한 걸음을 내디뎠기에.


     집으로 향하는 고속버스 위에 달린 TV에서는 김아랑 선수가 트레이닝하는 모습이 방영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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