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Dec 15. 2022

남편의 눈물 콧물 쏙 오삼 불


진짜 코로나 란 말이야?


빨간 두줄이 정직하게 그어져 있던 남편의 코로나 샐프 테스트 기를 하릴없이 내려다보며

내가 뱉은 첫마디였다.

얼굴엔 이거 실화임?이라고 쓰여 있을게 자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그동안 코로나가 빠른 속도로 여러 가지 변이 들과 함께 지구를 몇 바퀴씩 도는 동안  

단 한 번도 걸린 적 없이 잘 버텨 왔기 때문이다.

세상에 코로나 백신도 없고 치료약도 없고 마스크와 장갑 등의 의료용품조차도 동나고 있던 시절에도...

델타와 오미크론이라는 이름으로 치명률은 낮아지며 전파 속도는 겁나 빨라져 이웃들도 학교 선생님

아이들 친구들 할 것 없이 주변 사람들 중에 코로나 걸렸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던 때 에도 우리는 무사히 지나갔다.


그리고 우리 병원 직원들이 차례로 코로나를 릴레이 바통 주고받듯 줄줄이 하고 그중에 두 명은 두 번의 코로나 확진을 맞이 할 때도 우리는 피해 갔다.

마치 피구 게임에서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용케 살아남듯이 말이다.

혹자는 슈퍼 면역자가 아니가 물어 오기도 했고 아직 정설은 아닌 카더라 썰 중에 어린 시절 그와 비슷한 전염병을 자기도 모르게 앓고 난 사람들은 코로나에 특별한 내성이 생겨 걸리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혹 그런 특별한 사람들 인가?를 물으며 말이다.

결국 슈퍼 면역자 따윈 없었다 단지 그때까지 운이 좋았던 것뿐이다.


알 수 없는 코로나 증상


일요일이었지만 당장 다음 주 병원일이 급했다.

톡으로 직원들에게 남편의 코로나 확진을 알리고 병원의 서류 처리와 혈액검사 등의 업무 분담을 했다.

그리고 일주일간 우리 병원 환자들의 진료를 담당해줄 동료 병원들도 개인병원 단톡방에서 톡으로 찾았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다섯 병원에서 흔쾌히 나눠 맡아 주기로 했다.

일단 병원일을 해결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자빠진 김에 쉬어 간다고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맘 편이 쉬어가자고 남편을 위로했다.

걱정했던 거에 비해 남편은 코로나 환자치고 증상도 약했고 매우 빠른 속도로 회복되어 팔팔 함을 과시했다.

그동안 병원 환자들 중에는 롱 코비드로 간 젊은 환자들도 많이 보았고 연세 있는 분들 중 또는 우리 또래들 중에도 종합병원으로 이송된 케이스들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사실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남편은 식욕도 왕성했고 그 와중에 평소에 관심 가지고 있던 의학자료들을 원 없이 몰아 볼 정도의 집중력과 체력이 따라와 주었다.

너무 멀쩡해져서 이거 휴가가 따로 없는데라고 농담 반 진담 반 하던 그때 목이 조금 잠기는 것 같던 나도 마침내 두줄이 나왔다.

일을 같이 하는 것도 모자라 코로나 까지 함께 걸리다니 어차피 각자 자가 격리하려면 외롭고 심심한데 부부가 나란히 확진이 되어 그 김에 잘됬다고 해야 할지 기가 막혔지만 별수 없지 않은가

다행히 큰아들이 온다고 미리 장을 넉넉히 봐 둔 덕에 당분간 시장을 가지 않아도 버틸만했고 급한 것은

아이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면 되니 어려울 것이 없었다.


단지 이틀 차이로 함께 확진이 되었지만 증상은 판이하게 달랐다.

확진된 지 이삼일 지나고 나니 남편은 아프던 목도 괜찮아졌고 두통과 미열이 조금 있던 것도 여기저기 근육통이 있던 것도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코로나 초기에 아스트라제네카로 첫 백신 접종을 하고 난 그때와 비슷했다. 간간이 마른기침하는 것 하나만 남겨 두고 어느새 멀쩡해져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남편처럼 37도선에 머물던 미열이 아니라 38도 6부가 넘어가는 고열에 시달렸다.

또 거기다 목이 화끈거리게 아프다 말았던 남편과는 다르게 목이 찢어질 듯이 아프다가 기관지가 퉁퉁 부었다.

그리고 근육 여기저기가 당기듯 아프다던 남편과는 달리 팔, 다리, 허리, 어깨 할 것 없이 뼈 마디마디가 쑤시듯 아팠다 아마도 삭신이 쑤신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것일 테다.

코막힘에 콧물은 24개 드리 두루마리 휴지 한팩을 코푸는 데 홀로 쓰게 했고 기침은 판소리 대가가 단전에서부터 소리를 끌어올리듯 허리를 비틀며 쏟아졌다.

함께 확진되었지만 증상은 내게 몰빵이었다.

앉아도 누워도 아팠고 제대로 잠을 이룰 수도 없었다. 끙끙 거리는 내 소리에 내가 놀라 깨기를 반복 하기 일쑤였다.

도저히 손하나 까딱 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덕분에? 자기는 이틀 얻어먹고 일주일 뺑이 치게 생겼다며 입이 댓 발 나온 남편에게 주방을 기꺼이 일임했다.


남편은 눈물 콧물 오삼 불

사람이 아프면 예전에 즐겨 먹던 것들이 떠오르고는 한다.

입안과 목안이 벗겨지다 못해 헐었음에도 학창 시절 친구들과 날이면 날마다 몰려 가던 코인이라는 즉석떡볶이 집이 떠올랐다.

옆으로 커다란 냄비 가득 양배추와 쫄면 사리 얹은 어묵과 떡볶이가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면 불을 줄이고 이쪽으로 저쪽으로 눌어붙지 않도록 저어 주고는 했다.

국물이 자작자작 해질 무렵 바삭한 튀김만두를 담그면 친구들과 감탄해 마지않던 즉석떡볶이가 매콤 달콤 고소한 자태를 뽐내며 완성되었다.

생각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여 왔다.

코는 이미 루돌프 사슴코가 되어 있었고 움직일 힘도 없는데 떡볶이를 만들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나는 가급적 불쌍해 보이는 눈을 해서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진짜 진짜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어~!"라고 했다.

코는 이미 막힐 때로 막혀 있어 코맹맹이 소리는 자동으로 제생 되었고

불쌍한 척하지 않아도 몰골이 이미 기가 막힌 꼬락서니 여서 분장도 따로 필요 없었다.

가끔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길에 신문지 덮고 누워 자다 벌떡 일어나 게슴츠레 한 눈을 뜬 1,2 중에 하나의 모습 그대로였다고나 할까?

싱크로율 백퍼 꼬지리함이 통했던지 맞은편 소파 깊숙이 누워 있던 남편이 부스스 일어났다.

나는 입안이 홀딱 까진 주제에도 매콤하게 감길 떡볶이 생각에 미소 짓고 있었다.

그런데...

왠지 주방에서 솔솔 풍겨 오던 냄새가 내가 아는 떡볶이 냄새가 아닌 것 같았다.  


"남편 뭐 하고 있어?"라고 묻는 내게 남편은 "어허 기다려 보라니까 그러네!"

라는 말만 반복했다.

드디어 요리가 끝나고 떡볶이가 먹고프다는 내게 남편이 내민 것은 오징어 돼지 불고기 일명 오삼 불이었다.

매콤 달콤 쫀득한 떡볶이는 아니었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방금 지은 밥에 먹음직스레 올라간 오삼 불은 보기에도 정말 맛나 보였다.

따끈한 밥과 함께 고기와 오징어 그리고 양배추, 양파 등이 버무려진 불고기를 한수저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오징어의 비린듯한 말랑함과 돼지불고기의 육즙이 어우러져 알싸하게 맵고 짭조름하고 달콤했으며 환상 적이었다.

눈물 콧물 찍찍하며 그럼에도 맛나게 먹고 있는 내게 남편이 물었다.

"맛있냐?" 나는 진심을 듬뿍 담아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짜내며 말했다 "엉 진짜 끝내줘!"


그랬더니 기고만장해진 남편은 "아 나는 왜 이렇게 못하는 게 없냐 이거 맨날 해달라는 거 아냐? 그럼 큰일인데"

나는 속으로 놀고 있네를 삼키며 그 와중에도 너무 맛있어서 한입 더 입에 넣었다.

남편은 잔뜩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뭐뭐 들어갔는지 맞춰 봐!"

사실 남편의 오삼 불은 엄밀히 따지자면 재활용이었다. 그전날 내가 해 주었던 돼지 불고기 남은 것에 오징어와 양을 불리기 위해 오징어, 파, 마늘, 양파를 잔뜩 넣고 수정과 끓여 먹고 썼던 남은 잣까지 잔뜩 넣고 간장, 고추장과 고춧가루 그리고 물엿과 참기름을 덧입혀 재탄생했을 뿐이다.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개기면 빵만 줄까 싶어 얼얼하게 매운 입을 하하 손으로 부채질하며 눈은 이리 띠 구럭 저리 떼 구럭 굴리며 열심히 찾는 척했다.

너무 쉽게 맞추면 남편이 아쉬워할까 싶어서 나름 뜸을 조금 들이며 천천히 요것조것 들어간 것들을 들추어냈다. 내 목소리가 아닌 것 같은 목소리가 이어져 갔다.

남편은 내가 정말 몰라서 못 찾고 있는 줄 알고 "아니 정말 특별한 게 들어갔다니까!" 라며 입이 근질근질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놀라는 척 오버를 떨며 말했다 "아띠 이거 잣 같은데!"

남편은 큰 눈이 더 동그래져서는 "어떻게 알았냐? 근데 방금 너 욕 하는 거 같았어!"

잦은 기침과 목이 붓고 아프다 보니 목소리가 허스키하다 못해 센 언니스러워진 데다가 눈물 콧물 쏙 빼게 매운 것을 먹다 보니 아이씨 감탄사가 절로 따라붙었다. 게다가 하필 잣 같은 게 들어갈게 뭐람 ㅎㅎ

입에서 불이 나는 것을 찬물을 머금으며 식히고 있는 내게 그릇을 치우며 남편이 구시렁거렸다

"역시 학교 때 껌 좀 씹었다니까!"

아이씨 겁나 맛있는 남편의 오삼 불~! 김치찌개 다음으로 남편의 시그니처 메뉴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김씨네 코로나 대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