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Dec 16. 2022

엄마의 마음을 녹여 만든 밤죽

밤 껍데기를 까며 아부지 생각이 났다


엄마는 아이가 아프면 없던 힘도 나오게 마련이다.

생각보다 훨씬 막강했던 코로나로 인해 넉다운이 되어 몇 날 며칠을 침대와 소파를 오가며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도 알쏭달쏭하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 다녀온 막내가 맞은편 소파 위로 스러지듯 드러누웠다 머리가 아프고 목이 아프다 했다.

열을 재어 보니 이미 38도가 넘어가고 있었다.

내가 가졌던 증상과 흡사해 보였다.

아침까지 멀쩡 했었고 자가진단 키트에서 음성이 나와서 학교를 보냈건만 속이 상했다.

집이 주택이다 보니 아이들과 층을 구분해서 지냈고 부득이하게 동선이 겹치는 거실과 주방 은 코로나 존으로 명명한 후에 아이들은 마스크를 쓰고 식사 때만 잠깐 내려왔다 갔다

마치 우렁 각시처럼 상 차려 놓고 아이들 식사할 때 우리는 위로 올라 가 있거나 냉방 완비라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는 손님방으로 가 있었다.


집안에서 서로 마스크 사용은 당연했고 오가는 길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스쳐간 문고리들 하나하나까지 소독제 들고 다니며 빠짐없이 소독했었다.

이쯤 되면 병원보다 더 철저히 했다 싶을 만큼 조심했는데도 역부족이었나 보다 싶어 마음이 안 좋았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에 뺏길 시간은 없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는 아이에게 뭔가는 먹여야 해열제 라도 먹이지 싶어 마음이 급했다.

아무래도 목도 많이 부었을 테니 부드럽게 넘길 수 있는 죽이 좋겠다 싶었다.

문득 지난번에 군밤 해 먹겠다고 사다 놓은 밤이 떠올랐다.


마음이 급하니 딱딱한 밤 껍데기가 더 안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냥 하얀 쌀죽 끓이면 될 것을 뭘 밤까지 깐다고 그 난리이냐는 남편에게 눈으로 레이저를 쏘았다.’ 도와줄 거 아니면 가만있지! 있다 죽 먹겠다고만 해라'라는 메시지를 얹었다.

남편은 민망한 듯 웃으며 “나 칼질 서툴 잖아 알면서~! 밤죽 맛있겠다!"란다.

나는 속으로 그래도 밤죽이 얻어먹고 싶기는 했나 보네 하며 피식 웃음이 터졌다.

오래된 부부들은 때로 말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눈빛, 표정, 뒷모습은 더 많은 말을 담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해엔 밤 농사가 잘 되지 않았던지 아니면 해묵은 밤인지 크기도 더 작은 것 같고 물에 잠깐 담갔다 깠는데도 속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아 승강이를 해야 했다.

벌레 먹은 것들도 꽤 있고 손마디에 자국 나게 깠어도 어째 껍질만 한가득이지 알맹이가 몇 개 나오지 않았다.


이 동네에서는 밤을 마 로넨 Maronen 또는 에스카 스타니엔 Esskastanien이라고 부른다. 밤나무가 자라기에 일조량 토양 바람 등이 잘 맞지 않아 그런지 사과, 배 등의 과일나무들이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길도 많고 정원 마당에 심어져 있는 주택 도 많은 독일에서 밤나무를 만난 적은 없다

마트에서 이맘때 나오는 밤들도 대부분 독일 보다 조금 더 일조량 많고 따뜻한 이웃나라 프랑스에서 온다.

그렇다 눈썰미 있는 사람들은 알수 있듯 왼쪽 사진이 못먹는 밤 카스타이엔 오른쪽 사진이 먹는밤 에스카스타니엔  이다.

그러고 보면 가을 되면 길바닥에 정신없이 널브러져 있는 짝퉁 밤나무 일명 니도 밤나무? 는 독일 전역에 많다.

훌쩍 키 큰 가로수들에 사정없이 달린 것은 밤과 똑같이 생겼다.

독일 처음 왔을 때는 이게 먹는 밤인 줄 알고 이렇게나 밤이 널렸냐며 좋아라 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밤과 복사판으로 생긴 못먹는 밤 니도 밤?을 독일에서는 Kastanien 카스타니엔 이라 부르고 주로 멧돼지 사료로 쓰거나 가정집에서는 가을을 장식하는 내추럴 데코용으로 사용되고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는 만들기 시간에 재료로 활용한다.

우리 집에도 아이들이 어릴 때 만들어 놓은 니도 밤? 인 카스타인엔 으로 만든 다람쥐 토끼 가족들이 아직 남아 있다.


가을 이면 공원이며 길이며 니도 밤나무? 에서 떨어지는 먹지 못하는 밤들이 지천이다.

그 많고 많은 카스타니엔을 볼 때마다 "어휴 이게 먹는 밤이면 얼마나 좋아!"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어느 정도로 많으냐 하면 카스타니엔 나무 아래 공원 또랑 물 안에는 가을 되면 갈색의 먹지 못하는 밤들이 물속에 잔뜩 가라앉아 있는 진풍경도 만나게 된다.

그에 비해 마트에서 만나는 먹는 밤은 요즘 100g에 99센트 1kg에 9유로 90 한화로 약 1만 4천 원 정도 한다.

그런데 1kg이라 해도 이리 골라내고 저리 골라내고 나면 지금처럼 먹을 수 있는 양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참을 까고도 껍질만 수북했지 멀쩡한 알맹이가 몇 개 나오지 않았다 간신히 다섯 개 남짓 죽에 넣을 생밤을

확보하고는 작게 다졌다.

찹쌀 한 컵 그리고 맵쌀 한 컵을 물에 잘 씻어 냄비에 담고 다섯 컵의 물을 담아 중간 불에서 잘 저어 주었다

물이 뽀글뽀글 소리를 내며 끓어오를 때 잘게 다진 밤들도 죽이 될 냄비 안에 투척하고 불을 줄인다.

이제부터는 젖기 싸움이다. 죽이 냄비에 눌거나 타지 않게 그리고 너무 물이 빨리 줄어 설익지 않게 시간을 들여 약한 불에서 계속 저어 주어야 한다.


길고 긴 나무 주걱으로 이리 한번 저리 한번 저어 준다.

그거 했다고 그새 오른손 집게손가락 마디에 빨갛게 자욱이 났다.

과도에 힘을 주어 밤 껍데기를 벗겼던 때문일 테다 그러고 보면 울 아버지는 밤을 그렇게 많이 까셨어도 이렇게 손에 자욱이 남지 않았던 거 같은데... 문득 오래전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친정아버지는 가부장적인 분이셨다 남자는 부엌 근처에 서성이면 뭐 떨어진다는 전형적인 스타일이셨다.

그럼에도 생밤 먹는 걸 유난히 좋아했던 아이들을 위해 손수 밤을 깎는 것을 좋아하셨다.

엄마는 시장에서 밤을 사 오시는 날이면 반은 씻어 냄비에 넣고 삶은 밤을 만들어 주셨고 나머지 반은 큰 소쿠리에 담아 과도와 함께 아버지에게 가져다 드리라고 했었다.

"니 아버지가 생밤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까시잖니!" 하시며 말이다.

말하자면 아버지는 우리 집 생밤 담당이셨던 거다 그렇게 세명이 조로미 아부지 옆에 붙어 앉아서 언제 다 되나를 기다렸다 우리는 밤 하나 까지기가 무섭게 돌아가며 하나씩 입에 쏙쏙 넣고는 했었다.


그때는 몰랐었다. 그게 아부지식의 투박한 애정 표현 이셨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부지는 그렇게 당신이 잘하실 수 있는 것으로 육아와 살림으로 힘든 엄마에게 작은 도움이 되어 주고 싶으셨던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의 먹는 속도에 맞춰 밤을 까시기 위해 애를 쓰셨을 것을 말이다.

손마디가 아파 오는 것을 감수하고도 말이다.

이제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고 나니 알게 된다 세상엔 수고 없이 생밤을 잘 까게 되는 손은 따로 없다는 것을 말이다.

먹기 알맞게 부드러이 말캉하고 쫀득 고소한 죽이 다 되었다.

잘 퍼져 하얀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밥알 사이로 작은 밤 조각 들이 봄날 들판에 핀 민들레처럼 여기저기 노랗게 고개를 내민다.

아이의 입안에서 톡톡 터질 밤의 달콤함을 기대하며 한국자 퍼서 담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의 눈물 콧물 쏙 오삼 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