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00 배달원은 잘못이 전혀 없습니다
1. 키친타올과 반려동물 탈취제를 급하게 주문했다.
두 품목을 묶어 배송하느라 하루가 늦어졌지만, 환경도 생각하고 배달하시는 분의 수고를 덜어드리는 게 낫겠다 싶었다.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 여겼다.
2. 그런데 이틀이 지나도 오질 않았다.
이상해서 아침에 앱을 확인해보니, 어젯밤 11시59분 도착했다고 찍혀 있었다.
“어? 물건이 없네. 배달사고 났어요.” 아내에게 말했다.
나는 정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3. 급히 이동 중 신호등 앞에서 다시 확인해봤다.
앗, 최근에 지인에게 책을 보내면서 입력해둔 주소로 주문해버린 거였다.
일단 반품 신청을 눌렀다.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4. 하지만 곧 반품을 취소했다.
판매 업체에 괜히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았다. 대신 지인에게 이렇게 톡을 보냈다.
“현관 앞에 키친타올 두 묶음과 반려동물 탈취제가 배달됐을 거예요.
지난번 책 보낸 주소로 잘못 주문했네요. 작은 선물이라 생각하고 쓰시면 좋겠어요.
탈취제는 반려동물 키우는 이웃에게 주셔도 좋고요.”
나름 배려하는 사람 같았다.
결국,
내 생각 속에 갇혀서 내가 모든 걸 제대로 했다고 전제하고 배달사고라고 단정했다.
내 눈 속의 들보를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속의 티끌을 탓하려 했다.
“창밖을 보는 사람인가, 거울을 보는 사람인가.”
다음달 리더십 강의에서 인용할 질문인데 오늘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실수도 많고, 착각도 많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