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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Oct 20. 2016

독일 사우나의 정석


독일은 지금 가을 방학 중이다. 주마다 방학 시작 일자가 겹치는 주도 있고 먼저 방학이 끝나는 주들도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독일의 중부 헤센 주는 이번 주부터 다음 주 까지 2주간 가을 방학이다.

큰 아이 둘은 한 녀석은 멀리 교환학생으로 가 있 또 한 녀석은 스케줄이 빡빡하고

달랑 남은 막내와 3일간 휴가를 얻은 남편.. 이렇게 두 남자와

가장 착한 가격으로 방학인데... 어디론가 놀러 갈 곳을 물색했다.  


그래서 선택된 곳은 우리 집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바트 엠스 탈이라는 시골 마을 온천 수영장이었다.

전부터 가지고 있던 쿠폰 책에 온천 사우나 콤비 쿠폰이 우리에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시골길을 달려갈 때부터 남편은 혹시나 우리가 실망할까 싶어

"거기 되게 작데 근데 그래도 이름은 온천 게다가 사우나 콤비 쿠폰 이잖아"

란다.

며칠 째 주룩주룩 비 오는 찜질방이 저절로 그리워지는 찌뿌둥한 독일 날씨에 사우나 라도 

가고 싶다고 노래를 하던 남편은 콤비 쿠폰이라는 것이 젤루 매력 적이었나 보다.

그러나 독일의 사우나는 간혹 가다 여성 전용 구간이 따로 있는 곳이나 또는 여성 들만 하는 날이 따로 정해져 있는 곳이 아니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훌훌 벗고 태초의 모습으로 들어가셔야

한다.

그래서 내가 "사우나를 어떻게 들어가 거긴 여성 전용 구간도 없다며 혹시 아는 사람들이라도 만나면 어떻게?" 했더니 

울 남편 뭔가 대단 한 발견이라도 하신 듯 으스대며 "걱정 마 온천 사우나 콤비라 바로 옆에

수영장 딸려 있고 오늘처럼 평일에 그 시골에 누가 그렇게 많이 오겠냐?

거기다 그 동네 까지는 한국 사람들은 몰라서도 못 올 거야.

그냥 안수영 복 입고 수건 두르고 살짝 들어갔다 나오자 어차피 막내 랑 사우나 오래 하지 도 못해 "

"그으래? 그렇단 말이지...!"

우리는 우리끼리 만의 시간을 기대하며 시골길을 바람 같이 달려 온천 수영장에 도착했다.

  


바트 엠스 탈에 도착하니 정말 작은 시골 마을 논밭과 저 푸른 초원 사이에 온천 수영장

하나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주변에 온 통 소 키운다. 음매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수영장 입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몇 분 만이 앉아 계실 뿐이었다. 

그러면 사우나에도 몇 명 없겠네... 잘하면 오늘 여기 사우나

우리 가족끼리 전세 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에 들떠

우리는 걸음도 가벼이 안으로 들어갔다.

잽싸게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007 작전이라도 수행하듯 빠른 속도로

이쪽저쪽 고개를 돌리며 눈동자를 전방향으로 돌려

사람 없음을 확인한 후 스르륵 스며 들어간 통나무 사우나

첫 번째 칸 안에는 정말 무도 없었다.


으흐흐 오늘 우리 식구끼리만 사우나하겠다 라는 생각에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신나게 들어간 사우나는 후끈하다 못해 뜨거워도 너무 뜨거웠다.

한 5분쯤 됐으려나 울 막내는 자기는 이대로 스테이크가 될 수 없다며

밖으로 뛰쳐나가고 한 10분쯤 지났으려나 나는 뜨겁기도 하고 밖으로 나간 아이가 혼자 괜찮은지

궁금해서 핑계 김에 "여보야 막내 잘 있나 보고 올게 "라며 남편을 사우나 안에 혼자 두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어휴 더워 아주 그냥 익겠네 익어" 손으로 연신 부채질을 해가며 한쪽 구석 의자에

핸디 붙들고 열심히 오락 중이신 막내 옆으로 다가가 앉으며 열을 식히고 있을 때였다.

한쪽 옆으로 허연 물체가 슈슈슉 하고 지나갔다 할아버지였다. 물론 헐벗고? 계셨다.

안경을 벗고 있어서 보이는 건 별로 없었지만 사람을 분간할 수는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옆으로 웬 동양 아주머니 가 샤샤샥 하고 지나가셨다.

"아따 저 아줌마 태초의 모습으로 용감하시네!"같은 동양 여성 분이라 느낌이

새로웠다. 조용한 사우나장 안에서 심심해진 나는 막내에게 이제 우리 수영장으로 수영 갈까?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다.  



튼실한 직원 아주머니가 저벅저벅 다가와서는 "저기 손님 여기서부터는

수영복, 수건 다 벗으셔야 돼요"라는 게 아닌가?

오메 민망한 거..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간신히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 네.. 알아요 안 그래도 꼬마가 사우나 안에 오래 있을 수 없어서 지금 수영장으로 가려던 중이었어요 "

그랬더니 이 직원 아줌니 나에게 썩소를 날리시며 "수영복 입고 수건까지 덮고 앉아

계시면 벗고 돌아다니던 다른 분들이 놀랍니다 "

라는 거다

오매야.. 내가 뭐 수건 안에 무기 들었니? 나는 졸지에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가 되어 버렸다. 부랴 부랴 막내를 챙겨 아직도 꿋꿋하게 수영복 입고 혼자 사우나 안에 앉아있던 남편에게

암호 뻐꾸기를 날리 듯 나직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한국어로 이야기했다. 

 "여보야 여기서 수영복 입고 있음 안된데 우리 수영장으로 가자 "


그 순간.. 남편이 사우나에서 나오는 것과 동시에 아까 그 씩씩한 동양 여성 분 이 통나무 사우나

안으로 여기서 뭐하고 섰는겨? 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쓰윽 한번 스캔하시고

들어가셨다.   

그렇게 사우나 문 앞에서 꿋꿋하게 수영복에 수건까지 말고 있던 우리 일당? 은 그와 중에도

수영장으로 가려다 말고 사우나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것을 보고 문을 닫아 주고 가려고 했다

아... 이 참을 수 없는 오지랖....


막내가 문을 한번 쾅 닫았는데 이럴 수가...

수영복 입고 사우나하려다 딱 걸려서 가뜩이나 서 있기 뻘쭘 한데  이 눔의 사우나 문짝도 도와주지를 않는다.

살며시 삐그덕 소리를 내며 닫히던 문은 다시 열리고 막내 가 또 한 번 닫았는데 다시 삐그덕 

안 되겠다 싶어 내가 닫으려는데 안에서 불현듯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전방 500미터에서도 귀에 쏙 박히듯 잘 들려오는 한국말로...

"아가, 더 세게 닫아야지 쾅.."

오마나 놀래라 아까 그 용감한 시민은 한국 여성 분이었다.

세상에나 여적까지 우리의 시추에이션과 우리끼리 한국말로 구시렁대던 것

까지 모두 라이브로 보셨겠네.... 이런...

나는 너무 놀라서 허둥대며 있는 힘껏 사우나 문을 그대로 콱 닫아 버렸다.

그렇게 나는 얼떨결에, 이름 모를 한국분 에겐 남의 동네에서 수영복 입고 사우나로 잠입? 하려다

걸린 황당 수영복녀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그날 잠깐이지만 따뜻한 사우나 덕분에 온몸이 노곤해지기도 했지만 민망함 덕분에 얼굴이 빨개지며 혈액순환이 기가 막히게 원활해진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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