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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봉 Jun 26. 2021

날로 먹으려고 하지 마라

실패는 너를 위한 선생님이다

     종강도 했고, 여름방학도 시작했기에 평소에 공부하려고 생각해두었던 것들을 시작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할 일은 바로 MOOC 강의 수강이었다. 요즘은 우수한 대학의 좋은 강좌들이 무료로 개설되고 있어서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다른 대학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K-MOOC나 KOCW에서 주로 수강할 수 있고, 외국의 경우에는 Coursera나 edX와 같은 곳에서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다. 학기 중에는 과제 하랴, 보고서 쓰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준비하랴, 뭔가 잡다한 일이 겹쳐서 제대로 수강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여름 방학에는 최대한 듣고 싶었던 강좌들을 들어보려고 한다.


대학 수학에 관심이 있다면, 이 강좌를 추천합니다. 교수님께서 잘 가르쳐주십니다 :)


     그 첫 시작으로 나는 ‘기초 선형대수학’ 강의를 선택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수포자(및 과포자)가 되기로 선언한 나는 그와 같은 행동은 지금에야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당시에는 대학 입시를 위한 내신 성적에 들어가지 않았고, 과학(특히 생물학)은 공부하는 게 득보다는 해가 더 많으리라고 생각했기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 내가 진학한 신학대학교는 내신 성적으로 ‘국어’, ‘영어’, ‘사회 탐구’를 중점적으로 보았다. 과학 성적은 필요가 없었으며, 수학 성적은 1학년 때까지만 유효했던 것 같다. 평가 기준이 이렇다는 것은 한국의 개신교계가 이공계열 과목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을 반영한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한때 창조과학류의 설명을 굳게 믿어왔던 터라서, 과학 공부에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한동안은 그런 입장을 고수했지만, 요즘에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 이야기는 다른 지면에 더욱 자세하게 풀어보기도 하겠다. 아무튼, 현재 내 상황은 ‘수학’ 및 ‘과학’ 등과 같은 지식이 필요한 상태다.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사회 통계 방법론을 보다 자세하게 익히기 위함이며,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 까닭은 향후 대학원에 진학해서 연구 주제를 종교와 과학의 학제 간 연구 쪽으로 잡고자 하기 때문이다. 대학생 저학년이었을 때, 교양과목으로도 이공계열 강좌를 수강하지 않아서, 아예 기초부터 쌓으려는 마음으로 온라인 강좌를 신청하였다.



     K-MOOC는 하나의 강좌를 모두 이수하면, ‘이수증’을 발급해준다. 이것은 해당 강좌를 수료하였다는 의미가 있으며, 추후 어딘가에 증빙할 수 있는 서류의 역할도 하므로,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수료증을 받아놓고자 했다. 이번에 수강한 <기초 선형대수학> 강의도 꼭 완강을 해서 수료증을 취득하고 싶었다. 그런데 강의를 하나하나 들어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나는 수학을 손에서 놓은 지 어언 10년이 가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대학 수학 강의를 아무리 기초라고 하지만, 신속하게 듣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또한, 수학은 이론을 배우고 그에 적합한 실전 연습 문제를 푸는 게 매우 중요하다. 직접 수학을 배워보면 알 수 있다. 연습 문제를 풀지 않으면, 이론상으로 배운 내용이 모두 머릿속에서 휘발되고 만다. 총 8강으로 이루어진 강좌였는데, 한 4강까지는 이론과 실전 연습 문제 모두 이해가 다 잘 되었다. 그런데 6강 정도 되니까 이론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문제 풀이만 교수자가 알려주는 그대로 따라 풀었다. 7, 8강에 다다랐을 때는, 연습 문제도 그냥 찍어버렸다.


     내가 이렇게 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다. 그건 ‘종강 날짜’가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K-MOOC의 정책상, 종강 날짜까지 모든 강의 수강을 완료하고, 시험 문제를 풀지 않으면 수료증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 강좌를 듣기 시작한 날이 4~5일 전이었으므로, 나는 한정된 시간 내에 다수의 강의를 들어야만 했다. 시간은 임박해오고, 소화해야 할 분량은 많으니까 공부는 잘될 리가 없었다. 처음에는 차근차근히 이해되지 않으면, 오랫동안 생각해보고 문제도 스스로 풀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없는 마당에는 대충 설렁설렁 이론을 듣고, 문제 풀이로 넘어갔다. 문제를 제대로 풀지도 않은 채 찍기까지 했으니, 이건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것과 다름없었다.


나의 성적표


     공부하려고 강좌를 신청했지만, 결국에는 수료증을 얻기 위해서 ‘공부하는 흉내’만 내었다. 웃긴 점은 하도 문제를 찍어버려서 그런지, 강좌 수료 조건도 충족하지 못했다. 60% 이상의 점수를 득점해야 하는데, 58점을 받아 버렸다. -_-;; 대학교 성적으로 따지면 F다. 60~70점 사이의 구간이 D인데, 난 거기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역시 공부와 성적은 솔직하다. 실제로 내가 습득한 지식의 양은 F가 맞기 때문이다. <기초 선형대수학> 강좌를 수강했지만, 실질적으로 내가 배우고 체화한 내용은 거의 없다. 초반에 집중해서 자율적으로 문제를 풀어보려고 노력했던 그 부분만 지금 기억이 난다. 즉, 열심히 한 만큼만 남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까 일말의 회의감도 든다. 근 5일간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였던 건가? 공부를 한 것인가? 공부하는 척을 한 것인가? 그렇다고 수료증처럼 남는 게 있었는가? 그것도 아니었다면 그냥 쌩쇼를 한 건가? 아까 강좌 종료 시간이 되고 나서, 최종 성적표를 받았을 때는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방학을 산뜻하게 시작하려고 했건만, 시간을 낭비해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뜩이나 소중한 시간인데 이렇게 허비하였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어쩌면 이 경험은 나에게 더도 없이 유익한 가르침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내가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배운 점은 바로 ‘학습(學習)은 정직하다’라는 명제였다. 강의에서 송출된 내용을 완전히 내 지식으로 만들었는가? 그 지식을 응용하여 나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엄밀히 말해서 ‘공부했다’라고 말할 수 없다. 단지 공부하는 ‘폼’을 잡았을 뿐이다.



     앞으로 학자가 되고 싶은 나로서는 공부를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이제 더 이상, 중·고딩이 부모님이나 학원 선생님에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학업을 지속한다는 것은 ‘특권’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미래에 대한 ‘담보’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공부하는 행위는 무언의 기회비용을 지불해야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노동, 여가, 인간관계, 연애 등을 할 시간에 공부하는 것이니 말이다. 물론, 여러 가지의 일을 얼마든지 병행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공부하는 시간’만큼은 다른 일을 하지 못하니까, 그 순간은 최대한 유용하고 알차게 보내야 할 것이다.


     날로 주워 먹기는 언제나 편하다. 근데 그것은 한계가 있다. 운에 맡기는 건 결국 도박과 다름없다. 학생과 학자는 정직해야 한다. 자신이 갈고닦는 학문에 솔직해야 한다. 날로 먹으려고 하지 말자. 합당한 값을 내고 실력을 갖추도록 하자. 그게 큰 그림으로 볼 때 이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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