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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Nov 23. 2022

눈 오는 날 먹고 싶은 독일식 찌개

첫눈과 크리스틴의 아인 토프


하얀 첫눈이 온다고요~!


지난 주말 독일은 올해 들어 첫눈이 내렸다.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하얗게 바뀌어 있었다

나무에도 자동차 위에도 몽실몽실한 눈이 새하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 밤새 흰색의 물감을 붓에 묻혀 콕콕 찍어 발라 놓은 듯 말이다.


잠시 창문을 열고 두고 차갑지만 맑은 공기를 들여놓는다.

아직 나무 가지에 남아 있는 나뭇잎들이 무색하게 계절은 늦가을을 지나쳐 이제 겨울의 문턱을 말없이 넘고 있나 보다.


안 그래도 올겨울 에너지 비용 급등으로 난방을 아껴야 하는데 이러다 날이 급 추워지면 어쩌나? 눈 쌓인 길바닥이 내려간 온도 때문에 빙판길 되기 전에 눈 치우러 나가야 하나?

따위의 걱정들은 나중으로 미룬다.

지금은 이렇듯 따끈한 커피 한잔 손에 들고 창가에 붙어 서서 간질간질 한 설렘을 담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렇게 독일에서 28번째 첫눈을 만났다.

해마다 달랐던 첫눈 중에 언제나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독일에 온 첫해 독일에서 처음 맞았던 첫눈이다.

모든 처음이 그러하듯 첫 번째 처음이라는 것은 늘 다른 색으로 기억된다.


한국에서도 해마다 만났던 첫눈 이건만 독일에 와서 처음 맞은 첫눈은 그 느낌이 또 달랐다.

그 시절에는 독일어로 의사소통도 간신히 되던 때였다.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하고 어려웠다.

지금은 별것도 아닌 것을 그때는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는 거다. 시청에 은행에 서류 하나 하러 가는데도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작은 것에 불안하고 잘하고 있는 건가 걱정이 많던 그런 때였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되어 원하는 정보를 검색해서 얻을 수 있던 때가 아니라 모든 게 직접 부딪쳐 보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게 많던 때였다.


인생사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는 건 아니지만 미루어 짐작해 본다 던가 상상해 볼 수 있을 려면 다른 사람의 경험담을 눈팅하거나 간접 체험해 보는 게 좋은데 그럴 기회가 자주 없었다.

어쩌다 먼저 온 선배 유학생들의 체험담이 마치 무림의 고수 들이 전하는 전설의 레전드 짤처럼 소문으로 떠돌던 그런 때였다.

요즘이야 핸드폰 켜면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고향의 소식도 그때는 며칠 지난 한국 신문을 대학 도서관에 가서야 접할 수 있었으니 말 다했지 뭔가.

뭐, 오래 살다 보니 나름의 노하우와 눈칫발이 일취월장했을 뿐 그때나 지금이나 독일어가 어려운 건 변함없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눈 오는 날 센티 해져서 옛날 옛적 그때를 아니나요 이야기를 꺼내자면 이박삼일 워크숍을 해도 부족하다.

어느 날은 떡볶이가 또 다른 날은 짜장면이 너무 당겨서 그리고 그 언제는 집 앞에서 사다 먹던 호떡이 먹고 싶어서 또는 엄마가 시장 갔다 사다 주셨던 동네 한의원 앞 만둣집 만두가 생각나서....

시시때때로 다양한 먹거리가 생각나고 먹고 싶어서 집에 가고 싶어지는 때였다.

그때는 요리를 잘할 줄 몰라서 자급자족이 안되니 먹고 싶었던 것도 많았던 게 사실이었지만…

마음속 깊이 들여다보니 그 음식을 함께 먹었던 가족과 친구들이 보고 싶었던 것이라는 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일 친구 크리스틴 에게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독일에 온 첫해 첫눈 이 내린 날이었다.

크리스틴의 아인토프

독일 대학 동아리 모임에서 알게 된 친구 크리스틴은 젊은 친구가 할머니처럼 뜨개질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겨울 옷값을 아끼려고 틈만 나면 예전에 입었던 니트 옷들과 양말들을 풀어서 다른 색 다른 디자인으로 재창조하는 걸 좋아하던 친구였다

검소한 그녀를 닮은 집은 썰렁하다 못해 추워서 잠바를 벗고 있기가 어려웠다.

앉아서 말하다 보면 입김이 보이는 방 안에서 꽁꽁 얼게 생긴 한겨울에 냉방 완비였다.

알고 보니 크리스틴은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해 하이쭝이라 부르는 스팀 난방기를 아예 틀지 않고 살고 있었던 거였다.

지금이라면 이해한다 우리도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거실에 벽난로 외에는 아예 난방을 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탄이던 기름이던 방바닥에 뜨끈뜨끈 보일러가 들어오는 한국에서 자란 내게는 그때는 문화적 충격이 아닐수 없었다.


크리스틴은 그렇게 난방비, 옷값, 식비, 간식비 등을 아껴서 외국에서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 또는 집이 먼 다른 도시에서 온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밥을 먹이고 노는 걸 좋아했다.

매번 초대해 주는 그 예쁜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초콜릿 한 박스 사서 들고 가면 아이처럼 좋아하던 크리스틴이었다.

첫눈 오는 날 이면 그녀의 할머니 레시피 라며 만들어준 아인토프가 떠오른다.

나는 그 어디서도 크리스틴의 아인 토프처럼 맛난 아인토프를 먹어 본 적이 없다.

너무 추운 그녀의 집에서 먹은 따끈한 찌개 같던 아인토프는 천상의 맛이었다.

추위도 한몫했겠으나 아마도 그녀의 마음이 담겨 있어 그랬을 것이다.

아인토프 는 직역 하자면 솥 하나, 또는 냄비 하나다.

솥 하나에 재료들을 넣고 끓여 먹는 독일의 단품요리 다.


아인토프가 뭐래?
Eintopf 아인토프의 전래

연료절감과 시간 절약을 모토로 히틀러 나치 정권 시절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홍보 권유했다. 그 이유로 나치 시대 요리가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아인토프는 생각보다 오랜 전통을 가졌다.


Eintopf 아인토프는 독일에서 19세기 180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요리할 때 여러 군데 불을 사용하는 것이 어려워 솥 하나에 고기, 야채 등을 넣고 끓인 것이 그 시초라고 한다.

독일 북부 농가에서 처음 시작됐다는 설이 있는 아인토프는 2차 대전 후 에는 독일 전역으로 퍼져 동네마다 집집마다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독일에서 아인토프는 우리의 보리밥이나 수제비처럼 어려운 시절을 넘어 국민 요리로 자리 잡았다.

조리 방법도 닭 한 마리처럼 솥 하나면 끝나는 간단하고 맛난 요리다.

소시지, 고기, 콩에 각종 야채를 넣고 끓이는 아인토프는 겨울철 요리로 그만이다


자 울 독자님들도 독일식 찌개 아이토프 함 같이 만들어 보시렵니까-~


독일식 찌개
김여사네 아인토프
재료 준비

뭐가 들어가냐 하면은요 우선..

간 쇠고기 400-500g(* 채식주의자 또는 채식을 원하는 분들은 고기 대신 콩과 다른 채소로 대체 가능)

감자 중간 크기 5개

당근 얇은 것 2개

피망 색깔별로 2-3개

토마토 작게 다진 것 400g

(통조림으로 대체 가능)

푸어 요구르트 큰 2 스푼(*독일 이나 유럽 계신 분들은 Schmand)

토마토 페이스트(보통 피자 도우에 사용하는 거) 2 큰 스푼

육수 또는 채수 500ml(*독일이나 유럽에 계신 분들은 Gemüsebrühe 사용하시면 됩니다 또는 맹물로 대체 가능)

파슬리 뿌리 반개 또는 무 작은 것 반개 *독일에 계신 분들은 Petersilienwurzel

양파 중간 크기 1개

파 자른 것 2 큰 스푼

마늘 한쪽 *독일에서도 마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넣어 먹습니다

국간장 2스푼 *원래는 소금 후추로 간을 맞추지만 우리 입맛에 국간장 이 조금 들어가면 맛이 더 좋더군요.

소금

후추

파프리카 가루, 설탕 ( 이두가지는 생략 가능,*독일 이나 유럽 계신 분들은 Paprikapulver  rosenscharf)

식용유 3 큰 스푼

바케트 빵 하나


정말 쉬워요 만드는 방법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적당량 두르고 간 고기를 볶다가 양파, 파, 마늘 순으로 넣고 같이 익힌다. 


독일 마트에 가면 두 가지 파를 만나게 된다 보통 굵고 커서 우리의 대파와 비슷해 보이는 이 큰 파를 Lauch라욱 또는 Porree포레 라 부르는데 얘는 우리의 대파와는 식감이 전혀 다르다.

물기와 진이 적고 조직이 부드럽지 않아 식감이 딱딱하고 질긴 편이라 국물의 육수처럼 오래 끓이거나 찜이나 전골처럼 불 위에 오래 둬야 하는 요리에 넣고 사용하면 좋다.

양념장이나 김치, 무침 등 바로 넣어 사용할 때는 그보다 훨씬 작고 식감이 부드러운 우리의 쪽파처럼 보이는 Lauchzwiebel을 사용하면 된다 (아래 사진 오른쪽)

오늘은 넣고 끓이는 아인 토프 라 큰 파 Lauch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쪽파나 부추를 넣으시면 됩니다.

고기와 양파, 파, 마늘이 익은 후에 토마토 다진 것과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는다.

요 껍질을 까면 하얀 것이 파슬리 뿌리랍니다

토마토를 넣은 고기를 골고루 섞어 자작자작해진 때에 육수 또는 채수를 넣고

감자, 당근, 파슬리 뿌리 또는 무를 넣고 낮은 불로 뭉근히 끓인다.

마치 고추장찌개처럼 빨갛고 먹음직 스럽게 아인토프가 되어  무렵 감자와 당근이 익었다 싶으면 썰어  피망을 넣고 간을 맞춘다.

피망은 금방 익기 때문에 살짝 익히면 되고 모든 야채가 익었다 싶을   아인토프를 먹기 직전에 푸어 요구르트 또는 Schmand 넣고  저어 준다 


짜잔 요렇게 아인토프가 나왔습니다.(아래 사진!)

간을 맞춰 가며 소금 후추를 더하시고 설탕은 원하는 분들만 첨가하시면 됩니다.

사실 채소에서 단맛이 우러나와 그대로도 맛나 지만 말입니다.

요렇게 김여사네 아인 토프를 만들어 빵을 곁들이면 찍어 먹기도 하고 채소 싫어하는 아이들도 좋아하고

설거지할 것도 없이 빵으로 그릇까지 닦아 먹어 일석이조입니다.

한겨울 몸과 마음을 녹일 독일식 찌개 아인토프 였습니다


*요즘 독일 마트에는 파슬리 뿌리가 나옵니다 겨울철 잠깐 나오지요.

비타민도 풍부하고 항암작용도 하는 파슬리는 잎 보다 뿌리에 더 많은 성분이 들어 있다 합니다

맛은 익은 셀러리 맛 비슷하기도 하고 무맛 비슷하기도 합니다.

파슬리 뿌리는 다른 편에 다시 더 첨가해서 나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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