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어무이. 이 말은 내가 어머니를 부를 때 자주 사용하는 용어다. 예전에 재미있는 만화책(뚱딴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에서 보았던 단어인데, 입에 착착 달라붙어서 즐겨 이야기하곤 한다. 이번 글에서는 어무이와 함께 살고 있는 아들로서, 어무이의 생활 모습을 직접 보면서 자연스럽게 느꼈던 점에 대하여 적어보고자 한다. 어머니가 표준말이겠으나, 나에게는 어무이가 더 친근하게 다가오기에 그냥 어무이라고 쓰겠다.
어무이는 자타공인 ‘프로 열정러’이다. 이 말은 열정이 매우 넘치는 분이시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무언가 하나에 꽂히면 그것에 그야말로 ‘올인’하는 성격을 가지고 계신다. 나도 어무이를 닮아서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어무이는 나보다 더하신 것 같다. 난 오지랖과 관심사가 많아서 이것저것 건드리면서 분산되게 열정을 쏟는데, 어무이는 오로지 한 가지 관심사에 집중하신다. 더 이상 그 주제에 관심이 없을 때까지 끊임없이 계속 파고드신다. 가끔은 대단하다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여러 가지에 집중했던 적이 있으셨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어무이께서 꽂히셨던 대상’은 다음과 같다. 우선 어무이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시다. 따라서 교회의 예배나 부흥회, 새벽 기도 등에 자주 다니곤 하셨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직접 가시는 일은 없지만, 옛날에는 거의 매일 다니시면서 신앙생활을 하셨다. 내가 현재 목회자가 되기로 한 것도 어무이와 함께 교회를 나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마 특별새벽기도회인가, 그때 한 달 가까이 매일 새벽 예배에 출석하면서 목회자의 꿈을 다졌던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무이는 ‘전도’를 무척 열심히 하셨다. 내가 대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 어무이에게 책 한 권을 추천해드린 적이 있었다. <나는 뉴욕의 거리 전도자>라는 책이었다. 당시로서의 나는 꽤 재미있게 읽어서 그냥 흘리는 말로 “한번 읽어보라.”고 말씀드렸다. 어무이는 그 책을 읽으시더니 갑자기 굳은 결심을 하셨다. 그 사람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시면서 말이다. 그때부터 내가 신학대학에서 받았던 전도 훈련을 알려달라고 하시면서, 또 새로운 전도 프로그램을 공부하시면서, 전도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해나가셨다. 그렇게 일을 하지 않는 시간이면, 어무이께서 늘 전도를 하시던 때가 있었다.
한참 전도를 하시다가 어무이의 관심은 ‘책’으로 바뀌었다. 특히 동화책을 많이 읽으셨는데, 아마도 책 읽기 교육의 중요성과 동화책의 가치를 깊이 깨달으셨기 때문인 듯싶다. 아무튼, 이번에는 직장에서 돌아오시거나, 휴일마다 항상 동화책을 읽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한 달에 4~50여 권을 읽으시더니, 1년에 수백 권을 읽고 정리하시는 수준에 이르렀다. 말 그대로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동화책을 읽고 발굴하며 정리하는 데에 모든 시간을 쏟으셨다.
동화책을 약 천 권 가까이 읽으셨을까? 그때부터 어무이는 동화책이 아니라 일반 문학책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렇게 <토지> 전 권을 세 번 넘게 완독하시고, 매주 도서관에 가셔서 새롭게 읽으실 책을 빌려오신다. 한때는 문학 작품을 읽으시더니, 요즘에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관심이 가는 주제를 선택해서 읽고 계신다. 솔직히 어무이가 책을 읽는 양이 대학생이라서 비교적 시간이 널널하고, 앞으로 학자가 되고 싶다는 나보다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나는 과제나 보고서 혹은 논문과 같이 뭔가를 계속 쓰는 입장에 있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지식의 습득’ 차원에서 본다면 어무이가 나보다 많은 양을 투입하시지 않을까?
그런 어무이를 보면서 아버지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신다. ‘만약에, 공부를 할 거라면 엄마처럼 해라.’라고 말이다. 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 공부를 계속해오셨고, 학생들을 끊임없이 가르치셨던 교육자이시기에, 그 말씀이 더욱 와닿았다. 즉, 어무이처럼 하나에 집중하고 그것에 모든 열정을 쏟아서 ‘뭔가를 해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인 듯싶다. 실제로 어무이는 한 가지를 파고드시면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주시기도 했다. 독서량이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글쓰기에 집중하셨을 때에는 ‘작문 실력’이 매우 향상되는 모습을 옆에서 볼 수 있었다.
아주 가끔은 걱정이 될 때도 있다.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시면 조금 휴식을 취하거나, 편하게 지내셔도 좋을 텐데, 그러시는 일은 많지 않다. 또 무언가에 집중하셔서 공부(?)하신다. 나는 할 일을 하다가 가끔 어무이가 계시는 안방에 가곤 한다. 적어도 한두 시간마다 한 번씩은 방을 나간다. 그런데 어무이는 계속 그 자리에 앉아서 몰두하시는 경우가 많다. 너무 집중을 하셔서 몸을 좀 움직이는 게 어떻겠냐고 이야기할 때가 종종 있다. 집중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요즘은 어무이께서 운동을 틈틈이 하시면서 건강을 관리하시고 계신다. 한결 안도가 된다.
그래서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어무이께서 공부를 하셨다면, 나보다 더 잘하실 수 있겠구나’라고 말이다. 어무이가 현재의 내 위치에 있고, 나처럼 학자의 꿈을 갖고 계셨더라면, 진짜 더 탁월한 연구자가 되셨을 것 같다. 그만큼 삶에 대한 열정과 인내심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어무이의 모습을 보면서 ‘학자가 되려는 학생으로서’ 항상 많이 배운다.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어무이처럼은 살아야겠다고 말이다.
난 이것을 ‘어무이의 공부법’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무언가 하나에 푹 빠져서 그것에 몰입함으로써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는 어무이. 그런 자세와 태도를 닮아가고 싶다. 물론, 나는 아버지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얻고 있다. 그건 나중에 다른 지면을 통해 남기도록 하겠다. 아무튼, 어무이의 공부법은 ‘학문의 대가(大家)’들이라면 다들 터득하였을 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 또한 어무이를 닮아서 그 공부법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인생의 스승은 언제나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