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하악하악

콤플렉스 극복기

by 준비

나는 심하진 않지만 돌출입 구조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렸을 때부터 이 튀어나온 입이 콤플렉스였다. 그래서 중학교 때 별명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평행사변형 같은 외모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래서 옆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고, 겨울이 되면 목도리로 턱 주변을 칭칭 감고 다니기도 했다. 완벽하게 이 콤플렉스를 고쳤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말 많은 개선을 했는데 그만큼 콤플렉스에 대한 스트레스가 어떤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완벽하게 지워질 수 없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다.


2008년도 여름, 전역하자마자 찾아간 곳은 강남 논현동에 있는 치과였는데, 치아 교정을 통해서 돌출된 입을 조금이나마 넣어보고자 함이었다.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피던 상담실장은 이건 치아교정이 아니라 하악수술을 해야 개선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양악수술까지는 안 해도 되고 하악만 건드리면 된다면서 수술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아래턱을 절단해서 뒤로 밀어 넣고 경첩 같은 걸로 고정시키는 방법이었는데, 뼈를 자르고 뼈와 뼈를 그런 도구로 접착시키면 혹 충격을 받았을 때 깨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그 부분에 물어봤더니, 당연히 그럴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고, 수술을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게 더 낫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했다.


치아교정을 알아보러 갔다가 뜬금없는 하악수술이라는 큰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니 아주 살짝 눈앞이 캄캄했다. 일단 가격을 물어보니 1,700만 원에 추후 교정비까지 하면 2천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이 필요했다. 군 장교 생활을 하면서 모은 2600만 원 대부분을 얼굴에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라 많은 고민이 들었고, 무엇보다 내가 이 돈을 쓰면 장동건, 원빈처럼 되는 것도 아닌데 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금전적 부담과 수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포기했는데 평생을 따라다닌 이 콤플렉스도 결국 돈 앞에선 장사가 없었나 보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사원증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 턱까지 높이 올라온 카라로 튀어나온 턱을 숨길 수 있는 재킷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사원증 사진을 바꿨다. 너무나 만족스러웠지만 보는 사람마다 컵에 계란 올려놓은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지겹도록 들었던 돌출입과 관련된 별명은 어느 순간 듣지 않게 되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외모도 이전과 달리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살면서 입이 좀 들어간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살이 붙어서 덜 도드라져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여하튼 가끔 대학 동창들을 보면 내 얼굴을 보고 놀라곤 한다. 과거 사진들을 보면 왜 그런지 납득이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연히 시작한 방송활동에서도 옆모습을 찍을 때면 무의식적으로 긴장하고 입술을 오므려 최대한 입이 튀어나오지 않게 보는데, 신기한 건 유독 나만 그 하관에 신경 쓴다는 것이었다. 의외로 다른 사람들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엥? 말하기 전까지 전혀 몰랐는데요?" "자세히 보니 좀 그런 것 같다고 한데 그렇게 심한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을 했다.


그렇다. 콤플렉스라는 건 어떻게 보면 타인의 만든 게 아닌 내가 만든 것이다. 내 눈에 명확히 보이고 그 부분을 계속 신경 쓰다 보니 더 부각되어 보이면서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반신반의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전에 우연히 강남의 유명한 성형외과 원장님과 유튜브 촬영을 한 적이 있는데, 잠깐 쉬는 시간에 하악수술과 관련해서 물어봤다. 거의 10년 만에 다시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는 것이었다. 아니 그때는 상담실장이니 전문가라고 하긴 그런가? 어찌 되었건 전문의에게 공짜로 상담을 받는데, 의사 선생님은 유심히 내 턱을 보더니,


"확실히 수술하면 턱이 짧아지고 긴 얼굴형이 보완이 되면서 지금보다 세련된 이미지로는 바뀔 것 같네요. 근데 제가 대학때 연극 동아리를 해서 그 분야에 관심이 좀 있는데, 지금 하고 계시는 배우 생활에 있어서 수술을 함으로써 이미지가 확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긴 합니다"


지금 내 턱은 살짝 남자다운 느낌이 있는데 이게 샤프해지면 지금의 느낌과는 달라지기 때문에 내 일을 하는 데 있어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뼈를 자르면 그 자리에 있던 근육을 받쳐주던 힘이 사라지면서 처짐 현상이 올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이번 생애 뼈를 깎는 수술은 없겠구나 라는 결심도 했다. 이미 나이가 36세가 되었는데 얼굴에 거금을 투자할 여력도, 수술 부작용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도 가끔 지인들이 사진을 찍어주면 툭 튀어나와 보이는 입이 불만이지만 이미 이 부분에 대한 스트레스는 거의 없는 단계가 되었고, 그냥 이 모습을 나라도 사랑해 주자 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하관이 예쁜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더라.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와 그걸로 인해 유년시절 지독히도 놀림을 당했었기 때문에 나는 사람들 외모로 놀리거나 조롱하지 않는다. 그걸 당하는 사람은 그 순간은 웃으며 넘어가지만 혼자 있는 시간 동안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자존감을 떨어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단역배우나 광고모델을 하면서, 이 분야에 내가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진 10년 가까이 가늘고 길게 해 오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내 얼굴로도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라는 신기함 때문이다. 아마 이 일을 하면서 외모 콤플렉스가 어느 정도 개선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누구에게나 콤플렉스는 있을 수 있는데 그걸 입 밖으로 내뱉는 것도 굉장히 큰 용기가 필요하고, 그걸 고쳐가는 과정도 정말 힘들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 콤플렉스라는 건 결국 남보다 내가 더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완치는 어려울 수 있지만 조금씩 익숙해지고, 그런 모습조차도 본인 스스로가 안아줄 수 있는 자세가 너무도 중요하다. 앞으로 계속 살아가면서 내가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주지 않으면 이 척박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혹시 주변에 돌출입인 친구들이 있다면 절대 놀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친구 따라 강남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