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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봉 Jun 21. 2021

신학대학원 입학원서를 썼습니다

결국, 그 길을 가려고 합니다

     며칠 전에 저는 신학대학원 입학원서를 작성하였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써야 하는데, 써야 할 분량이 무척 많아서 거의 하루 종일 작성했던 것 같습니다. A4 용지로 14장 가까이 나오더군요. 자기소개서 안의 질문 항목들은 평소에 제가 자주 생각하고 경험해왔던 주제였기에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이 새벽이니까, 이제 날이 밝으면 원서 서류를 제출하려고 합니다. 네, 드디어 저도 대학원 진학을 하나 봅니다.


     대학원, 무엇보다도 ‘신학대학원’을 선택하기까지는 상당한 고민과 내적 갈등의 기간이 있었습니다. ‘과연 나는 목사로 살아갈 것인가?’, ‘현재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이토록 암담한데, 목회자의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목사에 합당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가?’, ‘목사가 아니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등의 질문을 저 자신에게 하면서 말입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제가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신학대학원을 가는 것’이 그다지 큰 메리트가 없어 보였습니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편견을 심어주거나, 첫인상이 별로 탐탁지 않게 느끼게는 할 수 있겠지만요. 특히 코로나19 이후에 더더욱 그러함을 느낍니다.



     아마 이러한 의문을 가진 지는 약 3년여간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제가 군대에 입대하기 전부터 고민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때는 정말로 신학대학원에 가지 않으려고 생각했었습니다. 만약 가더라도, 외국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하였죠. 그런데 결국 저는 수많은 갈등과 판단, 비교 후에 모교의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신학대학원생이 되면 반드시 이수해야 할 의무 사항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모든 커리큘럼을 잘 실행할 것임을 감수하고서야 비로소 지원할 수 있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대학교(학부)에 올 때까지만 해도 저는 확고한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목회자가 되고, 선교사가 되고, 부흥사가 되어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일념이었지요. 개척교회를 담임하고 크나큰 성장을 하는 것이 제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학부 생활을 하면서 여러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제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은 ‘청소년 사역자의 성(性)적 일탈과 타락’이었습니다. 언제나 존경했고, 늘 닮고 싶다고 생각한 몇몇 목회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제가 선망했던 부흥사이자, 중·대형교회의 담임 목사이기도 했죠. 하지만 외형적인 모습으로는 눈부신 하이라이트를 받았지만, 감추어진 베일 속에서는 전부 파렴치한 일들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의혹이 제기되었을 땐 ‘누가 헛소문을 퍼뜨렸나?’ 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 불찰이었습니다. 나중에 사실이 속속이 밝혀지고 기사화된 다음에야, 저는 ‘속았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는 ‘목회자’라는 직업이 극도로 싫어지더군요.



     반드시 목사가 되어서만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아니, 평신도가 더욱 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함에도 ‘목회자’가 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이에 대해 아직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신학대학원 원서를 다 쓴 이 마당에도 말입니다. 면접관 교수님께서 ‘왜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형식적으로 답변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진정 ‘가야만 하는 길’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그 길을 가지 않더라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좀더 어둡게 변하지 않는다면 다행입니다.


     이쯤 되면, 누군가는 이렇게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목사가 되겠다고 하는 놈이 무슨 그런 믿음 없는 말을 하냐?”라고 말입니다. 뭐,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그것이 현재 저의 가감 없는 실존적인 모습이기도 하니까요. 약 두어 달 후에는 학부를 졸업하고, 별일이 없다면 대학원에 진학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 그때도 이 질문은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목사안수를 받기 직전까지, 아니 목사가 되고 나서도 이러한 의문을 떨치지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 설사 제가 신학대학교에서 목회자 후보생이라고 불리는 신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원이 된다고 해도 말입니다.


     20세기의 걸출한 개신교 신학자라고 평가받는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는 이러한 말을 남겼습니다. “제 인생의 거의 모든 지점에서 저는 두 가지 가능성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에 완전히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를 위해서 또 다른 하나를 강력하게 반대하기도 힘든 일이었습니다.”[1] 그는 소위 ‘경계선 위의 신학자’라고 불렸습니다. 어떤 것 하나도 확실하게 말할 수 없으며, 늘 무언가의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했던 신학자가 바로 틸리히였습니다.


@Paul Tillich


     저 또한 그가 직면한 상황 한복판에 서 있는 건 아닌지 돌이켜봅니다. 무엇 하나도 확실하게 선택하지 못하는 상태에 말입니다. 세상에는 손쉽게 확신하고 결정을 내릴 만한 게 그다지 없어 보입니다. 그것이 비록 신에 대한 믿음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는 “이것이 신의 뜻이다!”라고 하면서 반사회적인 일들을 가차 없이 저지릅니다. 그러나 그런 행태가 신의 모습을 완전히 망쳐 놓을 때도 많습니다.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시기에 직면한 여러 교회와 목사들의 대응 방식을 목도하면서 이미 경험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끊임없이 신에게, 또 저 자신에게 질문하면서 이 길을 걸어가고자 합니다. 만약 이러한 최소한의 성찰조차 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가지 않았던 게 더 좋을 뻔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제가 지금 브런치에 본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성찰적 시도 중 하나에 해당합니다. 앞으로 저는 신학대학원생으로서, 목회자 후보생으로서 느끼는 다양한 사유의 단편들을 이곳에 적어 내려갈 것입니다. 잘한 일, 못한 일에 상관없이 무덤덤하게 적다 보면, 저만의 작은 역사(歷史)가 완성될 수 있겠지요. 바라기는, 제 삶의 자국이 누군가에게 길잡이가 되어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중학생·고등학생·대학생 때 각기 한 번씩 읽은 책인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김남준 저)라는 책이 떠오릅니다. 이 책의 제목에 대해서는 늘 거침없이 답변했습니다. “네, 당연하죠!” 근데 이번에는 그리 확신을 갖고 답하지는 못할 듯싶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묵묵히 걸어가 보겠습니다.” 여기까지가 현재의 제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이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1] 폴 틸리히, 김흥규 역, 『경계선 위에서』, (서울: 동연, 2018), p.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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