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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ug 16. 2021

나무는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는다.

무엇이든 꾸준히 급하지 않게


독일에서는 오래된 집 들 만큼이나 나이가 있어 보이는 아름드리 고목들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동네를 산책하다 만난 잎이 무성한 가로수들도 거닐던 공원 안의 숲을 이룬 나무들도 저 하늘에 맞닿을 듯 높고 길게 가지를 뻗으며 수천번의 시곗바늘이 돌아든 시간 속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제도 그제도 그리고 수백 년 전에도 이 자리에 서 있었을 나무들도 언제나 같은 모습은 아녔을 것이다.

나는 그런 나무들을 볼 때마다 이런 독일 속담이 떠오르고는 한다.

나무는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는다’

저 나무들은 얼마나 많은 날의 바람과 햇빛 그리고 비와 눈을 만나며 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까?


지금은 자동차와 전차가 다니는 길가에 위풍당당 서 있는 두 사람이 팔 벌려도 넘쳐 나게 큰 나무들도 마차가 다니던 그 옛날 에는 분명 작고 여린 나무였을 것이다.

그 작은 나무들은 한해 한해 꾸준히 자라기를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자라나며 나무들은 겨울이면 몽글몽글한 하얀 눈을 이고 아이들의 놀이터 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또 그 겨울 지나 푸릇푸릇 새싹이 돋아 나는 이른 봄 이 찾아오면 작은 새들이 둥지를 틀 수 있도록 너른 품을 내어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초록을 뿜어 내는 여름이면 해를 거듭할수록 길고 튼실해진 나뭇가지에 수없이 달린 나뭇잎 들로 한낮의 따끈한 해를 가려 주었을 것이다.

유모차 안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산책하던 엄마는 가던 길을 멈추고 나무 아래서 잠시 숨을 고르기도 했을 것이고 강아지와 산책 나온 사람들에게 나무는 바람에 팔랑이는 나뭇잎의 경쾌한 소리들도 나누어 주었을 것이다.

가을이 오면 노란색으로 벽돌색으로 물들어 가는 나뭇잎들을 하나둘 땅으로 날려 보내며 그 아래 앉아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는 젊은 연인 들 에게 로맨틱한 모멘트를 선사해 주기도 했을 것이다.


그 많은 시간 동안 조금씩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되어 갔을 아름드리나무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나의 글쓰기가 떠올랐다.

평소에는 일하느라 조각 시간 밖에는 글쓰기에 낼 시간이 없었다. 거기에 한국과 시차가 있어 나는 대부분 한국시간으로 새벽에 독일시간으로 오후 늦게 글을 써서 던져 놓하고 식구들 저녁 준비를 했다.

서둘러 마무리 한 글들은 맞춤법 검사를 돌렸어도 오타 작렬 과 함께 였고 부족하고 아쉬웠다.

그래서 여름휴가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면 여유로운 시간 안에 글도 제대로 많이 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휴가가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났건만 제대로 된 글들은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에 담겨 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뒤섞여 차례를 기다리며 자꾸 마음을 급하게 했다.

요 이야기 쓰다 말고 다른 글로 넘어가고 그거 쓰다 또 다른 것이 생각나고는 했다.

시간이 많다고 글이 쭉쭉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나무 들을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이라도 천천히 하면 된다고.. 뭐든 그렇게 나무가 자라나듯 말이다.


블로그를 시작으로 브런치까지 인터넷에서 독일 일상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8년이 되었다.

그 시간 동안 여드름 송송 나던 고등학생 큰아들은 대학을 졸업했고 까칠한 사춘기를 보내던 딸내미는 서글서글 성격 좋은 대학생이 되었으며 유치원을 다니던 귀요미 막내는 아빠 만한 키의 무 서븐 중2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선물처럼 온 아기 강아지 나리는 아직도 말 안 듣는 성견이 되었다.

그 시간 들을 함께 했던 나의 글 들도 아이들 자란 만큼은 아니지만 자라고 있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저 나무들처럼 조금씩 눈에 띄지 않게 나도 모르는 사이 내 글도 한 뼘쯤은 자라 있을지 모른다.

한결같이 그 자리에 서서 자라기를 멈추지 않았을 나무들처럼 나도 글쓰기를 계속해서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나는 여러 곳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만큼 다양한 것을 시도하다 쉽게 그만두고는 했다.아이 셋을 키우며 여러 주의 도시 들로 이사를 다닌 덕분에 그때마다 끝까지 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친절한 핑곗거리가 늘어나고는 했다.

그러나 왜 인지 글쓰기만큼은 들쑥날쑥 해도 여전히 놓지 않고 있다.

그 시간 동안 특별히 눈에 띄는 성과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오늘도 어느새 글을 쓰고 있다.

노트북이 고장 나서 핸디로 한 자 한 자 독수리 타법으로 꾸욱 꾸욱 눌러서 손가락이 저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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