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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복귀, 기회를 설계하라

부제: 정보가 커리어의 시나리오를 바꾼다

by 전준수

육아휴직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복직을 몇 달 앞둔 시점부터는 고민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1년이 넘는 공백 동안 누군가는 내 일을 대신하고 있다. 돌아가도 내 자리가 그대로 있을까?
사람들이 나를 잊지는 않았을까? 복귀 후의 나의 존재감은 과연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유리천장이라는 단어가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석 달 전, 이런 상황을 앞둔 30대 중반의 여성 직장인 S를 만났다.
그는 위의 고민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기에 현 직장 복귀뿐 아니라 이직까지 염두에 두고 계획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당신이나 당신의 배우자가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준비할까? 무슨 조언을 줄 수 있을까?


S는 매우 스마트한 사람이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직장 생활 중에도 야간 대학원을 졸업했고, 커리어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왔다.

그런데 얼마 전 인사과에 전화를 걸었더니 돌아온 건 뚜렷한 답이 아니었다. 며칠 후에는, 기대와는 거리가 먼 보직으로 배치될 가능성만 전해들었다.


이제 S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현 직장으로의 복귀. 또 하나는 이직까지 고려하는 것. 문제는, 현 직장 내에서 자신이 원하는 보직을 얻기 위한 정보도, 솔루션도 없었다.


나는 그에게 먼저 이력서를 다시 써보라고 했다.

“이직을 희망하는 기업 리스트를 몇 개 정해서, 그 회사에 지원한다는 마음으로 이력서를 써보세요.”

준비된 사람답게 그는 바로 다음날 이력서를 보내왔다. 속도감 있는 처리. 확실히 그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전체 골격을 다시 잡아보도록 요청했다.


그리고 그 현 직장에 제출할 경력기술서를 인사 담당자가 아닌,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새로 부임한 대표에게 직접 보낼 수 있도록 정리하게 했다.

이렇게 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스스로 이력서를 작성하고 검토를 받으면 자신에 대한 메타인지가 생긴다. 무엇을 고쳐야 할지, 어떤 점을 강조해야 할지 명확해진다.

그리고 대표에게 직접 제출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자리가 한정돼 있고 선점된 상황에서
나에 대한 정보를 미리 주면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내 가능성을 염두에 두게 된다.


서운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휴직자를 조직 내에서 전략적으로 어디에 배치할지 큰 그림을 갖고 있는 회사는 의외로 많지 않다. 항상 눈앞의 현업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더 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급적 이른 시점에 ‘나’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주면 조직은 자연스럽게 변화 시나리오 안에서 나를 고려하게 된다. 리더들은 항상 조직과 사람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준비는 적어도 복직 3~4개월 전에 시작하는 것이 좋다. 회사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고, 나 또한 준비가 필요하다. 복직 후 직무가 예상과 달라지면 이중 부담이 생기고 의기소침해지기 쉽다. 반대로 미리 정보와 배치 계획을 공유하면 당황하지 않고 준비된 상태에서 복귀할 수 있다.


두 달 전, S는 준비한 경력기술서를 새로 부임한 대표에게 직접 보냈다. 그 안에는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해왔는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 그리고 앞으로 회사 내에서 가능한 커리어 시나리오 몇 가지가 담겨 있었다.

대표는 이 자료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고 한다. 그런 재능과 가능성이 있는 인재가 휴직 중일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침 대표가 고민하던 차기 계획에 S를 팀장 후보로 넣을 계기를 제공했다.


그리고 한달 전, S는 복직해 새로 배치된 자리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대표와의 면담을 통해 회사의 장래 비전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어떻게 성과낼지 명확히 정리할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만약 현 직장에서 좋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면 그는 이직할 만한 준비도 충분히 되어 있었다. 나는 이직을 하게 되면 멘토링을 해주기로 했지만, 다행히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피터 드러커는 말했다.
“동기부여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배치(Placement)다. 그리고 그 다음이 정보 제공이다.”

정보 제공은 동기부여와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다. 서로 정보를 몰라서 소중한 기회를 놓치거나, 귀한 인재를 잃는 일도 많다. 기회가 된다면, 최대한 정보를 제공하라. 충분한 정보 제공이 해가 된 경우는 거의 없다.


나는 누구에게 어떤 정보를 주어야 하는가? 또 나는 누구를 통해 어떤 정보가 필요한가?

어쩌면 작은 하나의 정보가 당신의 진로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끌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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