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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Jun 05. 2021

여름을 산책 하기엔 밤이 좋아

긴 산책 짧은 고민


머릿속이 복잡하고 병원일이 힘들었던 날일 수록 산책이 필요하다.

거기에 독일의 여름밤은 저녁 먹고 산책을 나가기에 더없이 좋다

낮의 더운기를 한풀 꺾게 해주는 맑은 바람과 새소리 그리고 아직도 해가 기다리고 있어 시간을 잊게 해 준다.

한 시간을 앞당겨 쓴 서머타임 덕이긴 하지만 저녁 9시가 넘어도 밖은 여전히 훤하다.


우리 부부는 멍뭉이 나리와 산책을 하며 그날 있었던 일도 두런두런 나누지만 그때마다 다양한 테마를 이야기한다

며칠 전 저녁 산책의 테마는 나의 글에 대한 것이었다

언젠가부터 가지고 있던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과 이젠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을 남편과 허심탄회 하게 나누고 싶었다.

나는 내 글을 언제나 제일 먼저 읽어 주는 독자 0번인 남편에게 물었다

"내 글의 특징은 뭘까?

남편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했다 "일상의 잡다구리?"

그래 맞다 주로 일상을 이야기하니까

"그럼 자기는 내 글 중에 어떤 글이 제일 좋았어?"

역시 심플한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나오는 글은 모두" 이런 출현 욕심이라니...


골목길을 바꾸어 걸으며 나는 질문도 바꿔 보기로 했다

"내가 쓰고 있는 매거진이 여러 개잖아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도 있고 우리 집 나리에 대한 것도 있고 음식에 대한 거, 한국요리강습에 관한 거, 독일 생활, 우리 병원 이야기... 그중에서 하나만 고르라면 무엇을 골라야 할까?"

남편은 연이은 내 질문에 이번에는 허를 찌르는 질문으로 맞받았다

"네가 글을 쓰는 목표가 뭔데?"

나는 순간 멈칫했다

목표라.. 한때는 책을 내는 것이었고 또 어느 때는 공모전 입상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목표라 할 수 없다.

이제는 글도 좀 정리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정리하듯 말이다

지금 까지 처럼 시간 날 때마다 생각날 때마다 써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계획해서 말하자면 통일된 주제를 가지고 기획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자면 객관적인 의견이 필요했다.

남편은 제일 먼저 내 글을 읽어 주고 있고 많은 글 속의 소재들에 대해 이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글을 쓰는 나보다는 객관적이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번에는 남편이 내게 물었다 "매거진 중에 제일 구독자가 많은 게 뭐였지?"

나는 얼마 전 통계로 확인한 것들을 줄줄이 이야기했다.

"당신이 몰랐던 독일이라는 독일 생활에 관한 매거진 하고 독일에서 아이 셋 키우기라는 교육 매거진 구독자 수도 비슷하고 공유되는 수도 비슷해 "

조용히 듣고 있던 남편이 물었다. "병원 이야기는?"

나는 마치 혼자만 아는 것을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턱을 높이 치켜들고는

"그게 같은 병원 이야긴데 독일 가정의 병원에서 생긴 일이라는 매거진은 구독자가 적은데 어쩌다 병원 매니저라는 브런치 북은 라이크도 적지 않고 완독률이 높아"

남편은 뭔가 단서가 될만한 것을 찾아 내려는 명탐정 셜록홈즈 옆집 사람이라도 된것처럼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내게 다시 물었다.

"그럼 너의 브런치 북을 읽었던 독자층은?"

남편이 뭔가 실마리를 찾고 있는 듯 보이자 나는 입에 모터를 달은 듯 신이나 이야기했다.

"음 브런치 북에는 인사이트 리포트라는 게 있어 거기 보면 내 글을 읽어 주신 독자층이 분석이 돼서 보여 어쩌다 병원 매니저는 30대 40대 여성이 가장 많았고 키워드는 해외생활 그리고 에세이였어"


나는 기대에 찬 눈으로 남편을 쳐다보며 물었다.왜 가끔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지 않는가? 절박?한 누군가가 화려한옷을 입고 방울을 흔들거나 쌀알을 튕기고 있는 분에게 “도사님 어찌 해야 할까요?” 할때 처럼.....

"그럼 앞으로 어떤 테마의 글을 써야 할까?'

남편은 제대로 된 단서를 손에 쥔것 처럼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그건 너의 독자님들에게 물어봐야지"

헐 나 지금까지 뭐 한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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