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결혼식
대행 알바라고 하면 흔히들 결혼식 하객 알바를 떠올리곤 하는데, 나 역시 결혼식 하객이나 머릿수 채우는 정도의 알바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총 3번의 대행 알바를 하면서 통상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기이한 대행 알바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명 배우나 모델들은 통상 필름메이커스라는 사이트에서 촬영 일을 찾거나 촬영이 없을 때 생계를 위해 알바를 뛰게 되는데 대행알바가 그중 하나일 것이다. 대행알바는 네이버 밴드에서 구할 수 있었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내가 지원하지도 않았는데 문자를 받았다. 아마 촬영 쪽 에이전시 하던 사람이 대행 알바 회사를 차리고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 같았다.
처음에 대행알바? 결혼식 하객처럼 조용히 가서 박수쳐주고 자리에 앉아 있으면 되는 건가 싶었는데 4시간 정도 해주는데 30만 원이라는 고액을 준다길래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처음에 소개받은 곳은 충북 쪽에서 사업하는 사람 의전을 해주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검은색 정장을 입고 가면 된다고 했고, 의전이라고 하니까 뭐 딱히 어려울 것도 없는데 차비도 주고 일당도 두둑하니 친한 동생을 꼬셔서 함께 가게 되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픽업을 기다리고 있는데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주차되어 있고, 우리가 흔히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조폭 아저씨 2명이 다가왔다. 검은색 정장에 화려한 패턴의 셔츠, 그리고 눈이 훤히 다 비치는 색안경을 낀 남성 2명이 배를 내밀며 팔자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처음엔 나를 향해 오는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대기하고 있던 장소에는 나와 친한 동생 그리고 처음 본 말끔하게 생긴 남성 1명이 있었다. 우리 앞으로 온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개받고 오신?"이라고 물었다. "아... 네.. 네" 얼떨결에 대답을 하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머리를 빠르게 굴려보는 사이, 두 남성은 우리를 위아래로 한참을 훑어보더니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다가 일단 갑시다라고 우리를 데려갔다.
검은 세단 뒷자리에 나란히 세 명이 앉아서 어딘가로 이동하면서 오늘의 미션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분명 의전이라고 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의전이 아니라는 것은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조폭이고 지금 가는 곳은 자기 조직원 결혼식장인데 최근에 어떤 사건으로 인해 조직원 대부분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대행 알바 의뢰를 한 것이었고, 결국 우리는 조폭 결혼식장에 가서 조직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우리를 보고 갸우뚱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 셋은 누가 봐도 조폭이라고 하기엔 인상이 말끔했기 때문이다.
결혼식장에 도착해서 우리는 결혼식장 출입구 앞에 배치되어 사람들이 들어오면 인사를 하면 된다고 했다. 그것이 오늘의 미션이었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출입구에서 90도로 인사하기. 무서워야 할 이 상황이 왜 이렇게 웃음이 나는지 우리 셋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곧 터져 나올 것 같은 웃음을 참기 바빴다. 차라리 혼자 올 걸 괜히 동생을 꼬셔서 동생에게 너무나 미안한 맘이 큼과 동시에 의전이라고 소개한 업체를 찾아가 멱살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30분 정도 지나자 슬슬 하객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검은색 양복에 하나같이 화려한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모이니 시끌벅적했다. 인사를 하는 우리를 다들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수군대는 것을 보아하니 우리가 예상하는 그게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우리의 정체를 묻는 이가 없었다.
그렇게 하객들을 맞이하고 소위말하는 형님들이 갈 때엔 떠나는 차 뒤에서 90도로 인사를 하는데 내가 생각해도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허리를 숙인 채로 옆에 있는 동생 얼굴을 봤는데 동생도 내 얼굴을 보고 서로 웃고 있었다. 세력이 좀 약한 조직인가? 뭐랄까, 조직원들이 우리가 아는 그런 험한 느낌의 모습보다 나이가 좀 많기도 했고,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의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서 그 상황이 무섭고 긴장되기보다 마냥 어색하고 웃겼던 것 같다. 식이 거의 끝나갈 때쯤, 굉장히 연로하신 분들이 왔는데 다들 우르르 몰려가서 90도로 인사를 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조직세계의 원로들인가? 지팡이를 짚으며 식은 보지도 않고, 바로 뷔페를 먹으러 가는데 갑자기 우리를 태우러 왔던 조폭이 뛰어오면서 새로운 지령을 주었다. 저 할아버지들 드실 음식을 퍼다 나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용히 피로연장으로 따라가 접시를 들고 가득 음식을 채웠다. 개인적으로 샐러드를 좋아하지만 그런 풀떼기를 담았다가 뺨을 맞을지도 모를 거란 생각에 기름지고 어르신들이 좋아할 메뉴들로 구성했다. 그렇게 음식을 나르고 나니 우리도 구석에 가서 밥을 먹으라고 하길래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가서 열심히 배를 채웠다. 그리고 절대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이런 해프닝에 대해 서로 웃음을 참으며 이야기하면서, 미션이 끝나고 나면 그 업체에 당장 전화를 해야겠다고 했다. 과연 모르고 소개를 한 것일까 알면서도 우릴 속인 것일까? 분명 후자일 것인데 이를 증명할 방법은 없고, 또 돈을 받기 전에 너무 심하게 따지다 돈을 못 받으면 그것도 손해는 아닐까 싶어서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그렇게 밥을 먹고 있는데 헐레벌떡 새로운 지령을 전달하러 그 남성이 뛰어왔다. 그리고 그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1층으로 내려가서 다시 굿바이 90도 인사를 연신 해대며 우렁찬 목소리로 "조심히 들어가십시오"를 외쳤다. 최대한 두꺼운 목소리로 아주 씩씩하게 미션을 잘 수행했다. 그리고는 그 남성은 우리를 다시 태우고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동네 아저씨마냥 친근하게 오늘 수고했다고 어깨를 두드리며 조심히 가라고 했고, 빠르게 서울행 버스표를 끊고 해당 업체에 바로 전화했다. "아니, 의전이라더니 조폭 결혼식이던데요?"라고 하니 담당자는 기가 막힐 정도의 연기력을 발휘하여 "정말요? 저희는 전.혀 몰랐어요. 정말 죄송해요. 일은 잘 끝났나요?"라고 말하면서 바로 입금을 해주겠다고 했다. 어차피 따져봐야 득 될 것도 없고 바로 입금을 받고 내 동생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다행히 동생은 재밌는 경험 했다면서 나름 꿀알바라고 하며 그렇게 서울행 버스를 타고 올라왔다.
촬영 일을 많이 하다 보면 에이전시가 중간에서 돈을 가로채는 일이 워낙 많다 보니, 나한테 30만 원을 주면 저 업체는 얼마를 받을까가 궁금해졌다. 나중에 다른 대행알바를 하러 가서 들은 건데, 기본 60에 거리에 따라 추가금이 붇어서 70-80 정도를 지불한다고 한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돈은 되놈이 번다라는 말이 이런 경우가 아닐까. 그리고 이런 일에 인당 60~80만 원을 지불하는 사람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봐야 3명인데 굳이 알바를 쓸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데, 아마 젊은 조직원들이 없어서 문 앞에서 자기들이 인사를 하기는 모양새가 안 살고 큰돈이지만 그걸로 소위 말하는 가오를 잡고 싶었나 보다. 해프닝으로 끝난 일이긴 하지만, 확실히 위험성이 있는 일이라는 것도 사실이기에 호기심에 해 볼 일은 아닐 듯하다. 다른 대행 알바는 이것보다 더 수위가 높다라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