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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김중희
Jun 20. 2021
독일 비디오는 원래 빨개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덥다.더우니 여름 이지만 매일 30도를 웃도는 땡볕의 나날은 쉽지 않다.
한낮에 잠깐만 밖에 나갔다 와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것 같다.
올라갈때로 올라간 온도는 저녁이 되어도 식을줄을 모른다.
지난주 폭염 주의보가 내리고 엊그제 아이들 학교가 폭염 때문에 단축수업을 한 것은 당연 했다.
문을 열면 훅하는 열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여기가 어디인가? 진정 독일인가? 그리스 아닌가? 싶게 말이다.
덕분에 한편으로는 돈안들이고 휴양지에 휴가온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더위를 먹었는지 머리가 아프고 순간 멍해 질 때가 많다.
이 무더위를 버티려면 수분 많은 수박을 꼭 먹어 줘야 한다.
비록 한국에서 먹던 빙수와 물냉면은 직접 만들어 먹지 않으면 만나기 어려운 독일이지만 다행히 수박은 많다.
우리는 무등산 수박 처럼 빨갛고 입안에서 사르륵 녹는 달달하고 시원한 수박을 잘라 먹으며 예전일이 떠올라 한참을 웃었다.
그날도 이렇게 더운 여름날 이였다.
아이들도 어리던 그때 우리는 유학생으로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에 살고 있었다.
그당시 우리가 살고 있던 곳은 20가구 가 함께 살았던 빌라형 가족 기숙사 였다.
그중에 한국 가정이 9가구 정도 되었고 그로인해 시골 마을 같은 분위기였다.
니집 내집 없이 아이들은 집집마다 몰려 다니며 놀았고 맛난 한국음식을 만드는 날이면 이집 저집 나누어 먹고는 했다
마치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처럼 말이다
그여름 우리집 에서 몇 집이 모여 수박 잘라 먹으며 영화를 보기로 했다.
그해 우린 큰맘 먹고 독일에서 처음으로 비디오기기를 장만 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인터넷의 발달로 유튜브,넷플릭스 등을 통해 영화도 드라마도 골라 볼수 있지만 인터넷이 없던 그때는 티브이 에서 방영 해주는것 외에는 비디오 테잎으로 볼수 있었다.
뭐든 처음은 서툴지만 기억에 남는 일이 많은 법이다.
아이들은 옹기종기 소파 위아래로 앉아 있고 어른 들은 식탁에 둘러 앉아 있었다.
검정색의 작은책 만한 비디오 테잎이 비디오가게 이름과 영화제목이 써있는 스티커를 신분증 제시 하듯 위로 보이며 비디오 기기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모두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영화가 시작 되기를 고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자....
모두가 입을 모아 물었다.
“왜 화면이 빨개요?”
나도 처음 우리집 비디오로 영화를 보던날 똑같은 질문을 남편에게 했었다.
남편은 마치 떡볶이 국물은 원래 빨갛잖아 라고 이야기 하듯 “독일 비디오는 원래 빨개!”라고 했다.
그말을 철썩 같이 믿은 나는 혼자만 아는 고급 정보를 선심 쓰며 나누어 주듯 진지 하게 이야기 했다.
"독일 비디오는 원래 저렇게 빨갛데요!”
남편은 나 보다 5년 먼저 독일로 유학을 와 있었고 그런 내 눈에 남편은 모르는게 없는 사람이였다
인터넷도 구글 검색도 없던 시절 남편은 내가 뭐든 물어 볼수 있는 말하는 검색창 이였다.
물론 그검색창이 때로 에러가 날수 있다는 것을 아는데 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나의 호언장담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람들 중에 한분인 경상도 아재가 말했다
“에이 그랄리가 있나? 우리집꺼랑 똑같은긴데 내 지금 갖고 올게요”했다.
그말에 나는 갑자기 궁금해 졌다 남의집 비디오의 화면은 어떤 색일지가.....
그날 우리는 우리집 비디오와 똑같은 상표의 남의집 비디오로 빨간색 화면이 아닌 정상적인 색상의 슈퍼맨 영화 를 보았다
우리 비디오 에서는 화면의 색이 전반적으로 빨개서 빨간 옷을 입은듯 보이던 슈퍼맨이 망토와 빤스만 빨갛다는 사실에 나는 망연자실 했고 남편은 괜히 멋적어 헛기침만 해댔다.
알고보니 우리집 비디오는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는 불량품이였던 거다.
다행히 서비스 기간이 남아 있어 그비디오를 판매 했던 전자상가 에서 새것으로 교환을 해 주었다.
만약 그날 다른 이웃들과 영화를 함께 보지 않았다면 그후로도 계속 벌건 화면을 보며 독일건 원래 그래 하고 살았을런지도 모른다.
그날이후 남편이 내게 무언가 확신에 찬 어투로 이야기 할때면 난 언제나 이렇게 묻고는 한다.
“확실해? 설마 또 빨간 비디오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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