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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나는 마더테레사였다.

心봉사

by 준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충격적인 일들을 겪곤 하는데, 나 역시 대학생 시절 기숙사에서 그런 일을 겪었다. 나에겐 충격적이지만 누군가에겐 재밌는 이야기인 듯싶어, 그때의 악몽을 떠올리며 몇 자 적어볼까 한다. 나는 기숙사 2층 끝 방 방장으로, 신입생 2명과 함께 방을 쓰고 있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친구가 외박하고 자기랑 놀자고 열심히 꼬셔댔지만 나는 그냥 피곤해서 기숙사에 있겠다고 하고 저녁 7시쯤 잠이 들었다. 한 세 시간 정도 흘렀나? 자고 있는데 "형.. 일어나 보세요" 라며 날 흔들며 깨웠다. 눈을 떠보니 방돌이 1이었고, 눈을 뜬 순간 동시에 시골에서나 맡을 수 있는 쾌쾌한 냄새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 보니 방돌이 2가 책상 의자에 떡실신 상태로 걸터앉아 있었다. "근데 이게 무슨 냄새야?.... 악!" 이건 분명 똥냄새였다. 방에서 날 수가 없는 그 냄새가 기숙사 방을 이미 점령했다.


방돌이 2에게 다가가 "괜찮니?"라고 하는 순간 방돌이 얼굴에 갈색 빛깔의 무언가가 살짝 묻어있었고, 손에도 살짝 묻어있었다. 마치 찰흙놀이하다 묻은 것처럼... 상황 판단하는 데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방돌이 2는 본인의 주량도 모른 채 신나게 술을 마시다 정신을 잃어버린 것 같고, 동시에 용변을 옷을 입은 상태에서 봐버린 것이다. 아마 내가 자고 있을 때 누군가의 도움으로 의자에 앉았던 것 같고, 똥을 싼 시간은 방에 도착 전인지 후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런 상태로 한두 시간 방치되어 있다가 방돌이 1이 방에 들어와서 발견을 한 상황이었다.

"하... 미치겠네" 머리가 멍해지고, 왜 나는 친구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기숙사에 남아있었을까... 스스로를 자책하며 얼른 이 상황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손대긴 싫지만 방돌이 2를 열심히 흔들어 깨워봤지만 돌부처처럼 움직이질 않았다. "이거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깰 때까지 놔줘야 하나? 아... 근데 저 냄새는 어떻게 해? 저 상태로 두면 똥독 오르는 거 아냐?"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래, 일단 씻겨야겠다" 방돌이 1을 시켜서 방돌이 2를 부축해서 샤워실로 데려갔다. 그때의 기숙사는 공용화장실과 샤워실이었는데 다행히 11시 점호가 다가오는 시간이라 샤워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열심히 부축해서 가는데 방돌이 1이 제대로 부축하지 않아(심정은 100% 이해함) 복도에 철퍼덕 쓰러졌다. 그때 다른 방 사람들이 소리를 듣고 나왔다가.."어? 무슨 냄새... 윽" 이런 상황이 벌어졌고, 나는 연거푸 죄송하다고 말하고 다시 일으켜 세워 샤워실로 향했다.

근데 마침 샤워실 전등이 나가서 불이 들어오질 않았다. 그래서 문을 아주 살짝 열어서 형체가 거의 보일까 말까 한 어둠 속에서 씻기기 시작했다. 우선 옷을 벗기고, 알몸 상태의 방돌이 2의 몸에 샤워기로 물을 뿌렸다. 그리고 방에 있는 긴 때타월을 돌돌 말아 얼굴과 손에 묻은 그것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던 방돌이 2는 "왼손 들어봐~오른손 들어봐" 이런 말에는 또 반응을 해서 씻기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생각보다 힘이 들진 않았다. 다만 비위와의 싸움이었달까. 다행히 어두워서 모든 게 잘 보이지 않았던 게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점호가 시작되고 방에 있어야 했지만 샤워실에 있는 우릴 본 층장이 샤워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모든 상황을 설명했고, 나를 애잔하게 쳐다보던 그 눈빛은 아직도 생생하다. 씻기는 데에 거의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릴 정도로 정말 조심조심... 내 몸에 묻지 않게 천천히, 조심스럽게 씻겼다. 그렇게 다 씻기고 방돌이 1을 불러 방돌이 2의 속옷과 옷을 챙겨 오라고 해서 입히고 뽀송뽀송해진 방돌이 2를 다시 부축해서 방으로 데려갔다. 근데 문제는... 방돌이 2는 2층침대 2층을 썼다. 마음 같아선 내 침대나 방돌이 1 침대에 눕히고 싶었으나, 그냥 마음만 그랬을 뿐 현실적으론 그럴 순 없었다. 그래서 정말 냉장고 옮기듯 기적적으로 2층에 올려놓고, 나는 다시 샤워실에 가서 방돌이 2의 옷을 빨기 시작했다.

옷을 세탁기에 돌려야 하는데 저 상태로 공용세탁기에 돌리는 건 할 짓이 아니었기에, 적어도 초벌은 해놔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속옷은 버리고 바지는 샴푸를 찍찍 뿌려서 최대한 흔적이 사라지게끔 초벌 세탁을 했다. 그리고 대야에 담아서 방에 갖다 두고, 방돌이 2가 깨면 알아서 처리할 수 있게끔 하려고 했다. 이 모든 것을 마치니 거의 새벽 1시를 향해가고 있었고, 너무나 분통이 터져서 1층에 있는 친구 방에 쪼르르 내려가서 하소연을 했고, 친구는 자지러지듯 웃어댔다. 그 당시 내가 약간의 결벽증 같은 게 있었는데, 내 친구는 어떻게 네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냐며 대단하다고 하면서 광대는 계속 승천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너무 놀랍고, 역시 사람은 위기가 닥치면 못할 게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오후, 수업을 마치고 방에 들어가는데 어떤 모르는 사람이 우리 방에 들어가는 걸 보고 "누구세요?" 했는데, 어라? 방돌이 2네? 샤워실로 가는 도중 쓰러졌던 그 순간 다른 방 사람들이 방돌이를 봤고, 소문이 난 것이었다. 교양수업을 듣고 있는데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서 바로 미용실로 달려가 보라색 머리로 탈색을 했다고 한다. 쓰던 안경도 벗고 렌즈도 끼는 등 나름대로 변신을 했다고 하는데, 그 머리 때문에 더 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방돌이 2는 굉장히 쾌활한 아이여서, 은근히 그날의 사건을 즐기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사람이었다면 아마 바로 휴학행이지 않았을까?

그날의 일이 어떻게 벌어진 것인지 굳이 방돌이 2에게 묻진 않았는데, 어떻게 손과 얼굴에 그것이 묻을 수 있었을까...? 인사불성의 상태에 옷은 제대로 다 입고 있었고 두꺼운 코트까지 입고 있었는데...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느낌... 잘 살고 있으려나 우리 방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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