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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Nov 14. 2022

엄마의 약밥과 딸의 바나나 케이크


다음 주면 우리 집에 하나 있는 공주의 생일이 돌아온다.

집에서 한참 떨어진 동네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딸내미는 지금 학기 중이다.

아이의 이번 생일날은 평일이다. 하루 종일 수업이 빼곡히 있는 날이라 했다.

생일날 집에 없었던 몇 번 안 되는 날 중에 하나가 될 것이다.

독일에서는 원래 생일날 축하해 주거나 지나서 생일 축하를 한다.

그러니 생일 지나 주말에 집에 왔다 가라 할까? 하다가 안 그래도 공부할 것도 많고 과제할 것도 많다는데 집에 왔다 갔다 하느니 이번 생일은 친구들과 함께 보내라고 했다.


얼마 전 남편 생일을 핑계로 우리가 아이가 사는 동네를 다녀왔고 함께 주말을 보내고 왔으니 그것으로 됐다 싶었다.

그런데 생일이 다가오니 이번엔 미역국도 못 끓여 먹이겠네 싶어 자연스레 담기는 못내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눈치 빠른 딸내미는 엄마 마음이 빤히 보였던지 생일 한 주 전인 지난주 주말에 서프라이즈로 집에 다녀 갔다.



이제 자취생활 3년 차인 딸내미는 요리를 꽤 잘하는 편이다.

집에 오기 전 날에도 김치볶음밥에 떡꼬치 까지 해 먹었다며 톡으로 인증 사진을 보내 주었다.

그럼에도 엄마표 음식들은 그동안 마일리지를 차곡차곡 쌓고 있었던지 집에 오면 뭐가 먹고 싶으냐 물었더니 유부초밥, 갈비찜, 된장국, 만두, 치킨, 탕수육... 끊임없이 나온다.


냉장고 확인을 하고 퇴근길에 아시아 식품점에서 장을 넉넉히 봐 두었다.

아무래도 아이가 먹고 싶은 건 엄마표 한식이니 달락 달락 남은 참기름도 사야 하고 떡볶이와 국 끓일 때 넣을 어묵도 사야 하고 유부 초밥 할 유부도 사야 되고 만두 빚을 만두피도 사야 해서 식재료 들을 요것조것 욕심 것 담았더니 카트가 넘쳐 난다.

계산대에서 장 본 것을 장바구니에 담는 내게 친한 식품점 직원분이 요리강습 나가냐고 물었다.



시간은 어찌나 빠르게 흐르는지...

딸내미가 말간 웃음 지으며 집안 으로 들어온지 얼마 안되었는데 벌써 가야할 시간이 다가왔다.

아이가 다시 돌아가기 전날 아직 독일식으로는 생일이 아니니 생일 케이크와 축하는 뒤로 미루고 생일을 미리 당겨 축하해도 되는 한국 식으로 저녁상을 차렸다.

미역국을 끓이고 돼지갈비찜, 숙주나물, 치킨 탕수, 샐러드, 열무김치, 김..,,차려 놓고 보니 생각보다 뭣이 허전했다.

사다 놓고도 깜빡하고 하지 않은 요리들이 한참이나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주말 내내 "왜 하루가 세끼뿐이던가?" 할 만큼 매 끼니 아이가 원하던 엄마표 먹거리들을 식탁에 올렸건만 아이가 가고 나니 냉장고에서 대기 중인 식재료 들이 줄지어 있었다.

두부두루치기 하려고 담아온 두부들과 새우튀김 해주려고 들고 온 새우들이 참신한 모습으로 냉장고 문 사이로 마주 한다.


저녁 먹고 나서는 그동안 함께 보려고 아껴 두었던 스트릿 맨 파이터라는 댄스 크루들이 경연을 벌이는 예능을 비머로 벽면 가득 크게 해서 신나게 보았다.

막내는 이런 종류의 예능은 재미없다며 방으로 도망가듯 올라갔고 남편은 몸 좋고 젊고 잘생긴 남정네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건 잠을 부르는지 맞은편 소파에서 냅다 자기 바빴다.

딸내미와는 우와 우와 탄성을 지르며 누가 더 잘하는 것 같다며 손뼉을 치고 잘했는데 너무 점수가 짜게 주는 거 아니야 하며 우리끼리 심사를 한다. 그야말로 죽이 착착 맞았다.

재미난 것을 함께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딸내미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최애 한국 아이스크림 중에 하나인 비비빅을 먹으며 깔깔 거리며 눈은 화면에 가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다음날 아침 챙겨서 보낼 것에 대한 점검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생각난 약밥,딸내미는 어릴 때부터 달달이 밥이라 부르며 약밥을 유난히 좋아했다.

가만있자 찹쌀은 있고 흑설탕도 참기름, 살짝 넣을 간장도 넉넉히 얹을 밤도 있다 그런데 대추와 잣이 없네..

대추나 잣이 없을 때면 대용으로 쓰던 건포도와 아몬드도 없다.

주말 오밤중에 사러 갈 때도 없고... 그냥 밤 만 넣고 솥에 약밥을 앉혔다.

찹쌀 익어 가는 냄새와 짭조름 달달한 냄새가 솔솔 나고 고소한 밤도 짙은 어두움도 한꺼번에 익어 가는 밤이었다.



딸내미는 아침 10시 45분 기차를 타야 한다고 했다.

전날 먹었던 국과 반찬들에 샐러드 대신 계란말이를 해서 아침 상을 차려 주었다.

딸내미가 가져온 작은 핸드 케리어 가방 안에는 아시아 식품점에서 사다둔 먹거리들이 한가득 담겼다.

아이가 사는 동네는 우리 동네에 비해 한국식품점 아시아 식품점 이 많아 식재료 구하기도 훨씬 원할 하지만 동네가 너무 크다 보니 오가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렇게 올 때마다 가방 가득 넣어 주면 한동안 집에서 혼자 요것조것 해 먹을 수 있을 터였다.

비록 밤만 들어간 약밥이지만 맛은 좋았다

가능하면 배낭에 넣고 갈 딸내미가 무겁지 않게 가져가서 맛나게 먹을 만큼 포장하느라 이렇게 저렇게 몇 번을 밤만 넣은 약밥을 싸고 있는 동안 딸내미는 집에 있는 바나나로 케이크 구을 준비를 했다.


바나나를 잘 으깨고 밀가루와 우유, 계란, 버터, 계핏가루 등을 넣어 케이크 반죽을 만들어 두었다.

방에서 핸드 케리어 가방과 배낭 가지고 내려온 딸내미는 현관문을 나서기 직전에 빵틀에 부어 온도 맞춰둔 오븐에 넣었다.

이 케이크는 150도 낮은 온도로 약 50분간 천천히 구워야 하는 케이크 다 딸내미가 기차역으로 가서 기차를 탈 때까지 엄마는 오븐을 수시로 들여다보며 케이크를 구워야 한다.

아마도 딸내미는 지가 있다가 떠난 빈자리에 바나나 케이크를 구우며 풍겨 내는 달달하고 향긋한 계피향이 대신하기를 바랐는지 모르겠다.


나는 입안 가득 말랑하고 쫀득한 바나나 케이크 한입과 한국 믹스 커피 한 모금을 넘기며 '크리스마스는 얼마 안 남았어!'를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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