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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l 18. 2021

일요일 아침의 동네 산책

남의 집 정원 구경 하기


지하실에 들어찬 물을 퍼내야 해서 일요일 산책은 공원이 아닌 동네 한 바퀴로 정했다.

빵집을 향해 가는 주택가 골목길에 들어설 때였다.

집집마다 어여쁜 꽃들이 탐스럽게도 피어나 있었다. 이 집에 피어난 색색의 장미도 저 집에 피어난 수국 들도 눈을 떼기 힘들게 예쁘다.

걷다가 꽃구경하느라 멈춰 서면 우리 집 멍뭉이 나리도 어느새 같이 멈춰서 킁킁 거리며 쳐다본다.

그러고 보면 나리는 풀은 가끔 뜯어먹었어도 꽃은 한 번도 뜯은 적이 없다. 지가 봐도 예쁜가?

"나리 네가 봐도 예뻐?"하고 물으니 뭔 말인지 알아듣는 것처럼 꼬리를 살랑인다. 꽃은 이렇게 사람의 마음도 동물의 마음도 말랑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한겨울을 제외한 일 년 내내 꽃이 피고 지고 하는 남의 집 정원을 보니 잡초 무성한 우리 집 정원에도 뭔가를 심어야지 하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독일의 가정집들이 모여 있는 주택가는 높은 담장이 아니라 나지막한 울타리로 되어 있다.

이렇게 하얀색, 갈색의 나무로 되어 있는 작은 울타리부터 철제로 되어 있는 낮은 울타리들 또는 초록의 나무들을 쪼로미 심어 울타리처럼 사용하는 집들도 있다.

길 지나다니다 보면 남의 집 마당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특히나 이 동네는 대체로 수십 년째 대대로 살고 있는 집들이 많다.

그렇게 서로서로 빤히 아는 집들이다 보니 어느 때는 시골 마을 같기도 하다.

좋게 말해 이웃사촌이 아니라 이웃 친척 같은 분위기라고나 할까?

때로는 그 알은체와 관심이 성가시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이 비대면이 요구되는 외로운 시대를 살며 이런 이웃들이 있어 서로 버틸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위쪽에 사시는 우리의 친절한 이웃 내 글에도 종종 등장 하시는 슈발름 할아버지 네는 부모님 때부터 이 동네에서 몇십 년째 살고 계시는 터줏대감이다.

특히나 슈발름 할머니의 삼촌이 강물이 흐르던 이 동네에 말라붙은 물자리를 메우고 처음 집을 지어 주택가를 일군 1세대 중에 한 명이다.

그 집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다.

고로 우리 집을 기준으로 양쪽 줄로 오르막길 위쪽 집들이 대부분 100년 넘은 집들이다.

건너편에 하네로아 할머니네도 근처 사시 다가 부모님 집을 물려받고 다시 이사 들어온 분들이다. 그 집 마당에 여름이면 주렁주렁 열리는 아름드리 체리나무가 할머니 어릴 적에 심은 나무라 했다.  

이 체리 나무도 나보다는 연배가 더 될지 모른다.


우리가 처음 이동네로 이사 들어왔던 때가 떠오른다. 슈발름 할아버지 네와 하네로아 할머니네가 환영의 인사를 하며 이 동네와 우리 집의 역사를 쭈욱 풀어놓으셨더랬다. 그 일이 벌써 만으로 7년이 되어 간다.

우리 집은 원래 가정집이 아니라 이 동네의 독일 맛집으로 유명하던 식당이었다. 독일식 스테이크가 먹고 싶으면 그 집에 가라는 말도 있었다고 했다.

어쨌거나 우리 동네 사람들 중에 예전 우리 집이 식당일 때 다녀 가지 않은 사람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거기다가 어릴 적에 여기서 생애 처음 감자튀김을 맛보았네.... 해마다 초등학교 동창회를 했었네... 하는 추억의 장소이자 만남의 장소였다.

그래서 우리가 처음 이사 들어왔을 때..

우리 집 울타리에 매달려 여긴 뭐 심으면 좋겠고 저긴 무엇을 심으면 좋을 텐데 하며 자기들끼리 플랜을 해주고 있던 이웃집 할매,할배 들이 많으셨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남의 집 울타리 부여잡고 저분들이 뭐 하나 했는데...

이제는 남의 집 정원 쳐다보며 이 집 초롱꽃 이쁘네 저 집 호박 탐스럽게 잘 컸네 하고 있으니 우리도 이 동네 사람 다 되었나 보다.


그렇게 설렁설렁 골목길을 올라가다 보면 칼라네 집 골목을 지나서 막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로 올라가는 길목에 공터 비슷하게 생긴 넓은 주차장이 나온다.

간간히 이주차장에 이웃들의 캠핑카 들이 주차되어 있고는 한다 오늘처럼...

앞쪽에 있는 카누를 얹은 큰 캠핑카와 조금 작아 보이지만 다부지게 생긴 캠핑카 둘 중에 어느 것이 좋은지 남편에게 물었다.

"자 골라 골라 내 인심 쓴다 어떤 거 할래?"

남편은 망설임 없이 "뒤에 작은 차!" 한다. 남편이 선택한 것은 당연히 뒤쪽에 주차된 작은 캠핑카였다.

뭐든 작고 야무진 것을 좋아라 하는 남편이 아무 생각 없이 덥석 고르게 된 큰 것은 한덩치 하는 마눌과 문제 많은 집뿐이다.

우리는 누가 거저 줄 것도 아닌 남의 집 캠핑카를 두고 이거 하자 저거 하자 하며 인심을 써 댔다. 또 저건 기름도 많이 들고 주차 하기도 힘이 드네 이건 너무 좁아서 온 가족이 차 안에서 움직이려면 서로 몸이 부딪치겠네 어쩌네 하며 한참 동안이나 품평회를 했다.


Hummel 은 일반 벌 Biene 보다 크고 징그럽게 생겼다
여러 마리의 훔멜들이 오가며 윙윙거리는 소리에 나리가 한참을 쳐다보며 저걸 잡아 말아하고 있다.

캠핑카를 지나쳐 빵가게를 가는 길목에서 보라색의 흐드러지게 핀 라벤더가 멋진 향을 풍기며 아름다이 꽃길을 만들고 있었다

남편도 나도 넋을 빼고 우와 이쁘다 하며 감탄을 터뜨렸다.

남편은" 지하실 공사 끝나면 우리도 마당 가득 라벤더 저렇게 심어볼까? 멋지잖아!" 했다. 그 순간 여기저기서 윙윙 거리는 소리와 함께 훔멜들이 보라색 꽃 사이사이에 까만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Hummel 훔멜은 까만 머리에 중간중간 노란 줄이 쳐있는 보통 꿀벌 Biene 보다 더 굵고 새까맣고 살벌하게 보인다.

남편은 "아니야 안 심어도 될 거 같다" 하며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 모습이 하도 웃겨서 마구 웃다가 나도 모르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통크게 내보냈다.

나이가 드니 강약 조절도 잘 안된다.

"뿌웅"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전후 좌우로 돌리며 사전 거리에 사람 없음을 확인했다.

남편은 그 와중에도 사람이 있나 없나를 살피는 용이 주도? 한 나를 보며 기가 차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는 알면서도" 아니 이게 뭔 소리래?"하고 물었다.

나는 길에 남편 외에는 아무도 없었으니 완전범죄 로다 하고는 회심의 미소를 흘리며 사극 버전으로다 이렇게 답했다.

"일요일 아침을 알리는 쌍바위 골의 메아리 옵니다 "

남편은 호탕하게 웃으며 이렇게 맞받아 쳤다.

"그 우렁찬 소리는 예삿 메아리가 아니구나 아마도 저차가 필요할 듯 하구나"

남편이 가리킨 곳에는 폭발물 관리 차량이 얌전이 주차되어 있었다.

그 빨간색에 삐뽀삐뽀 사이렌도 장착한 폭발물 안전 점검 차는 마치 나를 보며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 너야? 방금전에 그터져대던 소리와 유독가스가? 접수 됬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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