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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Dec 14. 2022

김씨네 코로나 대첩

그 긴 여정의 시작은 이러했다



어디나 그러하겠지만 독일에서는 11월 말부터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모드로 돌입한다.

동네마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서고 아무리 에너지 대란이라 해도 집집마다 창가에 정원 나무에 꾸며 놓은 색색의 전구들이 반짝이며 밤을 밝혀 준다.


병원일도 바쁘고 짬짬이 크리스마스 준비하느라 뛰어다니는 날이 많았던 주였다.

환절기라 감기 환자들도 많고 꾸준히 늘고 있던 코로나 환자들도 많아 주로 밖에서 야외 진료로 보느라 얇은 가운 걸치고 왔다 갔다 하느라 몸은 춥고 힘들었지만 마음은 따뜻한 기대감으로 충만했다.

그 주가 지나면 비행기 타고 큰아들이 집에 일찍 도착한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말이 시작되고 남편이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원래의 계획대로 라면 시내에 크리스마스 마켓도 들러야 하고 쇼핑몰에 쇼핑도 가야 하고 다녀야 할 곳들이 줄 서 있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몸이 좋지 않을 때는 무조건 쉬어야 한다. 무리하면 절대 안 되므로 동선을 확 줄이고 따뜻하게 집안 정리하며 맛난 거 해 먹으며 보내기로 했다.

평소 일하느라 킵해둔 집안 일도 심심하지 않을 만큼 많기 때문이다.

우선 그동안 주인 없이 비워 두었던 큰아이 방을 꼼꼼히 청소해 두는 것이 주말 일거리 중에 첫 번째였다.


노동요로 때끼 리인 나이야 가라부터 구절구절 흥이 돋는 뽕짝을 틀어 두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며칠 이면 맞이할 큰아들 방의 먼지 앉은 구석구석을 치우며 메뉴를 점검했다.

갈비탕을 먼저 끓여주나 짬뽕을 먼저 하나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 유튜브로 틀어 놓았던 풍악이 나이야 가라 ~수은등 깜박거리다 ~아모르 파튀를 ~지나 어느새 기분이 째져~나는 새삥~!으로 치닫고 있었다.

알고리즘이 데리고 온 새삥 모든 게 다 새삥~! 하는 음악에 맞춰 마음만은 댄스 크루인 나는 둠칫 둠칫 빠른 비트에 맞춰 다리를 털어 대며 큰아이 방 창문을 닦아 댔다.

나중엔 모세 옷을 걸쳐도 라는 가사를 운동복을 걸쳐도 로 개사까지 하며 국민 안무 같은 그 건들 거리는 춤사위가 자동으로 발사되었다.

요즘 하도 사람들이 카피 댄스 숏트 영상으로 올려놓은 것을 거르지 않고 수두룩 빽빽 본 덕분인 것 같았다.


문득 작년 크리스마스 휴가 때 스우파를 영상을 보고 있을 때의 기억 한 조각이 떠올라 혼자 빙그레 웃었다.

남편이 밤에 보면 무서워진다는 눈 풀 린 그 웃음으로...

그때 한참 유행하던 헤이 마마에 맞춰 제법 춤 선이 예쁜 딸내미를 따라 흔들어대던 아니 꿈틀대던 나를 보며 이어폰 꽂고 노트북 들고 이층에서 내려오던 큰아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었다

"엄마 허리 아파?"

이론 띠... 이 엄마 댄스 중이셨다 ㅋㅋ


얼추 청소가 모두 끝나고 아이방 침대 시트를 새로 갈 때까지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거실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있을 것이 분명 한 남편에게 그날은 인심 쓰기로 했다.

다른 때 같으면 일은 너만 하냐 로 시작해서 병원일도 함께 하니 집안일도 당연히 같이 해야 한다는 잔소리를 시리즈로 늘어놓았을 것인데 머리가 아프다 하니 핑계 김에 쉬라고 말이다.

개인병원은 월급 받으며 환자 치료에만 전념하던 종합병원과 다르게 신경 쓸 일이 잡다구리 많다.

그러니 남편의 머리가 아플 수 도 있다. 게다가 일 년 중에 지출이 가장 많은 달 중에 하나인 11월을 지나고 있지 않은가

직원들 크리스마스 보너스가 지급되는 달이요 세금이 나가는 달이기 때문이다.

독일까지 날아오신 귀하디 귀한 한국배

큰아이 방을 깨끗하게 정리해 두고 내려오니 아니나 다를까 소파를 차지하고 누운 남편이 빙구 같이 웃으며

벌써 끝냈어? 한다.

"다 했으면 우리 한국 배나 하나 먹을까?" 한다 얼씨구 배 같은 소리 하네

그 며칠 전 아시아 마트를 털어 오듯 담아온 먹거리들이 저장되어 있는 주방 서랍장으로 눈길이 같다. 아이가 먹고 싶다고 했던 음식들을 당분간 해주기에 무리가 없어 보여 웃음이 났다.

좀처럼 들어오지 않던 한국 배도 나와 있어 거금 들여 두 알을 담아 왔다. 아니 부딪치면 멍들 새라 조심조심 모셔 왔다. 하나에 2유로 80 라니 비싸기도 했지만 매번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또다시 들어올지 모르니 더 귀할 수밖에 없다.

두 알의 한국 배 덕분에 왠지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중에 하나를 먼저 먹자니 큰아들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평소 감기도 잘 걸리지 않고 잔병치레를 자주 하지 않는 남편은 아프면 아이가 된다.

이럴 때 모른 척하고 맞춰 줘야 삐지지 않는다.

눈 고리를 세모꼴로 만드는 것으로 “안돼 어림없어!”를 말하던 나는 배 하나를 까서 남편과 막내에게 나눠 주고는 흐뭇해했다.

“어때 비싸신 배 님의 맛이?”라고 물으니 남편이 만족스레 웃으며 "역쉬 한국배가 들어가니 목이 시원해졌어!"라고 했다.

남편은 머리가 아프고 목이 조금 불편하다고 했다.

그때 눈치를 깠어야 했다.


우리는 병원일 하며 습관처럼 매일 해보는 코로나 테스트를 했다. 둘 다 음성으로 나왔고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아 머리가 아픈 것은 당연하다 싶었다.

날씨도 추워졌고 감기 환자들을 매일 많이 만나는 우리는 감기 기운이 있다는 것은 하나 이상할 것이 없었다.

집에 있는 생강을 대추와 계피를 넣고 끓여 주기도 하고 생강 넣고 레몬 넣어 음료수를 만들어 주기도 하며

남편의 감기 기운을 물리 치기 위해 손가락에 생강 냄새가 베이도록 다듬고 썰고 해서 먹였다.

울 친정 엄니가 해주시던 한국산 매운맛 생강차에 비해서는 조금 밍밍하지만 그럼에도 왕창 넣은 생강은

위력을 발휘했다

코와 목이 뻥뻥 뚫린다던 남편은 차도 잘 마시고 밥도 잘 먹고 주말 지나며 쌩쌩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 남편의 샐프 테스트 에는 빨간 두줄이 그어져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아직 한 번도 두줄인 적이 없던 테스트기가 선명히 두줄을 선보였다.

그것이 코로나 대첩이 시작되는 신호탄 이였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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