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보다는 관계와 신뢰를 중시하는 사람이 되라
곧 딸이 회사 근처에 오피스텔을 계약할 예정이다. (3일전에 쓴 글입니다)
출퇴근 거리가 멀어 힘들어 보였고, 아내는 딸의 결정을 존중하자고 했다. 나 역시 신입사원 때 출퇴근 시간이 길었던 기억이 나서 딸과 함께 지하철역으로 가며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도 신입사원 때 출퇴근이 멀어서 일찍 나가 늦게까지 일했단다. 만약 내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회사 근처로 집을 옮겼을 거야. 그리고 네가 집을 얻게 된다면, 몇 가지 '규칙'을 세우면 좋겠구나. 오늘 계약서를 작성할 텐데, 그에 관한 조언을 해줄게.
먼저, 계약은 최소한의 안전 장치라는 걸 기억해라. 사실, 계약서 없이 살아가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 가족 간에는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너는 회사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했지? 왜 그럴까? 법적 분쟁이 생겼을 때 최종적으로 책임을 규명하는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야. 그러나 나는 네가 회사와 계약서에 얽매이지 말고, 관계와 신뢰를 중심으로 일했으면 좋겠어. 나도 회사와 계약을 맺었지만, 그 계약이 나와 회사의 관계를 정의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 계약보다 더 큰 목적을 위해 스스로 선택해서 일해왔지. 결과적으로는 계약서에 명시된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게 됐던 것 같아.
대학 시절에 읽었던 타임즈 인터뷰에서 후쿠야마라는 석학이 '신뢰는 제4의 자본'이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참 인상 깊었어. 계약서는 신뢰가 부족할 때 필요하고, 신뢰가 없으면 수많은 비용이 발생하지. 그때 깨달았지. 신뢰가 얼마나 큰 자산인지를.
이제 계약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보자. 먼저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읽어라. 특히 계약서 맨 아래 특약 사항까지 확인하는 게 중요해. 계약서가 모든 문제의 최종 결론을 내리는 도구이기 때문이야.
내 경험 하나를 이야기해줄게. 오래전에 내가 후아유 브랜드장을 맡았을 때 대형 점포 계약을 많이 했었지. 그때 세무임원이 나를 도와줬는데, 그분은 국세청에서 경력을 쌓았던 분이고 회사에 수백억 원의 이익을 가져다준 사람이었어. 그분과 계약서를 검토할 때는 네 번씩 읽었어.
1회차: "계약서를 읽어보세요."
2회차: 그분이 내 옆에서 계약서를 읽어줬어. (나는 손에 펜을 들고 그분이 읽는 것을 따라갔지.)
3회차: 내가 소리 내어 읽었지.
4회차: (마지막으로 내가 문을 나서기 전) "한 번 더 읽어보세요."
이렇게 반복했던 이유는, 대부분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면 다시는 보지 않기 때문이야. 실제로 내가 계약했던 대형 매장주가 재개발 지역에서 큰 사기를 쳤을 때, 검사가 나를 불러 조사했어. 그때 나를 구해준 것도 결국 계약서였지.
오늘 네게 좋은 경험이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것은, '말'도 계약에 준한다는 거야. 영어로 ‘a man of word’라는 표현이 있잖니? 너도 말과 신뢰로 살아가는 직업인이 되기를 바란다.
적용 질문
1. 당신이 작성한 계약서 중 어떤 것들이 있나? 계약을 넘어 신뢰로 맺어진 관계는 무엇인가?
2. 계약으로 어려움을 겪거나 도움받은 경험이 있다면 무엇이며, 그로 인해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
3. 'A Man/Woman of Word'로서 스스로를 평가한다면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그 근거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