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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봉 Dec 05. 2021

학문은 머리로만 버틸 수 없다

때로는 잘 놀 줄도 알아야 한다

     요즘 나는 기말고사 시즌을 맞이하고 있다. 대학원생이 되어서 경험하는 첫 번째 기말 주간이다. 물론, 뭐 학부 때랑 크게 다르지는 않다. 써야 할 기말보고서와 과제물이 한가득일 뿐. 할 일이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발표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고, 새로운 프로젝트로 몇 가지 더 해야 한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역시 글은 쓸 시간이 남아서 쓰는 게 아니라, 지금 안 쓰면 안 될 것 같은 순간에 쓰는 것 같다. 물론, 공부하기 싫어서 핑곗거리를 찾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무척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요즘에 내가 표방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상당히 여유 있게 살자는 모드이다. 낮에는 피아노를 50분가량 연습했다. 또, 아까는 약 한 시간 동안 집 근처의 운동장에 가서 열심히 뛰고 걷기도 했다. 틈나는 대로 읽고 싶은 책을 읽기도 한다. 아직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러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를 논외로 하더라도, 최근에 내가 느끼는 바는 삶의 긴장도를 조금씩 줄여나가야겠다는 마음이다.



     그렇게 생각한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최근에 나는 한 편의 동영상을 시청하였다. 그 영상에서는 뇌과학을 다루고 있었는데, 내용을 대략 이렇다. 뇌는 우리의 정서와 신체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이게 적당히 나오면 괜찮은데, 때로는 과다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있다. 또, 이 스트레스가 잠깐으로 끝나지 않고 몇 주, 몇 달, 길게는 몇 년 동안 계속 지속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코르티솔이 항시적으로 나타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우리의 뇌와 몸은 학습에 최적화되어 있다. 따라서 나중에는 아무런 위험이나 걱정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데도, 코르티솔 호르몬이 계속 나온다. 결국, 우리의 두뇌와 신체가 편안하게 쉬지 못하고 계속 긴장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게 장기화로 이어지면 불면증이나 알츠하이머와 같은 부작용이 일어난다고 한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분비되었던 물질이 끝내, 몸을 해치게 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우리의 몸은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의지적으로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행위를 선택해야 한다. 영상에서는 그러한 방법으로 운동하기나, 명상하기 등을 제시한다. 긴장을 완화하는 방안은 생각보다 많다. 핵심은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피아노를 치거나,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 감명 깊은 음악을 듣는 일이다. 물론, 운동을 아주 좋아해서 하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신체를 움직이고 근육을 단련하면서 얻는 ‘몸의 가벼워짐’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내가 의식적으로 살아가려는 모습은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하고 살기이다.



     이런 방식으로 생활하고자 결심한 계기가 있다. 최근까지 나는 혼자 있는 시간에 정신적으로 불안할 때가 많았다. 군대에 입대하면서 그런 감정이 아주 가끔 들곤 하였다. 하지만 전역하고 나서, 따로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항상 집에서 생활하다 보니까 이런 감정이 점점 더 심해졌다.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니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사안을 강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괜히 몸에 긴장이 되고, 그래서 걱정을 많이 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니까, 진짜 동영상이 설명했던 대로 평상시에도 편안한 마음을 가지기가 힘들었다. 불면증은 안 왔지만, 정신적인 피로감 탓인지, 뭔가를 자주 잊었다. 잘 알고 있는 내용도 생각해내기 힘들 때가 간혹 있었다. 진짜 만성적인 코르티솔 분비는 인체에 해악을 끼치는 것이구나 하는 내용을 몸소 느껴본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굳은 결심을 했다. 아무리 해야 할 일이 많고 바쁘더라도, 몸과 마음은 할 수 있는 한, 편안하게 유지하자고 말이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노심초사해야 할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다 언젠가는 지나갈 일들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시간이 해결해주는 경우가 많다. 또, 만약에 나 자신이 바꾸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때는, 그런대로 순응하면 된다. 대처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아서 실행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면 된다. 그렇게 그냥 물 흐르듯이 살면 솔직히 걱정이나 긴장감을 품지 않아도 괜찮다. 어깨에 힘주고 있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쫄지도 말자.



     정말 집중력을 요해서 뭔가를 끝내야 하는 상황이 있다. 그때는 잠깐 인텐시브하게 할 일을 마쳐도 좋다. 하지만 언제나 시간과 마감에 쫓기고 편안히 쉬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다. 하루 종일 특정한 업무만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현명한 플랜이 아니다. 특히, 나처럼 연구직을 꿈꾸며 평생 두뇌 노동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이 말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한편, 뭔가를 읽고 듣는 쓰는 것만이 학문적인 작업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이처럼 정적인 일들뿐만 아니라, 신체를 이완시키는 다양한 활동이 훗날 학문의 재료로 사용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운동이나 산책, 내가 좋아하는 음악, 새로운 체험, 사랑, 그 외에 뭔가 즐거운 일들은 모두 적재적소에 활용하기에 좋은 소재라고 볼 수 있다. 지난 여름방학에는 한 권의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서는 전문 연구자들이 ‘산’이라는 주제에 대해 논의한 내용이 있었다. 각자가 등산하면서, 산을 직접 거닐어보면서, 산과 얽힌 일화를 소개하면서, 산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꽤나 멋져 보였다.



     아무튼, 중요한 요점은 바로 학문이 꼭 ‘두뇌 활동’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마음과 몸이 건강해야 공부도 열심히 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이 글을 보시는 모든 학생들과 (예비) 연구자들은 모처럼 여유도 가지며, 하고픈 일을 최대한 즐기며 살기를 바란다. 맨날 죽치고 놀 수만은 없겠지만, 최소한의 휴식과 안정은 챙기라는 의미다. 혹시 모르지 않겠는가? 그런 유희를 통해서도 학문적 깨달음과 영감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인간은 ‘호모 루덴스’라는 점을. 사실, 학문도 즐겁게 해야 하는 게 맞겠고.


Reference


https://www.youtube.com/watch?v=WuyPuH9oj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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