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담당자, 경영자, 그리고 경영자 후보들이 알아야할 HR 역할
* 월간 인사관리 10월 특별기획 'HR조직의 리브랜딩: HR조직의 기능과 역할 변화 - HR담당자 역량개발, 이렇게' 에 올린 글입니다. HR조직 이해를 원하시는 분은 책 전체를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각 기업 HR의 위치와 방향, 그리고 AI시대에 HR의 역할에 대해 새로운 생각거리나 소스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요청받은 것은 위의 제목과 더불어 저의 현장경험과 사례를 소개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래 글은 업로드의 한계가 있어 월간 인사관리와는 다소 다르게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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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er가 조직에 기여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한 인물 중 한 명이 데이브 얼리치다. 그는 ‘HR Champions’에서 HR의 4가지 역할(전략적 파트너, 행정전문가, 직원옹호자, 변화전문가)을 제시했다. 이 책의 부제도 인상적인데, ‘가치를 더하고 결과를 가져오는 어젠다’(The next agenda for adding value and delivering results)이다. HR의 방법(how)이 아니라 무엇을 하고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에 집중하여 기업이 원하는 결과를 내자는 것이다. 지원 부서는 수익 의식이 약하고 비용 센터라는 인식이 강했던 경영자들에게도 좋은 반향을 얻었다.
하지만, HR에 대한 반응은 여전히 미지근하다 못해 차갑다. 딜로이트 조사에 의하면 경영진의 25%만이 HR이 사업 전략의 수립 및 실행을 통한 성과 창출에 의미 있게 기여한다고 응답했다. 더구나 HR 이슈가 기업에서 전략적 어젠다로 다뤄지는 경우는 5%밖에 안 된다. HRer로서는 답답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 현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적인 가구회사 회장으로 크게 존경받았던 허먼밀러사의 맥스 드프리는 "지도자의 첫 번째 책임은 현실을 규명하는 것이고, 마지막 책임은 감사의 말을 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1) 경영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HRer란?
피터 드러커는 생산성을 급격하게 올릴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으로 피드백과 과업 재정의를 꼽았다. 그런데 바른 피드백은 과업이 제대로 정리되었을 때 가능하기에 결국 과업 정의가 생산성의 핵심이다. 'Do things right'이 아니라 'Do right things' 말이다. 얼리치가 말한 HR의 4가지 역할이 바로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사실 얼리치는 HRer들이 이 4가지 역할을 따로 나눠 맡으라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그가 원래 주장한 핵심은 이 네 가지 역할을 모두 잘 수행함으로써, 각각의 역할에서 결과를 내는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이 역할은 기업의 특성이나 문화에 따라 인사 부서와 현업이 적절하게 나눠 맡는다.
예를 들어, 미국은 한국보다는 현업에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편이다. 반면, 한국 기업에서는 여전히 HR 부서가 이 네 가지 역할을 동시에 맡는 경우가 많고, 그 결과로 성과를 내기 어려운 직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HR이 전략적 파트너와 변화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대부분의 HRer가 가입해 있는 링크드인에서도 전략적 파트너(HRBP라고 하지만 대부분 전략적 파트너에 초점)와 조직문화 담당자 직책이 갈수록 많이 보이는 것이 그 증거다. 이 글에서는 전략적 파트너로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집중해보려고 한다.
먼저, 전략적 파트너는 누구일까? 한마디로 ‘경영자나 현장 관리자와 협력해 성과를 창출하는 HR 전문가’를 뜻한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한 사람은 램 차란이다. 그는 '인재로 승리하라'(Talent Wins)에서 기업이 성공적으로 경영되기 위해서는 CEO-CFO-CHRO의 삼각 체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CHRO의 역할이 바로 전략적 파트너다. 사업 초기부터 경영자와 하나의 팀이 되어 의논하고, 그 속에서 인사 전문성을 발휘해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다. 아무리 전략이 좋고 자금이 충분해도 인재가 없으면 사업이 성공할 수 없기에, 이는 너무나 당연한 접근이다.
그렇다면, 전략적 파트너로서 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얼리치의 관점에서 이를 다시 살펴보자. 우선은 측정 가능한 성과로 증명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적합한 인재를 선발해 맡기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여기에 가장 기본은 해당 기업의 고객과 내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깊은 이해이다. 그래야 경영자와 같은 눈높이에서 비즈니스를 보고, 함께 결과를 만드는 전략적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이제 고객, 기업, 그리고 외부 환경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면밀히 살펴보자. 이러한 변화를 이해한 후, HR 전략적 파트너로서 어떤 역량을 갖추고 성과를 창출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2) 시대의 변화(고객, 기업, 기술)와 HR의 과업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Z세대는 평생 4개의 직업과 15개의 직장을 경험할 것이라고 한다. 최근 한국 Z세대에 대한 조사 결과는 미국보다 더 빠른 변화를 보여준다. 이는 주도권이 기업에서 개인으로 넘어간다는 의미이다. 상품에서는 각 고객에게 맞춤형 상품을 제공하는 기업들이 시장을 선도해왔고, 이제는 인재의 차례다. HR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1인 기업, 핵개인의 시대에는 고객 맞춤형으로 접근하는 기업만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 비록 현재는 구직난이 심화되고 있지만, 수년 내에 구인난이 대두될 것이다. 인구 구조가 이미 이러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핵심 인재는 여전히 쉽게 이동하지 않는다. 여기에 인재 경영의 비밀이 있다.
다음은 기업의 변화이다. 기업 변화의 실체는 '위기의식'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기업 신년사에서 '위기'라는 단어는 항상 단골 메뉴였다. 변화로 인한 두려움으로 기업은 생존과 생산성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경영진들이 HR이 기업의 생존과 생산성을 관리해 주기를 바라는 암묵적인 요청을 반영하는 것이다. 현명한 HRer라면 KPI를 생산성 중심으로 제안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이렇게 해야 경영자들이 비로소 HR을 자신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일하는 파트너로 인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AI로 대변되는 외부 환경의 변화가 있다. 이제 AI 없이는 미래를 논할 수 없다. AI로 인한 변화를 어떻게 비즈니스에 적용할지 경영자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AI의 발달에 따라 직업의 변화가 일어나면 노동의 이동성과 이에 따른 인재 재배치 및 재교육이 필요하게 된다. 또한, AI를 선도하고 수십 배 이상의 생산성 차이를 보이는 핵심 인재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와 같은 비즈니스와 직결된 문제들을 다뤄야 한다.
(3) 전략적 파트너의 성과
이제 HR이 어떤 성과를 내야 할지 정리해 보자. 앞서 언급한 ‘HR Champions’의 부제는 ‘가치를 더하고 결과를 가져오는 어젠다’(The next agenda for adding value and delivering results)였다. 방법(how)이 아니라 무엇을 하고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에 집중하여 결과를 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다.
전략적 파트너로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여건은 CEO-CFO-CHRO의 삼각체제가 일상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런 기업은 많지 않다. 이때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최고경영자를 HR에 끌어 들이는 것이다.
사실, HR이 제대로 성과내기 위해 이보다 효과적인 것은 없다. 단, 그러려면 HR이 매력적인 제안을 최고경영자에게 해야한다. 가령, 최근 AI가 화두가 되고 기술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으므로 AI우수 인재 영입을 위해 함께 뛰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그런 생각을 하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안내하는 것이다. 만약, 최고경영자가 ‘천재 1명이 만명을 먹여살린다’고 말하게 할 수 있다면, 그 한마디는 각 경영자들이 어떻게 시간 사용을 해야하고 어떤 성과를 낼지 지침이 된다. 필자도 CHRO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일은 30대 초반 22명의 경영자 후보양성 프로젝트나 뉴욕에서의 핵심인재 채용에 최고경영자와 동행했던 것인데 덕분에 일이 매우 효과적으로 진행되었다. 최고경영자가 관심을 가지면,그 관심이 곧 기업 전체의 우선순위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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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실제로 생산성을 올리는 것이다. 비용을 줄이던 매출을 늘리던 상관없다. 가령, 필자가 CHRO를 할 때 그룹 인적성검사를 개발했다. 천재 주임 1명과 사원 2명이 이 일을 아주 성공적으로 해냈다. 인재선별의 정확도가 많이 개선되었음은 물론 수십억의 비용을 절감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경영자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전략적 파트너로서 일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고객과 현장을 충분히 알고 제안하는 것이다. 가령, 필자가 마트 사업부 이슈를 해결해야 했을 때 한달간 마트에서 직접 상품 진열, 현장 판매하고 매장 창고 밤샘근무와 고객동선을 연구했다. 고객 집에 찾아가서 냉장고문도 열어보고 설명도 들었다. 고객의 말이 아닌 냉장고 속에 진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에서 어떻게 주문을 하는지도 추적했다. 그 과정에서 직원들도 계속 만났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니 이 사업이 무엇이고, 어떤 사람들을 선발해야 할지, 그리고 평가방식이나 현장 인력 운영까지 고객과 현장의 입장에서 제안할 수 있었다. 이런식으로 접근하면 경영자는 마음을 열고 듣는다.
전략적 파트너가 된다는 것은 경영자와 같은 눈높이에서 비즈니스와 인재를 보고 의논하고 제안할 수 있는 사람, 더 나아가서 경영자가 의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HRer들은 여러 현장 경험과 직무순환, 그리고 고객을 직접 만나는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훈련을 평소에 해야 한다. 물론 경영자와 함께 하는 것이 베스트다. 결국 가치를 더하고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adding value and delivering results)이 HR의 존재이유 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