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창 나이 일 때 남자와 여자가 만나 연애를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 곳에 따라 조심조심 비밀 연애를 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연예인을 비롯한 공인 들이 그렇고 대체로 비슷한 지역에 몰려 살며 소문도 무성했던 응답 하라 시절 독일 유학생들이 그러했다.
그 당시 해외 유학생 사회는 어디나 비슷했겠지만 독일의 한국 유학생 사회가 좁다(전공이 같은 경우 몇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을 찾을 수도 있었다) 보니 많은 것이 조심스러운 때였다.
특히나 연애에 관한 소문은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에도 실시간으로 돌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무성한 소문들 중에 정말 인 것도 있었고, 보태 지거나 와전된 것도 있었으며
얼토당토않은 것들 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게 무엇이든 간에 본인이 소문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청춘 남녀들이 비밀 연애를 했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지금은 우리 아이들 또래의 학생들이 독일로 유학을 나오고 있으니 세대도 교체가 되었다. 더욱이 인터넷과 핸디가 날로 발전하고 있는 디지털 시대다. 당연히 아날로그 시대와 여러 가지 상황이 달라져 있다. 그러니 유학생들의 연애도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현실감은 조금 떨어지지만 유학생 들의 응답하라 버전으로 그 시절을 살짝 엿보자.
그 응답하라 시절 유학생 사회에서는 비밀 연애를 하는 커플들이
공개 연애 커플보다 훨씬 많았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지금의 인터넷보다 빠르던 입에서 입으로 전해 지던 카더라 통신 소문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남녀 단둘 이 독일의 학생 식당인 멘자에서 밥을 먹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치자, 그리고 언젠가 다시 대학 캠퍼스 어딘가 에서 또 그 둘의 모습을 포착하게 된다 그러면 바로 실시간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하는 거다
어떻게? 바로 요렇게...
"어머, 쟤네 사귀나 봐?" 그 어머 사귀나 봐 가 한 다리 건너 가면 "얘기 들었어? 쟤랑 그 애랑 사귄데"로 되고, 그 후로는 여기저기로 실시간 검색어보다 더 빠르게 퍼져 갔다.
그렇게 한 바퀴 돌고 나면 당사자 들한테는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이 생겨 나고는 했다
"축한 한다 너네 결혼한다며?"
그러니 남녀가 앞으로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연애를 모두 가 알게 하고 싶지가
않았던 거다.
왜 그런 말 있지 않은가? 결혼식장 손 잡고 들어가 봐야 안다고 그런 부담 속에
어느 커플은 일명 " 첩보 영화 커플" 나중에 둘이 한국 가서 결혼하고 올 때까지
주변 그 누구도 그 둘 의 연애 사실을 몰랐다
각자 버스를 타고 다른 마을까지 가서 만나고 시치미 뚝 떼고 있었던 이 커플은
007 작전 수행을 방불케 하는 치밀한 계획으로 첩보 작전을 수행하듯 연애를 했다.
평소에는 전혀 내색도 하지 않고 말이다.
또 다른 커플은 한 동안 비밀 연애를 잘 유지해 오며 위의 커플처럼 다른 동네로 놀러 다니며 연애하다가 하필이면 몇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의 집 담장 밑에서 영화 찍다 딱 걸려 버렸다.
안타깝게 들키고 만 "어머 웬일이니~! "커플
두 커플 모두 지금은 한국에서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있다.
그런데...
막상 비밀 연애를 하던 그들은 손에 땀을 쥐며 힘들게 연애를 했겠지만
연애하다 들켜서 소문나도 좋사오니 제발, 연애 좀 해 봤으면 좋겠다 하는 솔로 부대? 들
또한 그 시절에는 수월찮게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연령대 남녀 구성비 상관없이 모여 있던 유학생 사회 안에서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달라서 원활한 사랑의 작대기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어느 날 하늘에서 한국 남자들이 또는 한국 여자들이 비처럼 쏟아져 주기를
기다리던 안쓰러운? 솔로들도 더러 있었다.
그 시절에 솔로 부대 중에서도 지금은 한국에서 시집, 장가가서 아들 딸 낳고
재미나게 잘 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 들을 간간이 전해 듣는다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그 당시 진정한 소문의 핵심은 보란 듯이 우리 연애해요 라고 공개하고 다니던 공개 커플 들의 몫이었다. 우리 부부도 그중에 하나였다. 어딜 가나 소문에 중심에
있었고 누구는 쟤들이 결혼까지 깔까? 못 갈까?를 놓고 자기들 끼 내기를 했다는
소리도 들었다.
뭐 그 정도 관심은 애교 다. 남편과 나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그 작자 미상의 시나리오는 줄거리가 제법 탄탄했으며
학창 시절 돌려 보던 만화책처럼 그 당시 우리가 살고 있던 동네 유학생 사회에서
전설처럼 두루 회자되고 있었다.
그 황당무계한 소문의 시나리오 전말을 우리가 접하게 된 것은 그 후 몇 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결혼해서 신혼 때부터 큰 아이를 낳고 한 동안을 살았던 부부 기숙사에서 우리는 그 당시
한국 가정이 많이 살고 있던 가족 기숙사로 이사를 했다.(그 당시 그 기숙사의 20가구 중 9가구가
한국 유학생 가정이었다.).
일명 소문 발전소였던 가족 기숙사에서 어느 날 이웃집 아주머니가
"사실 나 자기한테 그동안 참 미안했었어"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이미 그때 초등학생 자녀를 두고 계시던 그분과는 나이 차이도 많았고 그 동네로 이사 간지 얼마 안되어 을 때라 인사드렸던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한 기억이 없었던 나는 깜짝 놀라며 " 아니 왜요?"
하고 물었다.
내 질문에 아주머니는 웃으시면서 "나는 자기가 일본 여자인 줄 알았어,
그래서 말이 안 통할 까 봐 만나면 인사만 하고 다녔지 "
라고 대답하시는 거다.
그 말씀에 나는 나도 모르게 웃으며 "제가 한국말하는 거 들으셨 않아요?" 했다.
"일본 여자가 부지런하게 한국말 몇 마디를 배웠다고 들었지 "라며
또, 빙그레 웃으셨다. 그날 나는 아주머니 가 그전까지 나를 일본 여자라고 철썩 같이 믿을 수
밖에 없었던 소문의 내용을 듣고 한참을 배꼽 잡고 함께 웃었다.
그 소문의 내용은 이랬다. 내가 일본 여자이고 우리 아버지가 야쿠자의 보스라서
우리가 결혼식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두 번을 하고 왔으며 한국말 도 몇 마디 배워서
인사 정도는 할 수 있는 예의 바른 일본댁이고 남편 과는 독일어로 이야기하고 아기와 있을 때는
주로 일본어로 이야기한다는 거다.
제법 구체적이며 그럴싸하지 않은가?
피부가 하얀 편이고 눈이 처졌으며 잘 웃는 편인 처자가 구강 구조가 일본스럽게 뻐드렁 네가 있어
혹시 조상 중에 일본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라는 누군가의 추측으로 출발된 이 엉뚱한 소문은
어느 순간 경주 김 씨인 나를 일본 사람으로 만들었고 일본말 이라고는 아리가토 밖에 모르며
한국말로 분간 수백 마디를 쏟아 내는 토종 수다쟁이 한국 아줌마를 한국말 달랑? 몇 마디
배워서 할 줄 아는 일본댁으로 변신시켰다.
거기에 드라마틱한 내용을 더 추가해 평생 칼 이라고는 과일 깎는 칼 외에는 손에 들어 본 적 없는
우리 아버지를 사시미 칼쯤이야 가뿐할 야쿠자 보스로 등극? 시키고 남편을 그런 장인이 무서버
일본에서 한번, 한국에서 한번 두 번의 결혼식을 올린 로맨틱 코미디 영화 주인공을 만들어
놓았다.
이 구체적이고도 황당한 소문의 전말은 그것이 만약 다른 사람의 이야기였다면
나도 고개를 주억 거릴 만큼 상세하고 그럴듯했다.
그 당시 유학생 부부이던 우리가 아기 키우며 둘이 공부하느라 절절매며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다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이런 재미난 이야기 들을 우리 몰래 나누고 있을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았던 그 시절 세월이 지나서 생각해 보니 그때는 그래도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따뜻한 정이 오가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게 가끔은 지나쳐서 문제였지만 말이다.
문득...
그때의 그리운 시간 들과 보고 싶은 얼굴 들을 하나 둘 떠 올려 보게 되는
가을이 깊어 가는 주말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