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고 이거다!
살다 보면 종종 고민하던 또는 깊이 생각하던 것의 해답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뜻밖의 상황에 네가 왜 거기서 나와하듯 만나 지고는 한다.
그로 인해 '이거다 이거야!' 하며 반가운 손뼉을 날리는 건 어쩌면 정해진 수순이다.
이거다! 는 때로 오래된 고민의 해답일 수도 있고 뭔지 모르게 머릿속을 떠돌던 아이디어가 퍼즐 맞듯 맞아떨어지게 될 때도 있고 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무한공감으로 자연스레 정리될 때도 있다.
이른 아침 작심 하루가 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동네 한 바퀴를 뭉기적 대며 뛰고 있었다
길 앞쪽에서부터 요란 스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소리 인지 익히 알고 있던 나는 '! 아 또 그때가 되었구나!' 하고 달리던 속도를 조절하며 길 한옆으로 비켜섰다.
그 소리는 다름 아닌 가을 낙엽을 쓸어 담는 3인 1조의 환경미화원 아재 팀이다.
한 명이 등에 가방처럼 맨 청소기 비슷하게 생긴 기계로 붕붕 거리며 낙엽을 한쪽으로 모으면 그것을 다른 한 명은 앞쪽에 빗자루와 쓰레바퀴 같은 것이 달린 차로 쓸어 담는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이 그럼에도 아직 길 위에 남아 있던 나머지 낙엽들을 길쭉한 솔처럼 생긴 긴 빗자루로 마저 쓱쓱 쓸어 댄다.
아름드리 가로수가 지천인 독일에서는 시몬 너는 아느냐? 가로수 낙엽 굴러 떨어지소리를? 하는 가을 이면 동네 어귀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풍경이다.
뒤돌아 확인하고 가던 길을 달리려던 순간...
내 눈에 포착되는 장면이 있었다. 그건 사진으로 치면 줌으로 당겨서 한컷으로 들어올 아주 짧고 단순한 모습이었다.
우리의 3인 1조 환경미화원 아재들이 열심을 다해 쓸어 담고 돌아 서려는 찰나 바람에 낙엽이 또다시 아재들의 머리 위 어깨 위 그리고 길바닥에 후드득 비 오듯 떨어져 내렸다.
우리 집도 아름드리 보리수나무가 있어 가을이면 만만찮게 낙엽이 생긴다.
그 밑 빠진 독에 물 붇는 듯 한 무한리필 낙엽 담기를 잘 아는 나는 안타까움에 저절로 미간이 찡그려졌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에효 쓸면 뭐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쓸어 담으면 또 떨어지고 다시 쓸어 담으면 또 떨어지는 시추에이션에 이미 익숙한 환경미화원 아재들은 그저 어깨 위의 낙엽을 먼지 털듯 툭툭 털어 내고 묵묵하게 다시 쓸어 담고 있었다.
세상 담담한 그 모습에 나는 '어? 이거다!'라며 반가운 손뼉을 쳤다.
왜냐하면 그전까지 내 머릿속을 떠돌던 대답 없는 질문에 답을 저절로 만난 듯해서였다.
요 며칠 내 머릿속을 떠돌던 것 중에 하나가 브런치에 글쓰기였다.
안 그래도 다음 블로그가 종료되며 넷상에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허무함이 마음 언저리에 얹히듯 앉아 있었는데 요즘 새 글을 올리고 나면 풍선에 바람 빠지듯 구독자들이 줄어드는 기이한? 현상을 겪고 있다.
적게는 한 번에 두 명, 세명 많게는 다섯 명, 아홉 명...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유튜브처럼 구독자와 조회수가 수익을 가져다주는 시스템은 아니지만 누군가 보아 주기를 원해서 쓰는 글쓰기에 구독자와 좋아요, 댓글에 무딘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브런치는 유튜브처럼 구독자 가 늘면 실버 버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언박싱 할 일도 없지만 구독자가 꾸준히 느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쓴 글은 나 혼자 읽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읽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니 말이다.
특히나 전문성을 띤 글이 아닌 일상을 녹여쓴 글은 너무 일기 같아서 그런가? 이런 남의일에 사람들은 관심이 없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 일쑤다.
그래서 구독자가 꾸준히 한 명이던 두 명이던 새로 생기면 '오호 내 글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네!' 라며 글 쓰는데 힘이 나지만 그에 반해 있던 구독자가 줄어들면 뭐지? 왜 그러지? 라며 신경이 쓰이고는 한다.
그것도 내 체중계처럼 평소 늘지도 줄지도 않고 좀처럼 변화가 없던 구독자수가 새 글을 올리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줄지어 빠져 버리면 그야말로 의기소침해지고 요즘 내 글에 무슨 문제가 있나?부터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쓸면 뭐해?라고 튀어나왔던 순간에 스스로 놀라며 쓰면 뭐해?라는 자조적 질문이 투영되었다.
그런 찰나에 변함없이 담담한 아저씨들의 낙엽 치우는 장면이 내게 해답을 알려 주는 것 같았다.
마치, 학교 다니던 어린 시절처럼...
학교 다닐 때 점심시간 지난 5교시? 가 제일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배불리 먹고 난 식곤증으로 뜨나 감으나 별 차이 없는 눈을 아무리 부릅뜨려 해도 자꾸 눈꺼플이 무겁게 내려오고 나른해져 비몽사몽 간에 헤매고 있을 때가 종종 있었다. 꼭 그럴 때 불현듯 선생님의 호명과 질문이 떨어지고는 한다.
졸다 깨서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얼떨떨 해 있을 때 옆 짝꿍이 교과서로 살짝 가린 얼굴 사이로 뭐라 뭐라 속닥이며 답을 알려 주고 친구의 작은 목소리도 잘 알아듣고 대답을 하고는 휴우 살았다 싶던 때가 있었다.
내 눈에 들어왔던 그 한컷은 그때 같았다.
낙엽이 떨어져 바닥에 깔리는 일은 가을 이면 늘 있는 일이다.
바람이 불어서... 잎에 가을색이 짙어져서.. 그 순간 새가 날아서.. 때가 되어서.. 등등 이유야 많겠지만 나뭇잎이 떨어져 내려 낙엽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낙엽이 아닌가 떨어질 낙 잎사귀 잎...
추풍낙엽..
가을바람에 낙엽이 사정없이 떨어져 내려도 저리 꿋꿋하게 다시 담으면 그만이다.
흔들림 없이 다 담아내고 나면 나뭇잎 하나 남지 않은 가지가 될 테고... 추운 겨울 지나 따사로운 봄이 되면 다시 새로운 잎들이 돋아 나게 될 것이다. 싱그러움과 푸르름을 담뿍 담아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