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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n 17. 2021

뻑하면 욱하는 여자 뻑하면 울컥 하는 남자

우리 부부의 갱년기 동상이몽


 우리 부부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세 살 터울이다.

남편은 걸핏하면 " 까불지 마 너 유치원 다닐 때 나는 초등학생이었어"

라고 잘 난 척을 하지만 살다 보면 "그 삼 년 오데로 갔나 오데가?" 할 때가 많다.

더군다나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갱년기가 기어 들어와 요즘은 부부가 나란히 갱년기를 만나고 있으니 "니나 내나!"된 지 한참이다.


 갱년기 증상이라 하면 주로 여성의 완경과 함께 찾아온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의 감소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나타나는 수많은 증상들을 이야기할 때가 많다.

 그런데 남성도 갱년기가 온다 같은 이유인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감소로 여성 못지않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다양한 갱년기 증상을 만난다.



뻑 하면 욱 하는 여자
뻑 하면 울컥하는 남자

갱년기가 시작되고 나는 수시로 욱 할 때가 많다. 원래도 성격이 그리 좋은 편은 아녔지만 요즘은 날도 더운데 별것 아닌 일로 속에서 불길이 치솟을 때가 있다.

엊그제였다 오전 진료 후 점심시간에 막내를 학교에서 픽업하기 전이었다. 세워둔 자동차를 타니 햇볕 받은 자동차 안 온도는 36도가 넘어가고 있었다. 찜질방도 아니고 이건 덥다 못해 정신이 몽롱할 지경이었다.


남편은 아직 막내를 학교로 데리러 가기에 시간이 조금 이르니 시원한 아이스커피 라도 사서 마시며 가자고 했다.

우리는 막내의 학교와 우리 병원 사이 중간쯤에 있는 쇼핑몰로 갔다.

원래는 아이스커피 한잔 사러 갔던 쇼핑몰 안에서 중국식 누들과 볶음밥 냄새가 풍겨 오고 있었다.

남편은 우리는 어제 먹던 김치찌개 먹고 막내는 중국식 치킨과 누들을 사 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보아하니 자기가 좋아하는 새우 들어간 중국식 볶음밥이 먹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그 두 가지를 주문하고 포장이 될 때까지 서 있으려는데...

남편이 내게 여기서 잠깐 기다렸다 포장된 음식 받고 있으라며 그막간을 이용해서 안경점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주문한 음식이 포장되어 받을 때까지 남편은 오지 않았고 나는 남편이 평소 가는 안경점 쪽으로 음식 담긴 봉투를 들고 갔다. 그런데 멀리서 익숙한 뒤태가 보였다.

남편이 그 안경점에서 바로 나오고 있었다.

나는 안경점에서 타이밍 좋게 동시에 일이 끝났나 보다 하고 남편을 반가이 불렀다.

그런데 남편이 뒤돌아 나를 한번 쓰윽 보더니 뭐라 웅얼거리고는 어쩌다 만난 동네 친구에게 하듯 손 한번 흔들더니 빠른 걸음으로 건물을 빠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뭐지? 싶어 나는 나도 모르게 따끈한 음식 봉투 들고 빠른 걸음으로 남편을 뒤쫓아 갔다

마치 돈 받을 것 있는 사람 우연히 만난 사람처럼 열과 성을 다해...

문제의 그 안경위에 끼우는 다리없는 선그라스

더운 날 헉헉 거리며 뒤쫓아간 주차장에서 남편은 잠깐만 차에 있으라며 뛰듯이 다시 쇼핑몰로 갔다.

"지금 니 뭐 하니?"소리가 절로 나왔다.

차 안은 아까 보다 더 가마솥이 되어 있었고 달리지 않은 차 안은 에어컨도 바람도 없이 쩔쩔 끓고 있었다.

혼자 차에 타고 있을 자신이 없어 차문을 열어 놓은 체 그 옆에 서있었다. 뜨끈한 음식 봉투 들고...

그렇게 머리 위에서 김이 나고 있을 무렵 남편이 해맑은 웃음을 띠며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는 "이제 가자 막내 찾아 야지!"하는 게 아닌가?

"아니 그럼 내 아이스커피는? 그거 사러 온 거 아녀 우리?"

시간을 보니 다시 아이스커피 사러 안으로 들어갔다 오기엔 아슬아슬했다.

우리가 아이 학교 앞으로 가서 단 몇 분이라도 기다리고 있는 게 났지 이 무더운 땡볕에 애가 우리를 기다리게 하는 것보다는 말이다.

어쩔수 없다 김기사 출발 ~!



나는 달리는 차 안에서 남편의 왔다리 갔다리의 이유를 들으며 입이 댓발 나오기 시작했다.

남편은 너무 더운 날 나를 위해 아이스커피를 사주러 쇼핑몰에 갔다 그리고 중국 볶음밥의 맛난 스멜에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점심으로 그걸 사다 먹자고 했다. 요기 까지는 다 아는 얘기.

그런데 가져갈 음식 나올 때까지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나만 세워 두고 안경점에 가서 안경 위에 걸쳐 놓고 쓰는 선글라스 하나 사고 와야지 했단다.

지난번에 샀던 것은 안경에 끼웠다 뺐다 하다가 부러 졌다.

운전할 때 쓰는 도수 들어간 선글라스도 있지만 썼다 벗었다 하려면 귀찮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의 안경에 걸어 놓을 수 있는 선글라스 렌즈를 보조 안경 가져다주면 그 크기에 맞춰서 잘라 준다고 했다는 거다.


그 말에 신이 난 남편은 마누라가 뒤에 오던 말던 그렇게 잽싸게 갔던 거다 차로 가서 보조 안경을 가져오기 위하여..

한국에서 처럼 렌즈 자르는거 정도는 그자리에서 해준다면 쓰고 있던 안경 벗어서 바로 했겠지만 독일은 뭐든 시간이 걸린다.

특히나 안경을 마춘다거나 하는 일은 맞춰 놓고 빠르면 사오일 걸리고 늦으면 열흘 도 걸린다.


그런데 남편이 사려고 맡겨 놓은 것은 안경에 끼우는 안경다리 없는 선글라스 다. 안경 위에 덧대는 것이라 렌즈만 잘라 주면 된다고 바로 당일에 된다고 했다는 거다.

그만해도 독일에서 치고 빠른 거니 남편이 후딱 하니 가져다주고 온 거다.

안다 다 안다 나도 일할 때 컴퓨터 용 안경 따로, 보통 때 쓰는 안경 따로, 선글라스 따로 평소 안경을 세 개나 들고 다니기 때문에 번거롭고 귀찮다.


그러니 저렇게 신통하게 안경에 걸치면 되는 것을 그것도 안경에 맞춰 오늘 안에 잘라 준다니 기뻤을 것이다.그럼에도 내게 이차 저차 해서 이렇다 라고 이야기했으면 주차장 까지 괜히 허벌라게 따라갈 필요 없이 그동안 내가 아이스커피 사 왔을 것 아닌가(끝까지 포기 못한 아이스커피 )

나의 갱년기 증상 뻑하면 욱 하고 화난다.

자초지종을 들으며 입 내밀고 오다 보니 어느새 아이 학교 앞에 도착했다.

5분 정도 남았다. 내 쪽에 들고 앉았던 음식 봉투를 다시 한번 야무지게 묶고 뒷자리로 넘겨 둘까 부스럭 대고 있었다.

막내가 뒷자리에 타면 가방으로 막아 두라고 하면 음식 봉투가 혼자 차 안에서 굴러 다닐 염려는 없으니 말이다.

내 부스럭 거리는 모습에 남편이 내게 말했다.

" 왜? 지금 먹게?" 나는 참았던 욕이 시내 광장에 분수 뿜어져 나오듯 쏟아졌다.

"먹긴 뭘 먹어,더워서 그런다 니도 이 더운 날 김 나는 음식 들고 앉아 있어 봐라 엉?"

그러자 남편은 울컥 한 표정으로 눈물이 글썽해서는 "근데 왜 욕을 해 " 한다.

좀 전에 내가 조카 18색 크레파스 어쩌고 하며 욕으로 랩을 했던 게 서러웠나 보다

그렇다 남편의 갱년기 증상은 시도 때도 없이 울컥하며 눈물이 글썽하는 거다.

나는 그 애 같은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는 "왜 또 울게? 울어" 하면서 휴지를 건네줬다.

남편은 언제 울컥 했나 싶게 빙구처럼 웃었다.

그렇다 우린 상태 다른 갱년기 부부다.

남편의 갱년기 증상 뻑하면 울컥하고 눈물이 글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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