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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Dec 07. 2020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스릴러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탓이다.


일요일 아침 우리는 모처럼 빵가게에 들러 갗구워낸 빵을 사 오기로 했다.

평일 에는 7시 조금 넘으면 식구대로 학교 가느라 출근하느라 빵 사다 놓고 여유 있게 먹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요구르트에 뮤슬리와 과일 또는 그전날 먹던 국에 후딱 하니 밥 말아먹고 나간다.


오늘은 왠지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바삭한 잡곡 빵에 지난번에 선물로 받은 딸기잼을 발라 먹고 싶어 졌다.

우리 집 멍뭉이 나리를 데리고 빵도 살 겸 산책길을 일요일에 문을 여는 빵가게 쪽으로 노선을 정하고 길을 나선다.


독일에서는 일요일에 가게 문을 여는 것은 드문 일이. 예외적으로 *코로나 이전 에는 휴가지에 있는 쇼핑 타운 들은 문이 열려 있었다. 또 울 딸내미 사는 베를린처럼 일요일에 문을 연 마트가 있는 곳도 있다.


그러나 독일에서 일요일에 상점 들 문이 열려 있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우리 동네만 해도 레스토랑 들 외에 몇 군데 빵가게 그리고 공동묘지 앞 꽃집 정도가 시간 정해 놓고 일요일에 문을 열고는 한다.


그런데 요즘은 코로나로 레스토랑들도 포장 배달 판매만 가능해서 아예 문을 닫은 곳들도 많아졌고 일요일에 문을 열었던 빵가게 중에서도 닫는 곳들도 늘었다.

우리가 일요일 이면 자주 가던 분위기가 카페 같던 빵가게도 이제는 일요일에 문을 열지 않는다.

코로나 이전에는 빵가게에 와서 아침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이제는 빵 커피 정도를 to go 해 가는 사람들만 있으니 문을 여는 시간에 비해 들어오는 수입은 적고 인건비는 많이 나가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이래저래 한적한 동네의 일요일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오가는 차들도 별로 없고 길에 다니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 그 고요함이 흐린 날씨와 맞아떨어져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길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곳은 일요일에 문을 연 빵가게뿐이다.


길 건너 빵가게 앞에서 마스크 쓰고 거리 유지하며 한 줄로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가 합류하면 다섯 번째 네 근데 무슨 빵을 살까?"를 이야기하다 둘 다 현금이 없음을 알게 됐다.


아무리 주머니를 훑어 봐도 남편과 내가 합쳐 2유로 조금 넘는 동전뿐이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어디를 가나 현금이 아닌 카드결제를 선호한다.

그렇다 보니 돈 들고 다닐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빵가게 에선 현금을 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빵가게에서 실컷 사놓고 계산할 때  없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과

그 길로 조금 걸어 내려가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은행 카드로 현금을 인출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거였.

그렇게 찾게 된 현금인출 소....


몇 개월 만에 찾은 현금인출 소는 달라져 있었다. 여러 대의 인출기 들로 꽉 차 있던 공간이 휑해져 있었다. 코로나 시대에 발맞춰? 마트에서 카트 숫자를 줄여 안으로 들어가는 인원을 조절하듯 현금인출기들의 숫자를 줄여 사용자 인원을 제한하고 있나 보다.

창가에 통장 정리하고 온라인 찍는 기계 두대 그리고 저쪽 벽 쪽에 현금 지급기 두대가 끝과 끝에 놓여 있고 가운데는 뻥 뚫려 있었다.


남편은 달라진 공간을 둘러보며 "와 여기 되게 넓어졌네 노숙자들이 침낭 깔고 자도 되겠어 "라고 했다. 나는 남편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여기를 어떻게 들어와 카드로 문 열어 야 하는데.."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하면 서도 왠지 어디선가 꾸리 꾸리 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음.. 딱 국간장과 까나리액젓을 1대 1로 섞은 듯한 냄새? 나는 이 묘한 냄새에 인상을 쓰며

남편에게 "요즘 여기 청소 잘 안 하나 보네 "라며 현금 인출기 앞에 서서 카드를 밀어 넣었다.

그런데 인출기 뒤쪽에 가방, 침낭 같은 짐들이 보였다.

"어 저게 뭐지?"하고 있는데..

남편이 놀라며 "어 사람인데?" 하는 게 아닌가 나는 그 소리에 소스라 치게 놀라며 뜨나 감으나 큰차이 없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런데 오마나 세상에나 진짜로 사람이 은행 현금인출기와 난방기 사이에 자리 잡고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분명 그사이로 신발 신은 사람의 두발이 보였다.

그 순간 머리카락이 뾰족하게 서는 것 같고 온몸에 소름이 땀띠 나듯 돋았다. 설마 사람이 그 안에 있으리라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람이 혹시라도 깨어나서 우리에게 위협이라도 할까 무서워 빨리 빨리를 외치며 남편과 나리를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독일에서 노숙자라 하면 알코올 중독 또는 마약중독 인 분들이 많다.

종합병원 응급센터에서도 일했던 남편은 경찰 손에 이끌려온 노숙자들을 더러 만나 보았다. 그들 중에 시끄럽거나 위독한 사람들은 있었으나 남에게 위험 한 사람은 없었다며 걱정할 것 없다 했지만 그럼에도 아무리 둘러 보아도 우리 뿐인 제한된 공간에서 더구나 현금을 찾고 있는 순간에 눈 풀 린 사람을 마주 한다면 너무 공포스러울 것 같았다.



어쨌거나 우리의 소란? 스런 소리에도 요동치 않던 그 사람은 우리가 밖으로 나와 현금인출소를 바라보았을 때도 조용했다. 뿐만 아니라 그사람이 누워있던 자리는 은행 광고 포스터 등으로 완벽히 가려져 밖애서는 그 안에 누가 드러 누워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날도 추운데 난방기 바로 옆이라 엄청 따듯하지.. 밖에서는 보이지도 않지... CCTV도 마저도 비치지 않는 곳이지... 추운 날 잘 곳이 필요한 사람이었다면 그 자리는 제대로 명당이었다.

빵을 사러 가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의문점들이 바쁘게 떠다녔다.

저 사람은 무슨수로 현금인출소 안에 들어 갈수 있었을까?

그공간에는 어떻게 자로 잰듯 사이즈?맞게 누울수 있었을까?

그리고 인기척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을까?

남편은 말했다. "그사람도 일요일인데 늦잠 자고 싶겠간만에 따뜻한 곳에서 얼마나 좋겠니"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뭔가 석연치가 않았다. 해서  남편에게 줄지은 질문들을 쏟아 냈

"그사람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누군가 사건을 은폐하려 저기다 옮겨 놓은 건 아니겠지?

우리가 살인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건 아니겠지?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남편은 기가막힌다는 듯 웃으며 "따뜻한 데서 잘 자고 있는 사람 괜히 쫓겨나게 하지 말고 그냥 두지"라고 했다.

그러다 나의 끊임없이 나오는 엉뚱한 질문들과 상상의 나래에 귀찮아진 남편은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다시 그곳으로 가서 확인해 보자고 했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생각 했다.만약 아까 그사람이 그 자세 그대로 거기 누워 있다면 신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건 마치 범인은 현장에 다시 온다 뭐 이런 분위긴데...... 오늘 우리가 두 번이나 거기를 간 것이 분명 cctv에 찍혔을 텐데.. 신고하면 우리부터 의심받는 거 아니야?그럼 우리의 알리바이는?

나의 대책 없는 삽질은 그곳에 다시 갈때 까지 계속되었다.


그런데 ...

도착한 현금인출소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그 두발이 보이던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어? 이게 어떻게 된 거지?"라는 나를 보며 남편은 "딱 봐도 누군가 냄새가 너무 심해서 문 열어 놨고 그분은 잠이 깨서 나갔던 쫓겨났던 했네.."라고 했다.

나는 마치 탐정이라도 된 듯 안그래도 작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그 안을 다시 한번 둘러보며  "혹시 그 안에 경찰이 다녀간 게 아닐까?"라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우리 집 멍뭉이 나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리야 엄마가 요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 앞으로는 스릴러 드라마는 못 보게 해야겠다"

그래 생각해 보니 남편 말이 맞는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주말마다 한국 드라마를 그것도 주로 비밀의 숲 1,2, 닥터 프리즈너 등 등 스릴러 드라마 위주로 보다 보니 후유증이 크다.덴쟝...

이젠 로맨틱 코미디로 갈아 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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