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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Nov 19. 2020

아들을 배웅하며 울 엄마가 생각났다.


아침 7시 3분 우리로 중학교 1학년인 막내는 신발에 발을 욱여넣듯 신고 가방을 아이 업듯 둘러메고 현관문을 나선다.

거리는 밤새 비가 내렸는지 오가는 자동차 불빛 받은 땅바닥의 물기가 방금 로션 바른 얼굴처럼 번들 거린다. 그물기 위로 잔잔한 빗방울이 작게 터지는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나는 막 집을 나서려는 막내를 급히 불러 세우고 접이 우산을 안 그래도 무거운 아이의 가방 사이에 끼여 넣으며 한마디 한다.

"혹시 이따 비 많이 오면 우산 써, 비 다 맞지 말고"

아이는 엄마의 말에 귀찮은 듯 고개를 까닥이며 잠바에 달린 모자를 눌러쓰고 찻 길을 건넌다.


동트기 전의 바깥도 비옷 같은 바람막이 잠바를 입고 길 건너 버스 정류장으로 걷고 있는 아이도 까맣다.

어느새 정류장 앞에 다다른 아이의 고개가 길 건너 우리 집 쪽을 향한다. 타고 가야 할 25 버스가 오고 있는지 그 길 끝쪽바라보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도 현관문 앞에 쪼그려 서서 저를 보고 있을 엄마를 보고 있는지 모를 일이지만 나는 들고 있던 핸디를 환하게 켜고 높이 들어 한두 번 흔들어 준다.

엄마 여기 있어라는 메시지를 담아 마치 콘서트장에서 노래 따라 부르며 흔들어 대는 야광봉처럼...


울 할머니 이을순 여사의 말투를 흉내 내자면 독일은 뭔 놈의 학교가 우라지게도 일찍 시작한다.

초등학교는 8시 중고등학교 들은 7시 50분 이면 수업종이 울리니 말이다.

어두침침하고 동도 늦게 트는 겨울인데 애들 학교 보내는 게 무슨 새벽일 보내는 것 같다.

나는 수시로 오가는 차량들 속에 우리 동네 마을버스 같은 25번 버스는 언제 오려나 하고 고개를 자라목처럼 길게 늘인다.


원래 정해진 버스 시간은 7시 11분.. 그런데  어느 날은 9분에 오기도 하고 또 언제는 10분에 오기도 하며 다른 날은 12분에 오기도 한다. 그날그날 교통 상황에 따라 몇 분 상간의 배차 간격 이 있을 수도 있고 그때의 운전기사님의 속도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엿장수 맴이다. 

어찌 되었든 몇 분 차이여도 오기는 오니 되었다만 문제는 아이가 버스 타고 가다 3번이나 7번 전차로 갈아타야 해서 고 몇 분 차이로 환승해야 하는 차를 놓칠 까 봐 다.

핸디를 손에 쥔 체 두 팔의 팔짱을 끼고 섰다.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올 때가 됐는데.. 를 되뇌며..

그러다 문득 지금의 내 모습과 다르지 않았을 울 엄마가 생각났다.

그 언젠가 이렇게 칡흑 같이 어두웠던 입김이 하얗게 내뿜어지던 겨울밤 나를 마중 나왔던

울 엄마 가 말이다.


그날 밤 나는...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시내를 다녀오던 길이 었는지 그 당시 다니고 있던 영어 학원의 수업을 듣고 오던 길이였는지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날의 거리 풍경과 그날 의 일 만큼은 아직도 생생 하다.

아무튼 시내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는 길이였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역 입구에 는 아직 팔아야 할 찐 옥수수를 모락모락 김 나는 양은 냄비 위에 얹어 놓은 할머니도 계셨고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달다구리 한 군고구마요 라며 외쳐 대고 통속의 고구마 들의 방향을 바꾸는지 갈색의 둥근 철통에 달린 손잡이를 풍차 돌리듯 돌리던 털모자를 쓴 아저씨도 계셨다.


눈을 기대하기 에 딱 좋을 만큼 코끝이 짱 하게 추운 겨울밤이었다.

역 근처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 큰길로 나가는 양쪽 길에는 샐 수 없이 많은 식당과 분식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리와 매캐한 음식 냄새들.. 어느 집에서는 김치찌개 냄새가 또 어디서는 고등어 굽는 냄새가 알싸한 연기와 함께 풍겨져 나왔다.

조금 더 걸어가면 대학이 나오니 주머니 얇은 대학생들이 배를 채우고 있는지 아니면 일 끝나고 스트레스를 풀려는 직장인들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지 사람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는 이 밤이 길 것 같이 들려왔다.


그렇게 건널목에 서서 언제나와 처럼 별다름 없던 풍경을 잠시 눈에 담고는 신호등의 빨간 불이 파란불로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소심하게 툭툭 하고는 쳤다 손가락 하나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만약 누군가 아는 사람이었다면 이름을 불렀을 것이고 모르는 사람이 내게 볼일이 있었다면 저기요 라고 불렀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무턱대고 툭툭 치는 건 별로다.

나는 살짝 짜증이 섞인 얼굴로 뒤돌아 보며 네? 했다.

삐쩍 마른 북어처럼 생긴 남정네가 나를 보며 쭈뼛거리고 있었다. 대로변에서 학생 돈 있어? 라며 삥을 뜯을 것 같이 생기진 않았고.. 그럼 뭐겠는가 모르는 여자를 불러 세운 이유가..

나는 불현듯 그전에 종로에서 만났던 도를 아세요 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조금 앙칼진 목소리로 무슨 말인가 하려고 주저주저하고 있는 남자에게 쏘아붙였다.

"우리 집  조상님 잘 모시고 있고요 얼마 전에 굿도 했어요!"

기다리던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고 나는 걸음을 빨리해 건널목을 벗어났다.

식겁한 표정으로 계속 따라오던 남자가 소심한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쳤다

"나 이상한 놈 아니에요, 아까 전철 안에서 부터 봤어요. 내 이상형이에요"

아 놔 뭐래니? 내가? 굳이?, 아니 왜? 왜냐하면 그 당시 나이만 꽃다웠던 나는 성격이었다면 모를까 외모는 눈코 입만 멀쩡이 달려있는 여자 사람일 뿐 누구의 이상형이 될 비주얼이 아니었다. 그런데 언제 내 성격을 보았겠는가? 그러니 완젼 이상한 놈이었다.

게다가 전철 안에서 부터 보고 따라왔다고 하니 더 소름 끼치고 무서웠다.

왜 하필 나를? 힘세게 생겨서? 새우 잡이 어선 에라도 팔아넘기게?

나는 어디 가서 이야기 좀 하자는 남자를 뒤로 하고 경보하는 아줌니 들처럼 뛰듯이 걸었다. 여차 하면 소리라도 지르려고 두리번거리며....

그때 멀리서 밤색 겨울 스웨터를 입은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우리 엄마의 얼굴이...

너무 반갑고 안심이 되어 나는 손가락으로 그 북어 같은 이상한 놈을 가리키며 엄마에게 이르듯 소리쳤다.

"엄마 이 아저씨가 자꾸 나 따라와!"


어느새 내 가까이로 다가온 엄마는 그랬어? 하며 태연히 인자한 미소를 지었지만 왠 놈이 우리 딸을? 감히?를 담은 눈빛은 매섭게 그 이상한 놈을 훑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아예 사색이 되어 마구 말을 더듬으며 " 저 학생이에요 이상한 놈 아닙니다"

라고 했다. 뭐 학생이면 이상한 놈 아니라는 보장이 있나? 지입으로 계속 이상한 놈 아니라는 게 더 이상해 보였다. 게다가 나는 그날 날씨 춥다고 내복 입으라는 엄마의 잔소리 덕분에 내복에 두툼한 겨울 잠바로 중무장해서 흡사 동그란 공 같아 보였다.


백번 양보해서 어두워 얼굴이 잘 안보였다 해도 뭐 그 이상한 놈의 취향이 동산 위에 둥근달 또는 돼지 저금통이 아니라면 한참 여자 외모에 심취할 젊은 남자가 이상형으로 꼽을 모습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나는 벙찐 얼굴로 멍 때리는 미스터리 남을 쌩까고 포근한 엄마의 팔에 팔을 넣어 팔짱을 끼고는 반가운 마음과는 다르게 "추운데 뭐하러 나와 내가 어린앤가"라며 툴툴거렸다.

엄마는 웃으며 " 밤인데 어떻게 안 나와봐 이렇게 이쁜 딸 저렇게 따라오는 놈도 있는데"라고 했다.

나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리며 "엄마 저 사람 또라이 인가 봐, 언제 봤다고 내가 지 이상형이래? 그게 말이되?" 했다.

엄마는 활짝 웃으며 "왜 말이 안 돼 우리 딸 연분홍빛 잠바 입혀놓으니 핑크색 벚꽃 같구먼"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사준 잠바를 입고 있으니 그렇게 보이나 보네..라는 뜻을 담아 눈을 살짝 흘기고는

"피이.. 핑크색 벚꽃이 아니라 핑크 돼지겠지!"라고 했다.


그 옛날 옛적의 일화가... 나를 마중 나오던 엄마의 모습이...

이렇게 불현듯...

어둠을 뚫고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배웅하고 있는 내게 살며시 찾아왔다.


어릴 때 나는 예쁜 엄마의 외모를 닮지 않고 개성 강한 아버지를 그대로 닮은 내 씩씩한 외모가 많이 아쉽고 속상했었다.

그래서..."딸은 엄마를 닮는 다는데 난 왜 울 엄마를 하나도 안닯았을까?"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그런데...

내가 이제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어 그때의 나만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보니 나는 틀림없이 엄마를 똑 닮아 있었다.

비 오면 비 맞을까, 날 추우면 추울까, 어두우면 무서울까 걱정하는 모습이 딱 울 엄마 모습 그대로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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