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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Sep 21. 2020

우리는 이상황을 잘 극복해 나갈 것이다.


남편이 다시 입원을 했다.  


남편이 다시 대학병원 안과 병동에 입원을 했다. 안압이 잘 유지되고 있는지 24시간 하루 네 번 체크해 보기 위해서였다.


남편이 녹내장 진단을 받은 지 2년 반이 흘렀다. 2년 반이라는 시간은 누군가 에게는 길 수도 또 누군가에겐 짧을 수도 있다. 그동안 우리 에게는 많은 일이 일어났다. 그중에서 남편의 녹내장으로 인한 변화는 컸다. 녹내장 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안압을 높여 시신경을 손상시키는 병이다. 그래서 안압을 유지시키고 그로 인한 시신경 손상을 막는 것이 주된 치료 방법이다. 그것이 점안약 투여, 스탠트 수술, 그리고 녹내장 수술로 나뉘어도 모두 목표하는 것은 한 가지 다. 최대한 시신경 손상을 막는 것! 왜냐하면, 현대 의학으로도 한번 손상된 시신경은 다시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녹내장은 최대한 진행 속도를 늦추고 현상 유지를 하는 것이 관건인 병이다.


남편의 입원실에서 내려다 보이던 풍경

그동안 남편과 독일 내에서 녹내장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종합병원 은 모두 다녀 보았다. 그리고 몇 번의 과정을 통해 남편에게 맞는 안구 점안 약도 찾았고 오른쪽은 스탠트 삽입술도 받았다. 그 덕분에 지금은 정기검진에서 안압을 재어 보면 양쪽 눈이 10에서 13 사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수치 만으로는 정상 안압 보다도 훨씬 낮은 안정적인 수치였다.

그럼에 무엇이 문제 인지 남편의 시신경 손상은 계속되고 있었다. 안과 주치의가 이대로 가면 위험하다며 걱정할 만큼 말이다.

그래서 혹시나 하루 중에 불규칙 적인 안압의 변화가 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다.


코로나 시대 입원이란...


금요일 아침, 우리 병원은 직원들 에게 맡기고 급한 환자 들은 동료 병원들에게 진료 부탁을 한 후 남편은 입원을 했다.

종합병원에서 일할 때에는 이럴 때 병가 한 장만 내면 되었지만 이제는 개인 병원을 하고 있으니 남편은 자신의 병원 입원 스케줄도 여러 가지 병원 업무를 나누어 맡겨 놓고 나서야 가능하게 되었다.


거기에 요즘은 코로나라는 강적으로 인해 종합병원 입원 환자들은 입원 하기 전인 72시간 전의 코로나 테스트 결과를 가지고 가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보호자 방문도 어려워졌다.


독일 종합병원 안과 병동 입원실

 유난히 길었던 주말


보통, 직장인들에게 주말이라 하면 금요일에서 일요일 까지가 마치 하루 같은 아깝고도 짧은 시간인데... 우리에게 이번 주말은 유난히도 길었다.

남편은 금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안과 병동 입원실에서 하루 네 차례, 아침 7시 30분, 점심 12시 저녁  6시 밤 9시 안압을 재고 여러 가지 검사를 위해 검사실 들을 오갔다. 이때 종종 복도에서 마주치는 다른 환자들이 뭔가 이상하네... 하는 듯이 남편을 슬쩍 쳐다보더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병동은 주로 수술 후 입원환자들이어서 안대 외에 얼굴에 붕대를 감고 다니는 그리고 팔에는 여차 하면 수액을 투여할 수 있도록 부라뉼레를 꼽고 있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남편은 휴가지의 호텔 투숙객처럼 팔에 병실 호수가 적혀 있는 플라스틱 팔찌만 두른 체 너무 환자스럽지 않은 모습으로 입원해 있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겉모습으로는 말이다.


그 외의 시간남편은 입원실에서 식사하는 것 말고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보기엔 멀쩡? 해 보여도 남편은 눈 상태가 좋지 못하니 핸디로 인터넷을 한다 거나 가져간 노트북으로 영화를 본다거나 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했다.

또, 그 시간 동안 입원실에 갇혀? 명상을 하는 것도 스트레칭을 하는 것도 책 읽어 주는 유튜브를 듣는 것도.. 시간을 보내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종종 내게 전화해서 안압 상태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고 주로 뭐 하고 있니? 등의 쓸데없는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하고는 했다. 그리고 다운로드하여간 질환별 세러피 등의 영상 등을 라디오처럼 틀어 놓고 말짱한? 모습으로 멍 때리며 이박 삼일을 병동에서 버텼다.


나는 나데로 남편이 없는 주말은 길고 길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도시락 싸들고 병원으로 갔을 테지만 지금은 코로나로 그것도 할 수가 없고....

남편은 다른 환자들에 비해 보기에만 말짱? 했지 실제로 가지고 있는 문제는 그리 가볍지 않아 마음이 무거웠다.

날씨가 좋아 부지런히 해댄 빨래를 베란다에 수시로 널 때도 설거지를 할 때에도 청소기를 돌리면서도 왜 남편의 녹내장은 멈추지를 않고 계속 나빠지기만 할까? 병원 개원하는 거 찬성하지 말걸 그랬나? 종합 병원에 매여 있을 때 보다 자기 병원을 하게 되면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어 더 나을 줄 알았는데 신경 쓸건 더 많아지고.... 등의 해 보아야 별 도움 안 되는 생각들과 걱정들이 좀처럼 머릿속에서 떠나 주지 않았다.  

남편의 입원실 다른 방향 풍경, 그래도 병동이 5층이라 덜 답답했다고 했다.
우리는 이상황을
잘 극복해 나갈 것이다.


그렇게 2박 3일의 입원이 끝나고 결과가 나왔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남편의 안압은 불규칙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정기 검사 때는 진료 예약된 시간에 한해서 안압을 체크하게 되므로 중간에 다른 시간 동안의 안압은 알 수 없었는데 입원을 해서 시간대를 여러 개로 나누어 검사를 진행하다 보니 그런 결과가 잡힌 것이다.

약을 점안 후에 안정적 수치를 보이고 있던 안압이 어느 순간 20까지 치솟고 있었던 거다.

그것이 스트레스 때문이건, 피로 때문이건, 그것들로 인한 일시적 혈액순환 장애로 인한 것이건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문제는 지금처럼 안압의 수치가 어느 순간 갑자기 치솟거나 한다면 시신경의 손상은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점차적으로 시신경이 손상되고 있다는 것은 점점 시력을 잃고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  


그 어느 때 보다 우리에게는 비상사태인 것이다. 이제 남아 있는 방법 은 수술뿐이 없다. 그 수술이라는 것이 지금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시신경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법 이 될 터였다.

남편의 상태는 급했고 상황은 무거웠다. 남편이 하게 될 수술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빠른 시간 내에 수술 날짜를 잡으려니 수술 후 회복시간까지 못해도 일이 개월은 잡아야 하는데... 코로나에 감기에 시기 적으로 병원을 비우기에 상황이 녹록지 않다. 그렇다고 수술 시기를 늦추려니 남편의 시신경이 얼마나 버텨줄지 그것 또한 아슬아슬한 상황인 것이다.

어느 것 하나도 간단하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프고 답답해 왔다.


답답한 마음에 퇴원한 남편과 우리 집 멍뭉이 나리를 데리고 동네 한 바퀴 산책을 나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푸르렀고 나무 위로 퍼져 있는 햇빛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에서 찰랑 거리는 소리를 낼 듯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그 찬란함이 슬프다는 게 서글플 뿐 한 개도 다를 바 없는 날씨 좋은 날이다.

우리는 날씨 진짜 좋다를 연발하며 한동안 말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남편이 뜬금없이 "눈이 안 보인다고 생명이 위독한 건 아니잖아"라고 했다. 마치 우리 저녁에 김밥 해 먹자 라고 이야기하듯 툭...

그래, 생각해 보니 이 시간에도...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유모를 병으로 고통받고 끝을 모르는 싸움을 하고 있던가... 남편의 상황이 좋지 못하지만 적어도 생과사의 갈림길에 서있는 건 아니다.그런 생각을 하며 우리는  상황 또한  극복해 나갈 것이다 라는 확신이 들었다.

분명, 앞으로 넘어야 할 일들이 높은 산처럼 버티고 있겠지만 우린 함께 이니 괜찮을 것이다.

평소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독일 격언을 읖조리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희망을 놓는 것은 맨 마지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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