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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Aug 02. 2022

자줏빛 수국 닮은 남편의 특제 김밥


오른쪽 손목이 또 말썽을 부렸다.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뭐하나 급하게 들다 허리가 삐끗하기도 하고 일하는 자세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순간적으로 어깨가 뭉치고 아픈 날도 있다.

손을 많이 쓰는 나는 종종 갑작스러운 손목 통증이 찾아온다.

그럴 때면 손목에 테이핑을 감아주고 되도록 며칠 손 사용을 줄이려 한다 그러나 그게 쉽지가 않다.

오른손을 움직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나 될까?

특히나 병원 일 중에 양손을 사용해야 하는 컴퓨터 업무는 필수 다. 집에서라도 손목 사용을 줄이려 노력해도 사실 주방일이던 청소던 빨래던 한 손으로는 가능하지 않을 때가 많다.


평소 남편과 막내가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기는 하지만 보고 있자니 답답해서 내가 빨리 하고 치워 버릴 때가 많은데 그날은 손목 상태가 정말 말이 아녔다.

저녁 때는 다 되어 가고 그 손으로 움직여 뭔가를 만들어 먹었다가는 다음날 병원일을 못할 것만 같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저녁으로 피자를 배달시켜 먹을까? 했더니 막내는 좋다고 했지만 남편은 차라리 자기가 뭔가를 해 보겠다고 했다.


자주 안 해서 그렇지 사실 남편은 결혼 전 프로 자취러였다. 혼자 오래 자취를 해서 웬만한 음식은 뚝딱 하니 만들어 내고는 했었다.


남편의 "지가 해 보겠슈!" 선언에 은근 기대가 되었지만 말로는 날도 더운데 간단하게 먹자고 했다.

어제 해 놓은 밥도 있고 하니 남편이 라면 끓여 밥 말아먹자고 하지 않을까? 하며 말이다.

어쩌면 저녁 식탁에는 바쁠 때 시그니쳐 메뉴인 계란 프라이에 버터 녹인 간장밥? 이 올라올 수도 있고 또는 잘게 다진 당근, 감자 들어간 볶음밥? 일지도 모른다.

무엇이던 좋았다 세상에서 제일 맛난 밥은 누가 해준 밥이 아니던가.


그런데...

냉장고를 들여다보며 꼼꼼히 살펴보던 남편은 과감? 하게 김밥을 싸 주겠노라 했다.

나야 땡큐 하다만 그동안 해주는 김밥만 맛나게 먹었지 샐프로 김밥 싸 본 지도 꽤 되었을 테고 아무리 간단 김밥이라 해도 재료 몇 개는 들어가야 할 테니 손이 많이 갈 텐데도 말이다.


남편은 냉장고에 있던 노란색 단무지와 초록의 오이를 꺼내 채 썰어 담으며 말했다.

"잘 썰지? 역시 녹슬지 않았어!"

나는 해주는 게 고마워서 굵다 얇다 시청소감은 넣어 두고 따봉 만을 날려 주었다.

갈색의 어묵과 분홍색 소시지 빨간 게맛살을 프라이팬에 노릇노릇 구워내며 맛본다는 핑계로 무한리필 먹어대는 남편을 보며...

'그렇게 먹고 나면 김밥 쌀 거는 있고?'라는 말은 삼켰다.

어쨌거나 마누라 손목 아프다고 기특하게도 이렇게 해주고 있지 않은가?


자르지 않아도 되도록 너덜너덜한 계란 지단까지 다 되자 하얗고 긴 접시에 김밥 재료들이 조로미 담겼다.

남편은 미슐랭 별 5개쯤 달고 있는 셰프 같은 포즈로 김밥 쌀 준비를 했다.



식탁 위 커다란 볼 속에 가득 담겨 고소한 참기름과 짭조름한 소금이 발려 기다란 나무주걱으로 이쪽으로 저쪽으로 힘찬 마사지를 받고 있는 밥에 눈이 갔다.

전날 해 두었던 밥은 흑현미를 둔 자주색 밥이었다.

색감을 중시하는 내게 색색의 김밥 재료가 돋보이고 식감을 당겨 올릴 수 있는 김밥용 밥은 흰 도화지 같은 하얀 쌀밥이어야 했다.

그러나 남편이 싸주는 김밥을 얻어? 먹는 형편에 양심이 있지 밥 까지 새로 하라고 할 수 없었다.

잔소리는 접어두고 주는 대로 맛나게 먹는 센스를 챙겼다.


김발에 얹힌 까만 김 위에는 자주색 밥이 푸짐하게 올려졌다.

그 밥 위에 김밥 재료 나란히 올라 가 또르르 말리니 남편의 김밥이 건장한 자태를 뽐냈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남편의 밥 밀도 짱짱한 김밥은 뻥좀 보태 내 팔뚝과 경쟁할만했고 밥에 비해 빈약해 보이던 재료들이 두툼한 겨울 솜이불에 폭쌓인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 

길고 튼실한 김밥을 동글동글 썰어 놓으니 자주색의 탱탱한 김밥이 그렇게 예쁠수가 없는 거다.

요즘 우리 동네 집집마다 가득 피어나는 자주색 수국을 닮았다.

맛은 또 어떻고.. 

흑현미의 구수한 맛과 소금 참기름 간이 딱 맞아서 말할 것도 없이 끝내줬다.


"김밥 진짜 맛있지? 너무 맛있어서 맨날 해 달라면 안되는데" 라며 호들갑을 떨며 샐프 칭찬하기 바쁜 아빠에게 우리집의 미식가인 막내는 직격 탄을 날렸지만 말이다.

"아빠 김밥이 밥 맛 밖에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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