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예측의 대상이 아니라, 설계의 대상이다

Self as an Enterprise – Continuity

by 전준수

미래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대개 불안해진다.

“앞으로 뭐가 유망할까요?” “이 길이 맞는 걸까요?”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
리포트를 읽고, 전망 자료를 찾아보고, 미래학자의 글을 읽는다. 혹은 탁월한 통찰과 창의성을 가진 경영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미래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예측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래를 바꾸는 힘은 ‘정보’보다 정체성에서 나온다.

사람은 되고 싶은 모습이 아니라 이미 그 사람이라고 믿는 정체성에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가까워진다.

목표에는 언제나 현실과의 간극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간극을 계속 바라보는 사람에게 목표는 점점 현실로 다가온다. 어릴 적 교과서에 나오던 ‘큰 바위 얼굴’처럼 말이다.


그래서 내가 누구라고 믿느냐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를 결정한다.

그런 점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라는 피터 드러커의 말은 이상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조언에 가깝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지금의 선택이 만들어낼 미래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


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하나의 설계도(Blueprint)로 생각한다. 그러나 어쩌면 인생은 설계도라기보다 두루마리에 더 가깝다. 오늘의 내가, 결국 미래의 나를 이어서 써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큰 그림이 없다면 우리는 365일을 한결같이 살기보다, 하루를 365번 반복하기 쉬워진다.


그래서 오늘의 일을 미래의 나와 연결시켜 질문해 보면, 단기 성취보다 장기 정체성과 방향성이 기준이 된다.

성과, 직함, 성취라는 단어들보다 조금 더 본질적인 질문이 남는다.

- 나는 어떤 결을 가진 사람인가? 그리고 그 결을 유지한 채 어떻게 진화해 가고 있는가?


이 질문은 주변의 평가와 비교에서 조금씩 나를 자유롭게 한다.
칭찬과 오해에 덜 흔들리게 하고, 겉으로 보이지 않는 에너지 낭비를 줄여준다.


이 질문과 연결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문장이 하나 있다.

“만약 지금의 삶이 첫 번째 삶이 아니라 두 번째 삶의 시작이라면, 나는 무엇을 다르게 선택할 것인가?” (빅터 프랭클)

이 문장을 떠올리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렇게 정리가 된다.

분명한 YES가 있을 때, 비로소 NO가 가능해진다.
그래서 임어당은 이렇게 말했다. “삶의 지혜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제거하는 데 있다.”

미래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더 많은 목표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덜 중요한 목표를 제거하는 것이다.


빅터 프랭클의 질문 앞에서 많은 것들이 다시 정돈된다.

관성으로 유지해 온 역할

의미 없이 이어가는 관계

남들이 좋다 해서 선택한 목표

바쁘지만 나를 비워내는 일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아직 늦지 않았고, 충분히 다시 설계할 수 있다는 것.

성장은 목표를 쌓아 올리는 경쟁이 아니라, 방향을 정리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정체성이 분명해질수록 선택은 단순해지고, 후회는 줄어들며, 집중은 깊어진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5년 후의 내가 “그 선택, 정말 잘했다”고 말해줄 오늘의 선택은 무엇일까?

미래의 나를 지치게 만드는 덜 중요한 목표 한 가지는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이 첫 번째 삶이 아니라 두 번째 삶의 시작이라면 나는 무엇을 다르게 선택할까?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미래는 예측하는 대상이 아니라 정체성으로 설계하는 대상이다.

그리고 그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이끌게 하는 것,

아마 그것이 자기경영(Self as an Enterprise)의 과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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