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도전하는 학생들을 위한 조건 없는 장학금
올해 4월에 저는 하나의 장학금에 지원을 하였습니다. 이 장학금에 대해서는 그동안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처음 지원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신청할 무렵까지만 해도 ‘안함사(안진걸과 함께하는 사람들) 장학금’이었는데, 나중에 장학금 이름이 바뀌었더군요. ‘꿈수저 청년 장학금’으로 말입니다. 장학금의 목적과 취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이름이라서 마음에 듭니다. 물론, 이전 이름도 좋습니다 하하.
이 장학금은 국가에서 지급하는 국가장학금도 아니고, 대학 교내에서 제공하는 장학금도 아닌, 외부장학금입니다. 저도 예전부터 다양한 장학금을 받아본 입장에서, 외부장학금은 사실상 ‘어차피 못 받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신청해야 합니다. 즉, 가장 받기 어려운 장학금이라는 뜻입니다. 국가장학금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은 일단 모집인원이 많습니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수천 명까지 모집합니다. 교내 장학금은 모집 인원 풀이 적습니다. 따라서 경쟁률은 자연스럽게 하락하지요. 하지만 외부장학금은 지원자 풀 자체도 무진장 많은데다가, 모집인원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많아야 십 몇 여명이고, 적으면 한 자리수의 인원만이 선발됩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왜 이 글을 쓰고 있을까요?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아마 다 알고 계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장학금 수혜 대상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장학생으로 선발되기 전에, 저는 한 통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보이스 피싱 아니면 설문 조사 혹은 광고성 연락 아냐?‘하고 안 받을까도 잠깐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여서 받기는 했습니다. 만약 ’080‘이라 ’070‘으로 왔다면 이번 장학금도 물 건너갈 뻔했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전화를 받았는데, 발신자께서 갑자기 제 이름을 확인하더니 ’안함사 장학금 지원자 맞으시죠?‘라고 대뜸 물어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전화는 바로 ‘2차면접 전형’이었던 것입니다! 사태를 파악하니까 굉장히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습니다. 전화로 진행된 면접은 약 10분 안팎으로 이루어졌는데, 이것으로 최종 장학생 선발이 완료된다고 하니까 얼마나 떨렸겠습니까. 이제야 와서 솔직히 말하는 건데, 저는 제가 작성한 장학생 지원서에 무슨 내용이 적혔는지 또렷하게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에만 장학금 지원을 5~6개는 족히 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다른 지원서에 쓴 것을 여기에서 이야기할 수도 있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답변을 하였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극적으로 말하거나 우물쭈물하지는 않았습니다. 언제나 저는 지원서에 솔직한 생각을 담았고, 사실만을 기술하였기에 꿀릴 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제가 ‘지원서에 무엇을 적었는지 꼬치꼬치 캐묻지 않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전화면접에서 질문은 대략 다음과 같은 항목들이 있었습니다. 장학금을 받아서 어떤 곳에 사용하고 싶은지, 현재 자신의 꿈과 비전은 무엇인지, 지금 내가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번 계엄령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장학금 수여식에 현장 참석이 가능한지 정도가 주요 질문 목록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대부분의 질문들은 일반적인 장학금 선발 과정에서 볼 법한 목록이었는데, 여기 장학금만의 특별한 질문으로 두 가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첫째는 ‘내가 바라고 제안하는 정책’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었으며, 둘째는 ‘정치적 사건’에 대한 나 자신만의 입장과 소신이었습니다. 아마도 후술할 내용이 이러한 질문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기에 그러하지 않았나 추정해봅니다.
장학금 수여식 장소는 여의도의 국회의사당 국회의원회관이었습니다. 저는 본 장학금이 이러한 성격을 띠는지 모르고 지원했는데, 국회의원분들과 정치/사회/언론계 인사분들도 다수 참석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안진걸이라는 분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아무튼 확고한 비전을 가진 청년 인재를 발굴하는 장학금이었으며, 저도 그러한 기준에 충족되어 선발된 것에 참 감사했습니다. 저의 이력은 동나이대의 일반적인 사람들과 비교하였을 때, 그리 잘난 것이 없다고 하여도 무방하겠습니다. 물론, 대충 놀고 먹으면서 살고자 하지는 않았지만, 사회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초라한 결과를 맞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 장학금은 제가 선발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한편, 장학금 수여식에는 굉장히 다양하고 전문적인 배경을 가지신 분들이 함께 오셔서 축하해주셨습니다. 안진걸 소장님과 전/현직 국회의원분들도 계셨고, 변호사나 변리사, 의사 선생님, 국회 비서관님이나 보좌관님, 방송사 기자분들과 PD분들, 또 여러 후원자님을 뵙고 이야기하면서 삶의 다양한 면면들을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또, 무엇보다도 함께 장학금을 수여받은 장학생들 또한 저에게는 크나큰 인적네트워크로 다가왔습니다. 제 기수(11차)에는 저까지 포함하여 총 11명의 장학생이 선발되었습니다. 지금까지 12차까지 장학생 선발이 완료되었는데, 이전 기수 장학생들까지 모인 단톡방의 인원은 약 160명에 달하였습니다. 가끔씩 과거 장학생들이 인생의 경사가 있을 때(예컨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거나 책을 출판하는 등)에는 서로 축하해주고 격려해주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꿈수저 장학생으로 좋은 결실을 맺어서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도 강하게 들었습니다.
아, 그리고 정말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을 때, 전적 대학에서 같이 열심히 공부했던 학과 선배를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그 형님은 지금 박사 과정에 합격하여 유학을 준비하고 있을 정도로 학업에 진심인 분입니다. 그런데 유학을 가시기 전까지 안진걸 소장님과 함께 민생경제연구소 PD로 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맨 처음에 제가 장학생 인터뷰를 할 때, 카메라에 제가 잡히자 ‘어? 준봉이??“ 이렇게 생각하면서 엄청 놀라셨다고 합니다. 역시 세상은 좁디 좁음을 다시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 형님과도 차기 장학금 수여식 때 만담을 나누었습니다.
앞으로 어떠한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들이 꿈수저 장학생 및 장학 후원회와 같이 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바라기는, 본 장학금이 널리널리 알려져서 후원자들이 많이 모이고, 후원을 받는 장학생들도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자신의 꿈과 비전이 있는데, 적어도 돈과 기회가 없어서 꿈을 펼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없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 역시 꿈수저 청년 장학생답게 알차고 의미 있는 꿈을 일구어나가겠습니다.
P. S. 본 글을 읽는 대학생 혹은 청년이 계시다면 주목해주십시오. 만약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학업이나 뭔가를 이루고 싶은데 그러기가 주저된다고 하신다? 그러면 차기 꿈수저 청년 장학금에 주저하지 말고 지원해보십시오. 밑져야 본전 아니겠습니까. 12기 장학생 중에 어떤 분은 12회 시도 끝에 장학생으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무소의 뿔처럼 끈기 있게 한번 도전해보시기를 권합니다.
본 장학금은 드림스폰이라는 웹사이트에 주기적으로 공고가 올라오니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