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등잔 밑이 어두워
어렸을 적에는 피아노를 치기가 참 싫었습니다. 일단, 자발적으로 피아노 앞에 앉았던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 때 갑자기 ‘피아노 학원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전까지는 늘 억지로 연습한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피아노를 쳤습니다. 물론 연습하면서 좋아하는 곡들도 있었고, 마냥 싫은 것만은 아니었지만, 확실한 건 피아노 연주하기를 ‘즐겼다’라고 말할 수는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피아노를 접해온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느 순간에 피아노 음악이 아름답게 느껴지기 시작하더군요. 아마 그 시점에 저는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하였는지 모릅니다. 중학교에서 하교 시간이 되면 피아노 학원 가는 일이 기다려졌습니다. 밤늦게까지 연습실에 혼자 남아서 피아노를 치거나, 토요일에도 학원에 가서 피아노 앞에서 앉으면, 편안한 감정과 여유로움이 밀려왔습니다. 학교 시험 기간에는 벼락치기를 한다는 명목하에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면서 밤을 새우곤 하였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진로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과연 나는 피아노를 전공할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을까?’, ‘내가 전문 연주자가 되어 리사이틀도 다니고 그럴 수 있을까?’, ‘일반적인 피아노 학원에 고용되어 살아가는 걸까?’, ‘아니, 일단 음대에 들어갈 실력은 되나?’ 등 여러 걱정과 두려움이 엄습하였습니다. 때마침, 매주 성실하게 출석하던 교회에서 특별새벽기도회[1]를 열었습니다. 여기에 참석하면서 ‘목회자’라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피아노와의 거리는 다시 멀어졌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부러 멀리하려고 했습니다. 목회자의 삶은 피아노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단적으로, 저의 커리어에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다고 지레짐작하였습니다.
그랬던 피아노가 교회 사역을 한창 하는 와중에 제게 ‘쉼’으로 다가왔습니다. 퍽퍽하고 쉴새 없이 돌아가는 일정 가운데에 한 줄기 빛이 되어준 셈이죠.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저 소모되는 것 같은 나날이었습니다. 그때 음악이 감정적으로 뭔가를 채워준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끝내 피아노 학원에 등록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안 그래도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였는데, 피아노 학원에 가는 시간만큼은 설레고 기다려졌습니다. 연습도 마음껏 했던 기억이 납니다. 피아노 치는 시간은 금방 지나가 버리더군요.
요즘은 피아노 연습 시간을 하나의 ‘상(賞)’과 같이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를 알차고 의미 있게 보냈다면 피아노 연주할 기회를 저 자신에게 주는 겁니다. 만약에 딴짓을 많이 하고, 집중력도 발휘하지 않고, 만족할 만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자의적으로 피아노를 치지 않습니다. 피아노 치는 행위가 일종의 당근과도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지요. 과거를 회상해보면 신기할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피아노가 당근이 아닌, 채찍이었거든요.
피아노를 치지 않기 위해서 갖은 수를 다 썼습니다. 또, 피아노를 치면 당근이 주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께서 평소에 원하던 먹거리를 만들어주신다거나 하는 방식으로요. 피아노 책을 한 권 다 떼면, 갖고 싶은 팽이 세트 등을 사주기도 하였습니다. 어렸을 땐, 피아노가 ‘당근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이제는 피아노가 ‘당근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비록 그간의 세월은 적지 않게 흘렀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오늘 제가 맞닥뜨리는 ‘힘겨운 일들’이 언젠가는 새로운 당근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어린아이였을 땐 피아노가 이렇게 좋아질 줄 몰랐던 것처럼 말이죠. 지금 꾸준히 뭔가를 하다 보면, 이 또한 추억으로 변하기 때문일까요. 아무리 어렵고 하기 버거운 일도 나중에는 다르게 다가올지 모릅니다. 심지어 군대에서 겪은 일도 아주 가끔은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행복은 다른 데에 있는 게 아니라, 주위에 있을 확률이 높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아니 돌아볼 것도 없이, 나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것이 훗날 행복의 소재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 말은 현재의 불합리함이나 고통을 참고 견디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일을 마주한다면 반드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며 대처해야 하지요. 또,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휴식을 취할 필요도 있습니다. 단지 제가 환기하고픈 점은, 이전에 그토록 하기 싫고 원치 않았던 무언가가, 나중에는 그리움을 넘어서 갈망과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행복은 등잔 밑이 어두운 위치에 있는 게 아니었을까요.
<주>
[1] 개신교 교회에서 대개 진행하는 연례행사로, 일정한 기간을 정해서 매일 새벽예배와 기도회의 시간을 갖는다. 특별새벽기도회에서는 때때로 부흥회와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