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Oct 03. 2022

사라져 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쉬는 날 시내를 나가면 언제나 가는 카페 가 있다.

변화가 더딘 동네 독일이지만 카페, 빵집, 레스토랑 들은 간간히 새로 오픈을 하고 나름대로의 테마에 따라 그때의 핫플이 되기도 한다.

때마다 마차 라테, 버블 티 등 유행하는 음료들도 다양하다.

그러나 나는 늘 가던 카페에 가서 라테 마끼아또를 마시고는 한다. 익숙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아도 해마다 새 학년 새 학기 첫날이 제일 학교 가기 싫었던 거 같다.

교실이 달라지고 학급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이 바뀌고 하는 일련의 변화가 못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한국에서 멀고도 낯선 독일 땅을 내딛게 된 것은 내 인생 최대의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다행인 것은 독일은 처음 독일 생활을 시작했던 동네, 중간에 이사를 했던 남부, 지금 살고 있는 동네까지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 큰 차이가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거다.

스쳐지나간 것 같은 세월 속에 아기들이 성인이 되고 우리 부부는 중년이 되었다는 사실만 빼고는 말이다.



며칠 전이었다. 연휴 동안 밀린 글을 써 보려고 브런치에 로그인을 했다.

노트북 위로 내 프로필 사진이 보이고 브런치 방이 열리면 글쓰기 버튼을 누르기 전 언제나 의식처럼 행하는 나만의 루틴 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 브런치의 통계를 눌러보는 일이다.

통계를 들어가 보면 제일 처음 보이는 것이 그날의 조회수 다.

언제나 비슷한 숫자가 찍히는 내 브런치 방에서 그날 몇 분이 다녀 가셨나? 하는 것을 들여다보는 것은 별다른 것을 기대해서가 아니다.

마치 매일 오늘의 운수나 일기예보를 보는 것 같은 작은 습관일 뿐이다


또,통계 안에는 유입키워드 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저 일기처럼 소소한 일상을 적고 있는 브런치 방을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찾아오셨나? 하는 것을 알게 해 주는 작은 지도 같은 것이기도 하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보자면 통계 에는 유입 경로라는 것이 있어 독자들이 검색을 통해서 또는 sns를 통하여 아니면 브런치를 통해서 그도 아니면 기타를 통해서 유입되었는지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유입 키워드라는 것이 있어 독자들이 어떤 검색어를 통해 내 브런치를 만났는지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브런치 작가는 독자들이 무엇을 통해 또는 어떤 검색어로 내 브런치 방에 오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유입경로와 유입 키워드를 통해 알 수가 있다는 이야기다.


내 브런치에 자주 등장하는 유입 키워드는 뭐니 뭐니 해도 김여사의 구텐 아페티트였다.

그건 예전에 글을 쓰던 다음 블로그의 이름인데 내게는 인터넷상에 글을 쓰게 된 처음 이기도 하고

말하자면 한국을 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러 가야 하는 프랑크푸르트 공항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이 유입 키워드를 이제는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왜냐 하면 이제 다음 블로그는 세상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분명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김여사의 구텐아페티트에 들어가서 예전 글들을 읽어 보고 필요한 사진들을 캡처했는데...

며칠전 들어가니 다음 블로그가 종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딴생각하며 지나가다 뒤통수를 씨게 맞은 것처럼 황당하고 놀라웠다.

확인해 보니 그동안 읽지 않고 쌓아 두었던 메일함에 이미 다음 블로그 종료에 관한 안내문이 여러 차례 발송되어 있었다.

이렇게 갑작스런 느낌을 받는건 전적으로

보내 줘도 읽지 않은 내 탓이다.


나는 2016년 여름 브런치 작가 가 되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전인 2014년 봄 다음 블로그를 시작으로 인터넷상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독일의 김여사가 되었다


블로그를 하게 된 특별한 목표나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 요리에 관한 것을 남기고 싶었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지인들이 우리가 독일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조금 더 가깝게 볼 수 있도록 기록을 남겼을 뿐이다.


그렇게 김여사의 구텐 아페티트 에는 아주 사적인 사진들과 일상의 내용들을 일기장 또는 앨범을 모아둔 서재처럼 간직해 왔고 브런치에 글을 쓸 시간도 없을 때가 많아 그곳에 새 글을 쓰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블로그 안 500 개의 글들 에는 블로그 친구들 또는 독자 님들이 남겨 주신 소중한 댓글들이 남아 있고 추억할  있는 사진들과 글들이 다.

때문에 내가 원하면 언제 어느 들려서 들여다보고 그리운 시간들과 마주 했고 그곳에서 위로를 받고는 했다.

마치 아이들의 놀이터나 아지트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런 곳이 어느  사라져 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카카오에서 무슨 이유로 다음 블로그를 종료하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포털 사이트에서 블로그가 사라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추억을 담아둔 나만의 블로그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는 현실이 무척이나 속이 상하고 서운하다.

물론 사진과 글들을 신청하면 백업을 시켜 준다고 안내가 되어 있었다.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될지 아직 시도해 보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새로운 것들을 익히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한 내게는

벌써부터 부담이고 왠지 서글퍼진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꼭 어느 날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사용하던 짐들 은 신청하면 모처에서 돌려받을 수 있게 된 상황 같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급작스레 맞닥 뜨리게 된 (이건 전적으로 메일을 확인하지 않은 내 탓이다) 블로그 종료로 나는 멘붕이 되었다.

아직 나의 블로그 김여사의 구텐 아페티트와 이별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백조도 날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