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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pr 10. 2022

백조도 날 수 있다.


기대하지 않았던 3월의 눈부신 햇살과 포근한 날씨는 우리를 부지런하게 만들어 주었다.

주말이면 정원에 나가 앉아 텃밭과 꽃밭을 만들고 가꾸느라 손에 까만 흙 묻혀 가며 즐거웠다.

그런데 4월로 들어서며 기다렸다는 듯이 꽃샘추위가 찾아 왔다.

자고 일어나 눈떠 보니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꽃나무에 핀 꽃 위로 눈꽃이 피어났다.

그러다 눈이 비가 되고 차디찬 바람이 불며 잠깐 해 났다 비 왔다 가 반복되는 전형적인 독일 4월 날씨가 계속 되었다.

떨어진 온도보다 몸과 마음을 움츠려 들게 하는 건 찬기운을 품고 불어대는 세찬 바람이었다.

긴 산책을 나가야지 하다가도 그 바람에 모퉁이 돌아 짧은 산책으로 돌아오기가 일쑤였다.


원래 대로 라면 일요일 아침 우리는 멍뭉이 나리와 빵가게까지 동네 산책을 하고 얼른 빵만 사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어야 했다.

그전날도 눈비가 바람에 세차게 휘날리며 추운 날씨였기에 이른 아침 해님이 방긋했지만 언제 다시 비바람을 동반한 날씨로 변덕을 부릴지 모르니 빨리 끝내는게 상책 이였다.

그런데…

골목길 안으로 보이는 나무의 활짝핀 하얀 꽃 들과 풀밭 사이로 고개 내민 거위 꽃 따라 우리는 어느새  집 방향 과는 다른 골목 모퉁이로 들어 서고 있었다.

가지마다 소담스레 피어난 하얀 꽃들은 가을 이면 그 꽃망울만큼 조롱조롱 배가 열릴예정임을 우리에게 미리 보기 해 주는 듯했다.

또 파란 풀밭 사이로 햇살 퍼지며 하얗게 모습을 드러내던 거위 꽃 Gänseblümchen겐제불룸쉔은 마치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쫌만 참어 곧 따뜻한 날 다시 올 거야 어쨌거나 봄이 잖여~!"


때마침 우리 집 똥꼬 발랄한 멍뭉이 나리는 바람에 싣려 오는 꽃내음이라도 힘껏 맡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요리조리 흔들어 댔다.

"아 공기 좋다!"라고 하는 것 같은 그모습에 우리도 나리 따라 조금 차갑기는 하지만 맑고 깨끗한 공기를 폐 속 깊이 들여 마셔 보았다.

우리가 걷고 있던 그 골목길은 자주 가던 공원과 맞닿아 있다. 수많은 아름드리나무들과 풀밭으로 이루어진 공원 안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청명한 공기의 다름을 나리는 느끼고 있었던 거다.

나는 가끔 우리 집 네 살배기 천방지축 멍뭉이 나리 안에 사람이 들어앉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나리의 꼬드김? 에 우리는 못 이긴 척 공복에 식전? 공원 산책을 나섰다.

30분이면 끝날 동네 산책에 비해 공원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공원 산책은 못해도 한 시간 반이 걸린다.

하늘이 파랗다 설마 중간에 비 오진 않겠지?

다른 날에 비해 조금 이른 시간이여 그런지 날씨가 제법 추운 날이라 그런지 공원 안 숲에는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들어온 공원은 조금만 걸어 나가면 아이들 놀이터가 나오고 여러 가정들이 모여 사는 빌라가 나오고 전차가 다니는 대로변이 나온다.

그러나 공원 안의 숲은 흡사 산속에 온 듯 고요하다.

특히나 조깅 나온 사람들도 보이지 않고 강아지와 산책 나온 이들도 만나 지지 않는 주말 이른 아침 엔 말이다.

나무 사이로 호수 위로 스쳐 가는 바람의 소리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만이 정지 화면이 아님을 알게 한다.


문득 그 무수한 새들의 소리 중에 아주 특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새들의 소리 와는 또렷이 구분이 가는 단순하고 명확한 소리..

커다란 스텐 냄비 겉면을 손가락으로 한번 튕기는 듯한 소리 같기도 하고 종을 딱 한 번만 딸랑하고 흔든 것 같기도 한 묵직하고도 묘한 소리였다.

오케스트라에서 여러 대의 바이올린 협주가 이어질 때 잠깐 그사이를 끼어든 첼로의 음률 같다고나 할까?

그 새소리에 이끌려 이나무 저 나무 살펴보았지만 도무지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찾을 길이 없었다.

나무들은 이제 파란 물이 오르기는 했지만 겨우내 낙엽으로 보낸 나뭇잎의 빈자리는 아직 헐벗은 나뭇가지들만 있다.

그덕에 어쩌면 저 묘한 소리를 내는 새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목을 빼고 나무들을 올려다 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새들의 소리를 배경 삼아 걷다 보니 어느새 공원 한가운데 있는 호숫가에 도착 했다.

이른 아침이라 오리들도 아직 풀밭에서 자고 있는지 물 위로는 하얗고 커다란 백조들만 유유히 떠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멀리서 한 마리 백조가 그 커다란 날개를 펴서 호수 위를 날기 시작했다.

백조도 날수 있었던 거다.

나는 그 광경에 감탄사를 머금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야 백조가 날아!"

자기도 처음 보면서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남편은 거만하게 말했다.

"당연하지 쟤도 샌데!"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 커다란 날갯짓과 마치 귓가에서 부채질을 해대는 것 같이 부산스러운 소리를 내며 날아오른 것에 무색하게 백조는 멀리 날아 가지도 못하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두발을 물 위로 가져다 댔다.

그건 물에 빠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수상 스키를 배우고 있는 초자의 모습 같았다.

나는 그 지랄 발광하는 것 같은 백조의 모습이 너무 우스꽝 스러워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야 제 뭐 하니?"

남편은 마치 새 들과 대화도 가능한 능력?이라도 있는냥 "지금 쟤가 그 옆에 있는 애 꼬시려는 거야!"

그곳에는 다른 백조 한 마리가 그 난리 부르스 에도 요동치 않고 유유히 물 위를 떠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는...

아까 그 백조가 물 위에서 다시 그 커다란 날개를 피더니 이번에는 조금 더 멀리 훌쩍 날아올랐다.

아까의 그 지랄 발광을 리바이블하며 말이다.

나는 그 백조가 다시 발을 내려 착지 한 곳에 또 다른 백조 한 마리가 떠 있음을 케치 했다.

"여보야 저기 또 다른 백조가 있다 뭐야 그럼 쟤 양다리야?"

백조에 대해 아는 게 없기는 매한가지인 남편에게 또 물었다.

그러자 남편은 쌈빡한 웃음을 날리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니지 아까 그 백조 하고 잘 안된 거지 그래서 다른 백조한테 찝쩍대러 멀리 원정 간 거지!"

나는 암컷 인지 수컷인지 구별 도 안 가는 백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이어 가는 남편의 해설이 재미있어 배꼽 잡으며 웃었다.

그리고 조금 더 그들을 지켜보기로 했다.

거울 처럼 비쳐 지는 호수 물 위로 나뭇가지 들과 유유히 물 위를 오가는 백조들...

그리고 저도 한번 물 위로 가보고 싶어 안달하는 강아지 한마리와 말도 안 되는 상상의 나래를 펴며 머리를 맞대고 있던 얼빵한 부부의 모습이 호수 위로 그림자 처럼 그려졌다.


이번에는 멀지 않은 곳에서 세 마리의 백조가 띄엄띄엄 물 위를 떠 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나는 웃음을 머금고 남편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 쟤네 셋은 뭐야?"

남편은 뭐 그런 쉬운 걸 묻냐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장관리!"



To 애정 하는 독자님들

아래 동영상 안에 다양한 새들의 소리가 들어 있습니다 볼륨을 크게 하시고 들으시면 잠깐이나마 독일 숲의 느낌을 함께 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맑은 자연의 소리가 여러분 일상의 작은 힐링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독일에서 김중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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