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둘러싼 인간의 심리에 관하여
여러분은 요새 소위 ‘꽂혀있는 곡’이 있나요? 가끔 있잖아요. 어떤 곡조나 리듬이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되는 경우가요. 저도 ‘이 노래 정말 좋다!’라고 생각하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클래식 피아노 연주곡을 자주 듣기에 그런 부류의 곡들이 기억납니다. 최근에도 어느 한 곡에 꽂혀버렸는데요. 그 곡은 바로 쇼팽의 환상곡(The Fantaisie in F minor, Op. 49)입니다. 쇼팽의 곡을 즐겨 듣는데, 피아니스트들이 이 곡을 많이 연주하더라고요. 그렇게 듣다 보니 어느새 빠져버렸습니다.
원래 저는 정말 좋아하는 곡을 마주치면 악보를 프린터로 뽑곤 하였습니다. 감상하는 것도 행복하지만, 그런 곡을 직접 연주할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피아노곡을 계속 듣다 보면 쳐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더군요. 현재 제가 직접 치는 플레이리스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예전에 어렸을 적에 친 곡들입니다. 그나마 한 번 익혀놓아서 다시 연주하기가 조금은 수월한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바로 감상하다가 좋아져서 쳐야겠다고 마음먹은 곡들입니다. 옛날에는 아예 몰랐던,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곡이 대부분이지요.
한동안 그렇게 음악을 들으면서 악보를 복사하곤 했는데요. 요즘에는 거의 몇 달간 악보를 출력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현재 연습하는 곡이 너무 어려워서 그것만 치기에도 시간이 부족해서고요. 문득, 또 하나의 이유가 떠올랐습니다. 그건 바로, 듣기 좋았던 곡들도 연습하려고만 하면 싫증이 팍팍 난다는 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 왜 몇 번이고 반복해서 감상하는 곡을 직접 손에 갖다 대면 흥미가 떨어질까요? 더 신나게 그 곡을 치지 못할망정 말입니다.
제가 한때 피아노를 그만둔 이후로, 다시 시작하게끔 종용한 곡이 있습니다. 베토벤의 발트슈타인 소나타(Sonata No. 21 in C major, Op. 53)인데요. 대학교 4학년 때 이 곡을 연습하고 싶어서 약 8년 만에 피아노 학원에 새롭게 등록했습니다. 진짜 진지하게 피아노 부전공까지 생각했었습니다. 마침 제가 다니는 대학교에는 교회음악과에 ‘피아노 전공’이 있었거든요. (근데 만약 부전공까지 했으면 학부를 6년 다녀야 했을 거예요..) 아무튼, 다시 돌아가서 결론은 그 곡을 지금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치고 피곤한 심신에 활력을 더해주었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게 만들어준 곡을 말이죠. 직접 연습하기를 시도하는 순간, 어렴풋이 몽글몽글해 보이는 환상이 깨져버렸다고 할까요?
듣기 좋은 곡이 싫증 나는 곡으로 변해버리는 것은 참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선뜻 악보를 출력해서 연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스워 보일 수도 있지만, 심리학적으로도 어느 정도는 뒷받침이 되는 현상인 듯싶습니다. 어떠한 음악이 지루해지는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노래의 구조가 단순할수록 쉽게 질린다는 것이었고요. 또 다른 원인은 특정한 곡조를 많이 반복해서 들을수록 금방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1] 이는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모두 경험한 바이겠습니다.
즉, 어떠한 곡을 연습한다는 것은 똑같은 곡조를 ‘수없이 반복해서’ 듣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연습은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니까요. 어쩌다가 한 번씩 듣는 곡이 아무리 좋아도, 그 곡을 계속 듣고 있자면 흥미가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적어도 처음으로 곡을 마주쳤을 때의 그 설렘이 사라지는 순간이 한 번은 옵니다. 게다가 연습하는데, 생각만큼 풀리지 않으면 오히려 짜증까지 섞이게 됩니다. 어려운 구간을 만나면 곡이 싫어질 때도 있습니다..; 마치 어제의 베프(Best Friend)가 오늘의 원수로 뒤바뀐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풀이 죽어 있을 필요만은 없습니다. 그렇게 싫증 났던 곡이 새로운 환상적인 기분을 선사해줄 날이 언젠간 올 테니까요. 아마, 이 감정은 피아노 작품을 한 곡이라도 완성해본 사람이라면 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토록 치고 싶었던 곡을 (비록 완벽하게 치지는 못할지라도) 직접 연주할 수가 있다니! 그것도 나의 손가락과 몸짓으로!! 한동안 연습하느라 감상하기도 싫었던 곡이, 충분하게 연습을 하고 난 이후에는 갑자기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어려운 마디, 감동적인 구간 등 연습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말입니다.
프린스턴대학교 음악인지연구소의 엘리자베스 마구리스 교수와 샌프란시스코대학교의 신경과학자인 인드레 비스콘타스 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음악을 듣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익숙한 형식과 구조의 곡을 듣는다면, 그 곡을 처음 접하는 사람일지라도 최고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클래식과 평소에 친했던 사람이라면, 새로운 클래식 곡을 들었을 때,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반응을 깊이 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평소에 헤비메탈을 즐겨 들었다면, 새로운 헤비메탈 곡을 통해 얻는 행복감이 (헤비메탈 감상 경험이 전무한 저보다) 더 클 것이라는 이야기죠.[2]
원리는 이렇게 요약됩니다. 음악의 패턴을 알고 있는 사람은 곡의 진행에 따라 다음 악절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가 더 쉽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아, 이 곡은 이런 식으로 흘러가겠구나’라고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죠. 리듬, 멜로디, 분위기 등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짐작한 생각들이 들어맞게 되면 희열감이나 흥분감이 생기겠지요. 저는 이 연구 결과를 응용해서 앞서 제가 경험한 일에 적용해보고자 합니다.
처음에 들은 곡이 좋아서 직접 연습하기까지 연결이 되었다고 칩니다. 그러면 저는 새로운 버전의 곡을 계속 듣게 됩니다. 피아니스트가 치는 완벽한 연주가 아니라, 나 자신이 치는 매우 더디고 불안정한 곡조가 되겠지요. 이 또한 하나의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걸(현재 자신이 연습하는 곡의 멜로디) 처음 듣는다고 해서 그 곡이 좋아지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간단하게 도식화를 해보자면, [A = 피아니스트의 원곡 연주, B = 내가 치는 연습 버전]입니다.
A를 듣다가, 너무 좋아서 B를 듣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한동안 B를 듣습니다. 너무 많이 B를 듣다 보니 이제 지루해집니다. A도 당분간 듣기가 꺼려집니다. 시간이 흘러, 연습을 꾸준히 했다면 B가 어느 정도는 볼품 있게(?)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완벽하게 치지는 못할지라도 악보를 보는 수준 정도만 되어도 충분합니다. 이제 다시 A를 감상합니다. 저는 이때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오히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보다 더욱 환상적인 기분이 들었습니다. 위의 연구 결과에 접목하자면, 악곡의 구조를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었기에, 감상 효과가 극대화가 된 것이지요. 이 시점에 듣는 A의 선율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웠습니다. 적어도 제 경험으로는 그랬습니다.
논의를 정리합니다. 듣기 좋은 곡을 직접 연주하고자 시도하면 싫증이 난다? 그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듣고 또 들어서 지겨워지는데 별수 있나요. 그러나 어느 정도 연습의 궤도에 오르면 상황이 역전됩니다. 좋아하는 곡을 꼼꼼하게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이제 한번 감상해보세요. 전율이 흐르는 체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 느낌을 겪지 않으셨다고요?
이런, 그럼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References
[1] Gander, Kashmira. “The Science Behind 'Killing' a Song When You Listen to It Too Much,” The Independent, (Updated on 10 May 2017).
https://www.independent.co.uk/life-style/killing-song-science-magic-lost-listen-too-much-sound-good-michael-bonshor-a7728156.html
[2] Gee, Andre. “Why the First Time You Hear a Song Is Special, According to Science,” COMPLEX, (Updated on 07 April 2021).
https://www.complex.com/music/first-time-you-hear-a-song-sci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