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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r 13. 2023

완전 또라이 될 뻔했다


일요일이었다. 언제나처럼 우리는 은행 볼일을 보기 위해 시내로 향했다

아침까지 비가 내리더니 눈 내리는 척하는 눈비가 내렸다.

날씨가 오락가락할 뿐 축축하고 추운 것은 매한가지였다.

이번주는 내내 회색빛 하늘에 젖어 있는 땅바닥을 밟으며 다녔던 것 같다.

그야말로 햇빛 귀한 전형적인 독일 겨울 날씨의 연속인 셈이다.


안 그래도 일요일 이면 상점문을 다 닫아 조용한데 날씨까지 보태주니 시내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간혹 지나다니는 행인들과 시간 되면 오가는 전차들 그리고 그 사이를 유유히 날아다니는 비둘기가 “오늘은 비 쌔리는 일요일이구먼!”을 새삼 인증해 주고 있었다.

어느 일요일은 은행 볼일 끝나고 남편과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했는데 그날은 점심 전이고 으스스하게 추운 날이라 얼른 일을 끝내고 집에 가서 김치찌개나 끓여 먹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동안…

천천히 바뀌는 곳인 독일에도 코시국은 사회 전반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나 사람들은 이전 보다 더 쉽게 자주 인터넷으로 쇼핑을 하고 은행 일들도 집에 앉아서 온라인 뱅킹으로 하는 이들이 더 많아졌다.

그 여파로 시내 곳곳의 스포츠용품점 등 상점들이 줄지어 문을 닫아야 했고 이전에는 현금만 받던 빵가게 들도 이제는 카드계산이 안 되는 곳이 거의 없고 은행들도 온라인 뱅킹을 독려하고 있으며 일주일 짜리 입출금 거래내역서, 카드 명세서 등도 종이가 나오지 않고 화면으로 확인하는 전자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도 그대로인 우리는 인터넷 쇼핑보다는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사는 것을 선호한다.

또 한국에서는 팔순이 다된 울친정 엄니도 하시는 온라인 뱅킹을 우리는 아직 하지 않고 있다

그 과정이 우리에게 다소 복잡? 한 것도 있지만 의심이 많다 보니 손가락 하나 들고 클릭 클릭으로 끝나는 것이 왠지 미덥지 못해서 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독일 노인네 들처럼 은행에 가서 굳이 용지에 적어서 계좌 이체를 하고 카드 명세서를 뽑아 오고는 한다.

개인 병원을 하다 보니 직원들 월급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이것저것을 위해 계좌이체 할 일도 많고 출입금 확인할 것도 많다.

해서 일주일에 한 번은 은행 볼일을 보아야 한다.



주말 이면 은행의 창구는 닫혀 있고 일요일에는 온라인 인출기와 현금 인출기 들만 놓여 있는 곳도 사람들의 발길뜸하니 한가 져서 은행 볼일 보기에  좋다.

솔솔 뿌려지듯 내리는 가랑비에 사람도 땅도 젖는 날씨라 그런지..,

다른 날에는 술병 하나 들고 은행 계단에 앉아 있던 사람들 조차 없어 은행 안과 밖은 텅 비어 있었다.


은행을 가면 가장 먼저 하는 입출금 거래내역서를 출력하기 위해 기계에 카드를 꽂아 넣었다.

그랬더니 가계 위로 3월 30일부터는 종이가 나오지 않는 전자 거래 내역서로 바뀔 것이라는 메시지가 뜨고 내역서는 인쇄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계좌에 현재 얼마가 들어 있는 지만 확인 하는 계좌 확인을 눌러보았다.

지난주 하고 큰 차이가 없는 금액이 보였다 그렇다는 것은 내역서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짐작컨대 아직 입금되어야 할 것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다음 주에 은행에 한번 확인을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현금 인출을 하기 위해 현금 인출기 앞으로 갔다.


마트에서 시장 볼 때도 카드로 하고 일상생활에서 지출 하는 게 정해져 있어 당장 현금이 많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종종 써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그전날 시장을 보고 빵집에서 커피와 빵을 샀는데 지갑에 달랑 5유로짜리 두 개만 들어 있었다.

거기는 카드가 안 되는 곳이라 남편이 가지고 있던 동전까지 탈탈 털어 계산했다.


현금 인출기에 카드를 넣고 현금 인출을 눌렀다.

50유로부터 100유로 200유로 300유로 순으로 나와 있는 액수 중에 100유로를 눌렀다

그런데 놀랍게도 20유로짜리 두 개 와 10유로짜리 두 개가 나왔다.

엉? 60유로? 나는 내가 뭘 잘못 봤나? 싶어 남편에게 방금 인출한 현금을 들어 보여 주었다.

그리고 혹시나 내가 잘못 눌렀나 싶어 다시 현금 인출기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분명 찾을 금액 50유로 100유로 순으로 되어 있었다.

60유로는 아예 있지 않았다.

만약 나와있지 않는 금액을 원할 때는 다른 금액을 누르고 희망하는 금액을 써야 하는데 나는 그 과정을 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혹시 잘못 눌렀다 하더라도 내 손에 60유로가 들려 있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싶어 멍 때리고 있는 내게 남편은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말 했다.

"기계라고 실수 하지 않겠어? 10유로짜리 지폐 한 장을 50유로짜리 지폐와 헛갈린 게 아닐까?"

들어 보니 그럴싸했다 그렇다면 말이 되었다

20유로 두장과 10유로 한 장이면 50유로이고 나머지 50유로가 나와야 할 차례에 10유로짜리가 대신해 나왔다면 말이다.

나는 감탄에 저절로 두 눈을 반짝이며 "오올 남편 똑똑한데 그럼 어떡하지?"라고 했다. 마누라의 칭찬에 의기양양해진 남편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똑소리 나게 말했다

"뭘 어떻게 내일 은행으로 전화해야지 여기 전화번호 있네"



은행 창구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창문에는 입출금 문제가 있을 때 전화 하라는 전화번호가 또렷이 박혀 있었다.

이거 이거 나만 그런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군 역시나 기계도 믿을게 못된다 싶었다.

세상에나 40유로나 삥을 뜨다니 말이 되나?

그런데 문득 은행 안 CCTV가 따로 있다지만 은행에서 내 말을 안 믿어 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CCTV 카메라에서 가장 잘 보이는 방향으로 20유로짜리 두장과 10유로짜리 두장을 부채처럼 펼쳐 들고 사진을 찍어 두었다.

분명 내가 은행에 들어오는 것부터 모두 찍혀 있을 테고 돈을 인출하고 지갑에 넣기 전에 사진 찍는 모습까지 찍혀 있을터 안되면 CCTV 까보자고 하지 뭐 싶었다.

그리고 현금 들고 사진 찍은 것에 인출 한 시간까지 따로 적어서 저장했다.

사진 찍은 시간과 인출 시간이 몇 분 상간의 차이는 있을 테니 말이다.


이제 전투 준비는 끝났다.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다음날 은행에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되돌려 받아야지 않겠는가?

100유로를 눌렀으니 은행 입출금 거래 내역서에는 100유로로 찍혀 있을 터이고 보리 숭년에 써보지도 못한 40유로를 그냥 날려 버릴 수는 없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다졌다.

그런데...

불끈불끈 한 손으로 지갑을 열어 손에 들고 있던 현금을 넣으며 나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20유로짜리 두장이 지갑 안에 들어 누워서 마치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너 뭐하니 시방?'



이미 넘치게 이상했는데 그 자리에서 남편에게 상황을 이야기하면 우리 둘 다 진정한 또라이 모습일게 뻔해서 그게 그대로 녹화될 것 같아 나는 은행문을 나선 후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 내일 은행에 전화 안 해도 될 것 같아!" 나는 '갑자기 얘 뭐래니?' 하는 표정을 짓고 있던 남편에게 쐐기를 박듯 말해 주었다. "40유로가 지갑 안에 들어 있어 얌잔히.."

남편은 내 말에 기가 차고 똥이 차네 하는 표정으로 썩소를 날리며 "확실해?"라고 물었다.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확실했다 지갑 안에는 그날 찾은 돈 왜에 다른 돈이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론 띠불...


정리하자면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정신머리 없는 여편네가 멀쩡히 나온 100유로 중에 20유로짜리 두장을 먼저 지갑에 넣고는 그 잠깐 사이에 딴생각하다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나머지 손에 들린 60유로를 들고 40유로가 덜 나왔다며 포효한 거다.

기계가 착각했을 거라고 말한 남편이나 그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던 마눌이나 덤엔더머가 따로 없었다.

거기다가 증거로 남긴다고 사진까지 찍는 용이주도 함이라니...

무식한데 꼼꼼하기 까지 하다.

만약 다음날 은행에 전화를 걸어 100유로를 인출 했는데 40유로를 못 받았다며 사진도 보여주고 CCTV 도 까보자고 했더라면 못해도 미친뇬 예약이다.

띠불.. 완전 또라이 될 뻔했다 상상 만으로도 아찔해 왔다.조용하고 평화로운 일요일에 이게 웬 생쇼란 말인가?

도대체 20유로 짜리 두장은 언제 지갑에 집어 넣었지? 아쒸 치매 검사받아 바야 하는 거 아녀?

은행 앞에서 지갑을 부여잡고 만감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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