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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pr 15. 2021

글쓰기는 때로 모래 위에 쓰인 글자 같다.

그럼에도 나는 그 안에서 아이처럼 위로를 받는다.


지금 돌아서 생각해 보면 나는  바쁘게 살았다.

어쩌다 오래된 일기장을 뒤적이는 날이면.. 귀퉁이마다 쓰인 작은 일화들이 자잘히 나를 반긴다.

하나 둘 읽다 보면.. 어떻게 그 상황에 그렇게 살았을까? 싶을 만큼...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두 아이 키우며 독일에서 *간신히 학업을 마쳤고 세 아이 키우며 독일 사람들에게 한국요리 강습을 하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전공을 살려 보겠다고 독일 미술관 협회에서 일했으며 독일 유치원과 학교에서 미술수업을 했다. 그 중간중간에 블로그에 뭐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일상이지만 글을 썼고 그 후에는 세 아이로도 모자라? 강아지 키우며 등 떠밀려? 병원매니저 일도 시작했다.


싫든 좋든 잘하던 못하던 모든 일에 매 순간 진심이었고 열심히였다 그렇지 않았던 순간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만큼... 그렇다고 아이들 셋 낳고 키운 것 외에 실상 뭐 하나 똑소리 나게 일궈 놓은 것도 없으면서 말이다.


언젠가 누군가 내게 직업이 무엇이냐 물었다.

그 순간 멍해졌다. 나는... 학생, 화가, 미술교사, 미술협회 직원, 요리강사, 병원매니저, 글 쓰는 사람,....

그동안 내가 해온 수많은 일 들 중에

'나'라는 사람을 누군가 에게 명확하게 설명할 단어를 끄집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세 아이의 엄마라는 것 외에는...


그럼에도...

새로 시작한 병원 일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던 시간을 쪼개어 한국 요리강습을 재미나게 해 왔고 그 와중에도 즐거이 글을 계속 쓰고 있었으며 다시 학생이 되어 설레며 자연치유사 과정을 해나가고 있었다. 거기에 취미 활동으로 화요일, 목요일 이른 아침 이면 조깅 동우회 친구들과 만나 함께 뛰었고 비록 맨 뒤에서 허덕이며 따라가는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때때로 금요일 이면 좋은 친구들과 만나 커피를 마셨으며 학부형 들과 활발한 부모들 모임을 주도했다.


그간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 과의 관계 속에서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찌보면 나는 사람에 대한 관심도 많고 내가 관심받기를 원하는 요즘 말로 오지라퍼에 관종 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는...

내가 만들어낸 세상에서 뾰족하게 성공한 것 하나 없을지라도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코로나라는 염병이 창궐하고 많은 것이 올 스톱되기 전 까지는 말이다.

그렇게 어느 순간.... 코로나 이전 과는 다른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뀐 세상 속에서는 시간을 쪼개어 살던 이전에 비해 모든 것이 너무 널널 했다.

타이트한 레깅스를 입고 움직이는 것에 적응이 되어 있는 사람이 할머니들 통풍 잘되는 몸빼 바지를 입으면 만고 땡 편안 하지만 왠지 입은 것 같지 않은 허전한 느낌?

아마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뭔가 휑하고 헛헛한 느낌...


코로나 시대에 짧은 문장과 이모티콘으로 만 만나는 SNS 세상과 줌, 스카이프 등의 화상으로 만나는 만남들은...

어느 햇빛 쏟아지는 날 오후... "날씨 좋으니 우리 미술관에 전시회 보러 갈까? 이번 전시 완전 니취 향이야.!", "이번에 뮤지컬 공연 겁나 재미난 거 한데 보러 가자!" 하며 틈만 나면 친구들과 의기투합해서 모이던 리얼 만남과는 확연히 달랐다.

고향땅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라는 느낌이 덜 들게 해 주었던 고마운 친구들...

그들과 제대로 못 만난 지도 1년이 되어 간다 간간히 주고받는 사진들과 톡 속에서 우린 정말 다른 세상에 살고 있구나를 실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여전히 병원일을 하느라 정신없을 때가 많고 수많은 사람들을 나는 일상을 살고 있지만 동료들... 환자들.. 보호자들.. 과의 병원일 에서 한국요리강습을 할 때 매번 받게 되던 가슴 벅찬 보람과 자연치유사 과정이라는 새로운 것을 배울 때처럼 일렁이는 설렘을 찾기는 쉽지 .

또 그 만남 가운데에서 친구들과 주고받던 생동감 있는 기쁨과 에너지를 기대할 수도 없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은 나도 모르게 코로나 블루 까지는 아니어도 허무하고 외로운 감정들이 바위에 부딪치며 하얀 포말을 얹고 다가오는 파도처럼 밀려들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내게 가장 위로가 되는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혼자 할 수 있는 글쓰기 다.


글쓰기는 연필로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까맣고 납작한 글자 들로 하얀 종이 위를 빼곡히 채우던..

사진을 넣어 가며 노트북 자판을 두들겨 브런치에 글을 쓰던 각기 다른 색과 모양새를 지녔을 뿐 나에서 시작하고 세상에 머문 다는 것은 같다.


그렇게 남겨진 글 안에서 나는...

마스크 없이 가족여행 갔던 그 추억들을 만나기도 하고..

친구들과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실 나중을 그려 보기 도 다.


글쓰기는 때로 내게 이런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어느 해 여름 모래알 반짝이는 바닷가에서 아이들은 모래로 열심히 무언가를 만든다.

보기에 그것이 삐뚤빼뚤 성 같지도 집 같지도 않은 모양을 띤다 해도 아이들은 열과 성을 다해 만든다. 어느 순간 그렇게 열심히 만든 로봇의 요새인 모래성이 하얀 파도에 휩쓸려 아스라이 사라져 버린다 해도 모래 가득 뭍은 손으로 해맑은 웃음 머금으며 세상에서 젤루 멋진 작품을 내어 놓은 작은 예술가가 된 것처럼 말이다.


나는 글을 쓸 때 종종 그 바닷가에 작은 예술가가 되고 싶어 진다.

특별하지 않은 어제도 별다를 것 없는 오늘도

모래알 뭍은 손으로 만들어낸 아이들의 성처럼 그 순간만큼은 반짝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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