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봉 Jul 04. 2021

아직도 갈등 중입니다

더 이상 후회하기는 싫어서

     저번 주에는 입학원서를 비롯하여 추천서, 졸업예정증명서, 성적기록부 등 제출 서류를 모두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아직 마음이 복잡합니다. ‘과연 이 길을 가는 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서비를 내고 이제 면접과 필기시험이 코앞인데도 ‘그냥 지원 취소를 할까?’라며 수도 없이 고민하였습니다. 엊그제는 타 대학원 입시 설명회까지 온라인으로 참여했습니다. 언제까지 이 막연함이 지속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종교 관련 연구자로 살아가고자 할 때, ‘목회자’라는 타이틀이 반드시 필요한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방해가 될 것 같다는 염려가 먼저 들었습니다. 한때 파트 교육전도사로 일하면서 사역을 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점을 깊이 느꼈기에 그렇습니다. 주말이라는 시간을 교회에서 보내야 하고, 그뿐 아니라 주중에도 필요시에는 사역하는 데에 체력을 할애해야 합니다. 매주 설교를 준비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감정입니다. 사역자로서 공부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기 관리 능력이 요구됩니다.


사역한다는 것 = 주말이 사라짐을 의미합니다..


     때로는 체력이 방전되어 주말에 책을 한 페이지도 읽지 않았을 적도 많았습니다. 아마, 사역을 하지 않고 학업에 매진하였을 때와는 분명히 아웃풋에서 차이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신학대학원에 진학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일상의 연속을 살아가겠다고 공언함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일단 제가 지원한 신학대학원에서는 필수적으로 일정 기간 이상 사역을 해야 졸업할 수 있습니다. 설령, 그런 조항이 없더라도 제가 속한 교단의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사역 경험이 쌓여야만 합니다. 전과 같이 학업과 사역에 허둥지둥거리면서 추후 연구자로서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있을지 솔직히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결국 신학대학원에 가야겠다고 결심한 건 다름 아닌, ‘지도교수님의 한 마디’로 인함이었습니다. 물론, 이는 강요나 압력이 일절 담겨 있지 않은 조언이었습니다. 대학 수업을 들을 때면 항상 앞에 앉아서 경청하고, 질문도 곧잘 하였기에, 저는 교수님들과 대화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에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교수님의 연구실에 찾아가서 상담이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곤 했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대학교에서는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약 3년간 ‘주임 교수님(학부 지도교수님)’과 만남의 시간을 갖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약 2~30명의 학생들이 교수님과 대학 생활을 가감 없이 말하거나, 건의 사항 등을 요청하기도 합니다. 멘토링을 받기도 하죠. 또, 한 학기에 최소 한 번 이상 지도교수님과 상담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한 학기에 두어 번은 찾아갔던 것 같습니다. 원래 6학기만 그러한 과정이 진행되는데, 전 10학기째 대학을 다니면서 매번 교수님께 찾아갔습니다. 대학원 진학에 관해서도 몹시 궁금한 점이 많았기에 주저 없이 질문하기도 했었죠.



     하루는 지도해주시는 교수님께 제가 느끼는 심정을 진솔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꼭 신학대학원에 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여쭤봤습니다. 왠지 그 교수님만큼은 다른 답변을 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예상외로 교수님 또한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 학위 과정을 한다고 해서 커리어가 생각보다 늦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시면서요. 너무나 당연하게 이야기하시길래 조금 허탈한 감도 들었습니다. 그동안 고민을 얼마나 했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대답해주시나 싶었죠. 그날 상담했던 내용을 곱씹어보면서 저는 교수님 연구실을 나왔습니다. 그로부터 3년이 흘렀군요.


     그런데 돌이켜보니까, 이 상황이 왠지 모르게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제가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었던 그 순간이 기억났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저는 피아니스트에서 목회자가 되기로 전향하였습니다. 굳은 결심을 하고 난 뒤에는, 바로 피아노 학원으로 갔지요. 피아노 학원 선생님께는 “꿈이 바뀌었습니다. 피아노 학원을 끊어야 될 것 같아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피아노 선생님께서는 무척 아쉬운 표정을 지으시면서, “알았다. 근데 그래도 피아노는 취미로 치면 좋겠다.”라고 나지막이 말해주셨습니다. 하지만 ‘목표 지향적’이었던 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피아노 학원을 끊고, 피아노 치기를 아예 중단했습니다. 당시에는 그게 최고의 선택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요즘에 느끼는 점은 ‘그때 피아노 선생님 말씀을 들을 걸…’입니다. 왜냐하면 다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거든요. 사역을 하면서, 군대에 다녀오면서, 피아노는 또 다시 둘도 없는 저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피아노를 끊지 않고 계속 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말이죠. 그럼 지금보다 연주할 수 있는 레퍼토리도 훨씬 많았을 것이며, 좀더 아마추어로서 전문적으로 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음악에 대한 소양과 이해도 더욱 풍부하게 되었겠죠. (물론 피아노를 치지 않는 기회비용으로써 얻은 것도 많겠지만요)



     이러한 일련의 후회가 떠오르니까, 교수님께서 제게 건네주신 조언이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비록 제가 지금은 학업과 연구에 집중하느라, 사역에 할애하는 시간도 아깝다고 느끼지만, 과연 나중에는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성실하게 해나가야 하겠지만, 그래도 훗날의 저는 누구의 선택이 더 좋았다고 회상할까요? 한 번 후회를 겪고 나니까, 쉽사리 제 선택이 맞을 것이라고 장담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교수님께서 으레 신학대학원에 가는 게 낫다고 말씀해주셨더라면 (심지어 학계에 남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더 추천할 만한, 무엇보다도 ‘저를 위한’ 선택일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최종 결정을 하였습니다.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말입니다. 똑같은 종류의 후회를 두 번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당연히 신학대학원에 가는 게 만고불변의 정도(正道)는 아닐 겁니다. 여기에서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미래는 달라질 것입니다. 만약, 사역과 공부의 밸런스를 못 맞추고 미적지근하게 했다고 하여, 교수님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전적으로 저의 책임이겠지요. 그러나 기회는 언제나 준비된 자의 것이라고 합니다. 신학대학원에 간다는 선택도 어쩌면 제게는 하나의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 후회하는 건 실수입니다. 허나, 두 번 후회하는 것은 곧 실력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학대학원 입학원서를 썼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