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로 받는 위로
아즈매의 신조어 타령
어느 날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자기야 부캐 가 뭔 말이지 아니?"
남편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아 그거 결혼식 할 때 여자가 던지는 거?"
로맨틱이라고는 약에 쓸려도 없는 남편은 원래 꽃, 꽃다발 이런 것들과 친하지 않다
그래도 결혼식 때 신부가 들고 있는 꽃다발 정도는 나올 줄 알았는데 식장에서 꽃다발 냅다 던졌던 것만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의기양양해서는 "아니야 요즘 애들이 쓰는 신조어로 다른 뜻이 있어!"
라고 했다.
갑자기 남편이 신조어를 알아맞출 일도 없건만 나는 조금 기다려 주는 척하고
방금 전 내가 알아낸 것을 마치 굉장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본캐가 어쩌고 부캐가 어쩌고 하며 썰을 풀어 댔다.
우리도 옛날옛적 그 언젠가는 신세대 일 때도 있었건만 지금은 쉰세대가 되어 도통 요새 아이들 사이에 통용된다는 신조어를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옛날 옛적 대학 도서관에서 며칠 지난 고향의 신문을 받아 들고 늦은 소식에도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는 그래도 쫓아 갈만 했다.
그 시절에는 요즘 한국에서는 이런 게 유행이더라, 이런 말들을 쓰더라 하는 것들도 고향 다녀온 같은 기숙사 이웃 한국 사람들에게 귀동냥하고 그들이 전리품처럼 들고 온 한국드라마, 등이 녹음된 비디오 테이프 돌려 보며 체감하고는 했다.
또 우리가 한국을 다녀올 때는 그 반대로 기숙사 이웃들에게 고향의 새로운 소식들을 전파하기에 바빴고 말이다
신조어를 공부하는 아즈매
물론 그때도 한국 갈 때마다 늘 어리바리했고 자주 깜짝깜짝 놀라고는 했다. 몇 년에 한 번 가는 고향은 언제나 빠른 속도로 변해 있었고 우리는 그 변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그 당시 같은 기숙사에 살던 이웃집 부탁으로 초등학교 용 문제집을 몇 권 사러 동네 서점에 갔다.
그때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명칭은 국민학교 였다 우리가 국민학교 3학년 국어 문제집을 달라고 했더니
서점 아저씨가 우리를 이상한 눈빛으로 보고 계셨다.
우리는 분명 잘못 말한 게 없었는데 목소리가 너무 작았나 싶어 우렁찬 목소리로 "국민학교 3학년 국어 문제집 이요!"라고 했더니
아저씨가 조용하게 망설이며 물어 오셨다 "혹시…어디서 오셨어요?"
이런 된쟝 그 당시 국민학교는 이미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뀐 지 한참 이었던 거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이러니 저러니 알아듣고 적응할 만했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된 덕분에 손가락 하나로 클릭 한 번이면 실시간으로 고향의 소식을 접하지만 또 그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들을 담아낼 제간이 없어 멍 해질 때가 많다.
코로나 시국 때문에 한국을 몇 년간 다녀오지 못한 사이 정말이지 급변하는 사회적 분위기만큼 수많은 신조어들이 생겨나고 세대 차이만큼이나 우리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분명 컴퓨터 화면에서 들려오는 말이 한국말인데 가끔 저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하고 멘붕이 올 때가 있으니 말이다.
가령 어느 예능에서 어쩔 티비 저쩔티비가 나오는데 서로 놀리느라 하는 말인 것 같긴 한데 왜 저런 말을 쓰나 알 수가 없었다.
또, 너튜브에서 자주 등장하는 좋댓구알은 처음엔 쌍욕인 줄 알았다.
드라마나 예능 등에서 등장하는 장면에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들 또는 모습들 장소들을 보며 아 요즘은 저런 말을 쓰고 이런 데 가는 걸 좋아라 하는구나라는 것을 간접 체험 하지만 사실 실감을 하기에는
한국을 다녀온 시간의 공백이 너무 긴 듯싶다.
그래서 나는 시간 날 때마다 종종 인터넷에 떠다니는 신조어 공부를 한다.
당모치 당연히 세상에 모든 치킨은 옳다는 말이라는데 단어만 놓고 보면 그 내용을 연관 짓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이전에 사용하던 금사빠 라든가 갑분싸 정도는 말의 줄임이니 대강 그 뜻을 추측해 볼 수도 있고
내용을 알게 되어도 그리 생뚱맞게 늦겨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쉽살재빙(쉽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게 센스 있게) 등은
도저히 짐작도 할 수 없는 뜻이었고 어감마저 욕처럼 들렸다.
너또다 너 또 다이어트하냐? 와 너도 또라이라 다행이다라는 두 개나 뜻을 가지고 있단다.
H워얼 V 는 뒤집으면 사랑해로 읽힌다는 데 나는 뒤집어 보나 털어 보나 사랑해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700은 귀여워의 초성 ㄱㅇㅇ 과 닮아 있어 이리 쓴다는데 그냥 내 눈에 는 700 칠백 원 할 때 칠백 일 뿐이다.
아는 것과 공감은 별개이니 어쩔 수가 없다.
우리에게 부캐라는 신조어도 마찬가지였다. 결혼식 할 때 들고 있는 꽃다발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넷상에서 부캐 부자라는 문장을 보았다.
어떤 남자 연예인을 소개하면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처음엔 그 말을 이렇게 생각했다.
부캐 하면 결혼할 때 신부가 들고 있는 꽃다발 아닌가?
그럼 꽃다발이 많다는 거고? 남자 연예인이 꽃집 한다는 겨?
근데 그 뒤에 나오는 문맥들과 뭔가 맞아 떨어지지가 않았다.
궁금해진 나는 신조어 부캐에 대해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신조어로 받는 위로
검색해 본 신조어 부캐는 내게 꽤나 매력적인 뜻을 품고 있었다
본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모습 또는 직업을 일컫는 말이었고 부캐는 부수적으로 가지고 있는 직업 또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었다.
컴퓨터 게임 상에서 나오는 캐릭터 들에서 파생된 말이라는데 내게는 무릎을 치게 했다.
사람이 살면서 하고 싶은 일 또는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남편은 본캐도 부캐도 하나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도 잘하는 일도 같다.
한마디로 내가 보기에 복 받은 사람인 거다.
그런데 내경우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같지 않으며 본캐와 부캐는 같은 사람인가 싶을 만큼 차이가 난다.
언젠가 한국의 어느 매거진에 원고 청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편집장님과 글 때문에 여러 번 메일이 오가고 그분이 톡으로 물었다.
그런데 혹시 작가님 직업이 어떻게 되시나요? 하고 말이다.
글로 밥 벌어먹는 전업작가는 아니니 원고를 매거진 칼럼으로 넣을 때 뭔가 부가 설명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 순간 나는 한참 생각을 해야 했다.
뭐라고 해야 하지? 직업이라 하면 그 일로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하는 일 이 아니던가?
수입으로 치차면 당연히 병원 매니저이지만 그때 당시 한국요리강습도 활발히 하고 있을 때였고
학교에서 아이들 특별활동 반도 진행 하고 있을 때였으며 독일의 자연치유사 과정을 이수하고 있던 학생이었고 독일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시에 등록되어 있는 화가 여서 간혹 시에서 하는 전시회 등과 관련해서 연락을 받고는 했다.
그리고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쓰고 있었다.
나의 직업이 뭐라고 한마디로 규정하기가 애매했다. 아니 아쉬웠다.
병원 매니저라고 한마디로 묶어 두기에는 내가 좋아서 하고 있는 다른 일이 많았다.
만약 그때 본캐 부캐라는 신조어를 알고 있었다면 본캐는 병원 매니저고 부캐는 기타 등등이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알잘딱깔센 ㅎㅎ 알면 써먹고 싶어 지는 1인)
하여간 그간 긴 세월 한 직업에서 그야말로 한우물을 파고 있는 남편이 은근히 부러울 때가 종종 있었다.
그동안 나는 수많은 것들을 섭렵? 하고 있으면 서도 딱히 성과와 수익과는 무관 해서 딱히 직업이라 제대로 말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젊고 활력 있는 MZ세대의 신조어 덕분에 나는 부캐 부자가 되었다.
왠지 신나는 일이었다.
그간 내가 수많은 이유로 하다 말았던 아니하다 끝내지 못했던 것들과 또는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없었던 것들이 부캐라는 새로운 이름의 꽃으로 피어났다.
더 이상 아이들 키우느라... 이사를 많이 다니느라..... 좋아한 것이 꼭 능력이 되는 것은 아녀서.. 등으로 스스로를 위로할 필요가 없어진 거다.
나는 부캐 부자다.
때로는 외계어 같기도 한 신조어로 위로를 받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