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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ug 03. 2021

베를린 에서 아침을...

빵집은 워디 있는겨?


일지감치 눈이 떠졌다. 남편도 막 잠에서 깬 듯했다. 조금은 잠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지금 몇 시야?" 하고.. 나는 바로 자기 옆에 같이 자빠져 계신 핸디를 두고 충전하기 위해 소파 옆에 핸디를 꽃아 둔 내게 굳이 시간을 묻는 남편에게 45도 각도에 위치한 쉑쉬한 흰 눈동자를 번득여 주고는 대답해 줬다."5시!"

제법 이른 시간이다. 그러나 시간을 확인하느라 핸디를 가지러 일어났더니 잠은 완전히 깼다. 여름이라 일찍 동이 트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집에서였다면 아이유의 가을 아침이라는 노래에 나오는 가사처럼 창가에선 작은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올 시간 있었다.

베를린의 딸내미 집에서는 그 소리 대신 옆집 인지 윗집인지 에서 들려오는 문을 여닫는 소리, 멀리 기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열린 창문 틈을 타고 귓가로 실려 오고 있었다.

그 낯선 소리들 못지않게 침대의 감촉도 베개의 높이도 익숙지 않아 뒤척였다.

집이 아닌 곳에서는 왠지 일찍 깨게 되는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와 는 처음으로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온 나리도 깊은 잠을 이루기 어려웠던 걸까?

나리는 밤새 이방 저 방 복도를 톡톡톡 작은 발자국 소리를 내며 오갔다.


우리는 일찍 일어난 김에 나리를 데리고 산책을 하다가 아침 빵을 사 오기로 했다.

딸내미의 주방에 뮤슬리니 콘 프레이 크니 토스 빵이니 다 있었지만 혼자 토스트 빵에 뭐하나 발라 후딱 먹는 것으로 대충 아침을 때웠을 딸내미에게 오래간만에 빵집에서 갗구워낸 빵을 사다 골고루 먹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전날 집에서부터 몇 시간 동안 차에 싣려 오느라 피곤했을 막내도 가족들 온다고 날도 더운데 아침부터 청소하고 저녁 준비하고 바빴을 딸내미도 한밤중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깨지 않도록 발소리도 조심히 하고 집 열쇠 챙겨서 나리를 보쌈해 오듯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우리 소리에 이웃들 깰까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오고 나니 아침 운동이 따로 없었다.

아이고 다리야 무릎이야 요새 지은 5층 건물에 뭔 놈의 엘리베이터가 없냐며 투덜거리고는 베를린의 아파트 단지를 누비기 시작했다.

색색의 아파트 건물은 오가는 사람 하나 없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것처럼 조용했다.

우리는 길 건너 지난밤 딸내미의 안내로 가 보았던 강가를 끼고 있는 공원으로 들어갔다.

공원 안은 강가를 거닐며 또는 삼삼오오 강변에 나와 앉아 있던 사람들로 북적이던 그전날 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아직 강아지들 산책 나올 시간이 아녀서 그런지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없었다

공원 벤치 위에는 꿈이 라도 꾸시는지 이불처럼 덮고 있는 화려한 옷들 사이로 빠져나온 발을 꿈틀꿈틀 하며 자고 있는 아저씨를 지나 지금부터 마시려는지 아님 엊저녁부터 계속 마시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젊은이 일당? 이 보였다.

코와 귀에 탬버린을 달은 듯 움직일 때마다 열심히 울려대는 자잘한 피어싱을 하고 있는 새카만 머리의 까만 옷을 입고 보라색 립스틱을 차별 쳐 발한 젊은 처자와 팔뚝을 종이 삼아 그림을 그려댄 톱처럼 생긴 머리칼에 젊은 남정네 그리고 그런 색은 어디 가면 구하니?라고 묻고 싶은 광 핑크빛의 머리를 하고 빨간색 속치마 같이 하늘하늘하게 생긴 윗도리를 입고 술병 하나 들고 땅바닥에 퍼질러 앉아 서는 뭣이 그리 재미난 지 깔깔 거리며 웃고 있는 처자와 그 일당? 에게는 왠지 이 동네 빵가게 어딨니?라고 물어 서는 안될 것 같았다.


평소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 하지만 범상치 않은 모습과 이른 아침부터 손에 들린 술병이 그들을 방해해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나리에게도 평소 보던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달리 보였던지 경계하려고 뻗대는 나리를 달래서 우리는 조용히 그러나 빠른 걸음으로 그들을 지나쳤다. 존 거 절대 아니다.


그래, 우리가 독일 산지가 몇 년인데.. 아무리 남의 동네라도 빵가게 하나 못 찾겠어하고는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따끈하게 나와 있을 종류별 빵들을 생각하며 공원을 벗어나 큰길을 걸었다.

그러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슈퍼 하나가 모습을 드러 냈다. 보통 우리 동네 에는 저 슈퍼 안에 빵가게가 하나씩은 따로 들어 가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기 슈퍼 안에는 빵가게가 따로 없었다.



우리는 조금 더 걸어 보기로 했다. 한참을 걸어 나가다 보니 반짝이는 갈색의 라브라 도어를 데리고 산책 중인 사람이 하나 보였다.

아싸 빙고! 이 동네 사는 사람일 테니 빵가게가 어딘지 물어보면 되겠다.

갈색의 라브라 도어와 나리가 인사를 나누고 있는 동안 나는 남편에 옆구리를 찌르며 빵가게 어딘지 물어보라고 했다.

그런데 남편은 원래 낯선 곳에서 길을 몰라도 남에게 묻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에게는 길 찾는 감이 있다나 뭐라나..

나는 시큰둥해하는 남편을 두고 그 남정네에게 "그런데 이아이는 몇 살이에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6개월 이란다. 우리 나리는 세 살인데 6개월짜리 아기랑 신나게 놀고 있다.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나는 우리 나리는 세 살에 여자 아이이고 원래는 좀 내숭도 떨고 조용한데 잘 맞는 친구를 만나 놀 때는 저런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그 남정네에게 다시 물었다 "그런데 여기 빵가게가 근처 어디에 있나요?"라고..


순간 이 젊은 남정네가 주춤주춤하더니 혹시 "영어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어요 독일어가 짧아서요" 라며 미끄러지게 빠른 영어로 솰라 되는 게 아닌가?

이런 된장 너 좀 전에 독일어 했잖아요. 갑자기 영어로 훅 들어오니 당황했다. 몹시..

아마도 사람들이 제일 많이 던 질문이어서 강아지 몇 살 이냐고 물었던 독일어는 알아들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내가 강아지 나이를 물었을 때 빼고는 내가 말하는 내내 고개만 끄덕이고 연신 웃으며 말이 없더라니... 그럼 못 알아듣는데 나 혼자 이야기한 거임?

그래 여긴 우리 동네가 아니었지.. 국제 도시인만큼 영어만 해도 살만 했던 게지....

간만 해 하는 영어가 몸살을 하며 버벅버벅 하는 동안 남편이 영어로 이 동네 빵가게 어딨는지 아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런데 영어로 물어봐 달라더니 아는 게 별로 없어 보였다.

저쪽 길 맨 끝쪽으로 가면 커피도 마실수 있고 메이비 빵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젊은이가 가리키는 곳은 아지랑이 가 피어오르게 생긴 저 멀리 였다.

헐 메이비하고 갔다가 없으면 메이비 땡큐 하며 다시 와 야 하니?

우리는 그놈의 메이비알려준 길과는 반대쪽 큰길을 따라 걸었다.


고층 건물들이 즐비한 베를린의 큰길은 그 넓이도 달랐고 홈그라운드인 우리 동네 와는 달리 어디에 뭣이 있는지 잘 모르는 촌사람들인 우리는 빵가게를 찾기 위해 갈림길에서 길을 선택해야 했다.

길가다 하나씩 만나 지리라 생각했던 빵집은 우리의 예상을 뒤엎고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간혹 보이는 피자 집에서는 해장 커피인지 모닝커피인지 초췌한 모습의 젊은이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는 것 이 보였다.

암만 봐도 갗구워낸 빵이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뭐여? 이 동네 사람들은 빵을 빵집이 아닌 슈퍼에서만 사다 먹나? 아님 집에서 각자 반죽 쳐서 만들어 먹나? 왜 빵집이 안 보여?

그때 남편이 우리가 서 있던 곳에서 한참 위쪽인 지하철 역 근처로 가 보자고 했다.

그쪽 에는 분명히 빵집이 많을 것이라며 말이다.

지하철 역으로 가는 대로변으로는 위아래 할 것 없이 쭉쭉 뻗어 있는 길 따라 고층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아마도 평일이었다면 그 건물 안에는 수많은 직장인들이 출근을 할 시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남편은 저기 봐봐 저 많은 건물 중에 빵집 하나 없겠어 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진짜 그 줄로 빵집이 하나도 없었다.

간간이 파스타집, 케밥집, 약국 등이 긴 했지만 빵집은 없었고 가는 길목 내내 아직 술이 덜 깬 것 같아 보이는 인터내셔널 한 사람들을 지나쳐야 했다.


남편의 호언장담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르는 땀과 함께 여기저기 날아다니던 비둘기 떼와 그리고 인터내셔널 한 꽐라 들과 삥?을 뜯으려는 사람들로 인해 혀 갔다.

그때 아직도 술이 덜 깬 듯 보이는 얼굴이 벌건 젊은 처자가 다가와 "혹시 20센트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이미 몇 차례 지껄여 본 적이 있던 터라 랩처럼 입에 밴 "아니요 없습니다!"를 랩 하듯 뱉어냈다.

남편에게 "그래도 이 동네는 양심 적이네 우리 동네는 1유로 있냐던데 여긴 20센트네" 라며 웃었다.


아무리 걸어도 빵집은 안 보이고 비둘기 떼와 술주정뱅이 그지들만 만나게 되니 이 길에 빵집이 줄줄이 있을 것이라 호언장담 하던  남편이 미안해하며 이제 집에 가자 를 외쳤다.

그러게 호언 이만 부르고 장담이는 부르지 말지 그랬니 남편.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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